
저에게 6월은 언제나 핏빛 예수님의 성심과 함께 시작하기에 그 어느 계절보다 더 많이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입니다. 제가 지은 죄 때문에 더 아파하실 예수 성심을 떠올리며 마음 한 켠이 죄스러움과 미안함으로 울먹울먹해집니다. 더구나 올 6월은 인간의 죄로 더더욱 참담하셨을 예수 성심을 떠올리며 우리가 할 일들이 뭔가 더 고민에 빠졌습니다.
우리 학교에는 매주 수요일 저녁 7시가 되면 70여 명의 학생들이 경당에 모여 미사를 드립니다. 부활절이 끝나는 주 수요일 저녁 미사 때 신부님께서 미사 강론 중에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를 들려 주셨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그 참혹한 죽음을 눈앞에 두고 들으니 그 말마디 마디가 심장을 쿡쿡 찌르는 바늘이 되어 마음이 저려 옴을 느꼈습니다. 그 노래 가사 하나 하나가 커다란 주먹이 되어 가슴을 내리 치기에 가슴이 마구 먹먹해졌습니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에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나의 사진 앞에 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나는 그 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를 들으며 저는 한 번의 스침도 없는 무심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가슴의 통증이 심한데, 그 참혹한 죽음 앞에서 망연자실할 혈육들의 원통함과 통곡의 깊이는 어떻게 가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이 노래가 오히려 위로가 되기보다 더한 고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노래를 듣지 못하고 그 울렁임을 달래며 가사를 읽었습니다. 사진 앞에서 날 위해 울지 말라며, 자신은 그 곳에 없다는 그 말마디가 어찌나 세차게 제 가슴을 긁어 내리는지….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는 원래 1989년 영국군의 한 병사가 죽기 전에 남긴 편지 한 통과 같이 있었던 ‘시’였는데, 그 병사의 아버지가 장례식 때 이 시를 낭독했다고 합니다. 그 참혹함 속에서 먼저 가는 아들이 들려주는 위로의 말을 들으며….
자식의 주검이 돌아오지 않자 잠수부들을 찾아가 “남의 목숨을 담보로 죽은 자식 살리기 싫다.”고 말하고 아들을 바다에 묻기로 뼈아픈 결심했던 고(故) 최덕하 요한의 아버지 또한 신앙 안에서 슬픔을 곱씹어 삼키며 간절한 기도 손을 하고 계시겠지요. 아들이 하느님 곁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 거란 것을 믿으며…. 노래의 하단에는 그 숨 막히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용감한 사람들의 영상이 하나씩 지나갔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마지막 상황에도 세상에 대한 분노가 아닌 “사랑합니다.”란 문자를 보내며 서로를 격려한 귀하디 귀한 아이들. 아내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아이들 구하러 간다.”라며 “통장에 있는 돈은 아이 등록금으로 써라.”는 말로 이미 자신의 죽음을 결심한 고(故) 양대홍 사무장, 구명조끼를 구해 아이들에게 건네주며 자신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넌 고(故) 박지영 승무원, 생일을 하루 앞두고 친구를 구하려고 몸 던진 고(故) 정차웅 군, 최초의 신고로 많은 이들을 구했지만 정작 자신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아버지 품에 안긴 고(故) 최덕하 요한, 그토록 원했던 교단에 서서 맞은 첫 제자들을 구하다 끝내 온 몸을 바친 고(故) 최혜정 선생님, 방에 물이 차오르는 순간까지도 제자들의 탈출을 돕고 자신은 남은 제자들과 생을 같이한 고(故) 남윤철 선생님, 제자 한 명 한 명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며 탈출을 돕다가 분향소로도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자로 남은 고창석 선생님. 그리고 우리가 모르고 있지만 끝까지 용기 있는 행동을 했을 사람들….>
이들의 용기와 희생적 삶이 있었기에 살아 있는 우리들은 그래도 인간에게 희망을 꿈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좋은 세상이었다면 이번과 같은 참담한 일이 이 나라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기에 그 후 전 수업 들어가는 교실마다 칠판 한 쪽에 <좋은 습관, 좋은 어른, 좋은 세상>이라고 적어 뒀습니다. 좋은 습관을 가진 아이가 자라면 좋은 어른이 될 것이며, 좋은 어른이 많으면 참 좋은 세상은 저절로 되겠지요.
시인 박노해 님이 그의 시에서 “희망찬 사람은 / 그 자신이 희망이다. // 길 찾는 사람은 / 그 자신이 새 길이다. // 참 좋은 사람은 /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사람이다. // 사람 속에 들어 있다. /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힘주어 외쳤듯이. 우리 안에 참 좋은 사람들이 자란다면 다시는 이런 참혹한 일은 우리 몫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교단에서 아들들이 참 좋은 사람이 되도록 더 열심히 살 것입니다. 살아서 원망만 하고 책임만 물을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책임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만든 것이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좋은 인간을 만드는 교육에 매진할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우리들의 쓰레기 같은 삶의 모습들을 다음 세대가 답습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바르게 사는 것’의 중요함을 가르칠 것입니다. 먼 훗날 하늘나라에 가서 그들을 마주 했을 때 지금보다 더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덜 미안하기 위해서라도!
* 이유정 선생님은 계산주교좌성당 신자로,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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