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월은 예수 성심 성월이다. 예수 성심 호칭 기도를 자주 바친다. 예수 성심 호칭 기도처럼 아름다운 기도가 또 있을까. 기도문을 읽을 때마다 예수 성심이 표상하고 있는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 특히 “사랑의 불가마이신 예수 성심”, “창에 찔리신 예수 성심” 이 두 기도문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왜 예수 성심은 아직도 불가마처럼 타오르고 계실까, 창에 찔리시고 계실까.
계산주교좌성당에 있는 예수 성심 상을 처음 만난 것은 아득한 지난 날, 여학교 시절이었다. 두 팔을 들고 우리를 그윽하게 내려다보고 계셨다. 눈을 뗄 수 없었다. 성심의 불꽃도 보이고 성심을 둘러싸고 있는 가시도 보였다.
예수성심시녀회 수녀원의 성당 입구에도 예수 성심 상이 서있다. 성심에서 빛나고 있는 광채, 사랑으로 불타는 불가마 같은 느낌을 준다. 야왼 얼굴, 야왼 몸, 맨발, 성심을 감싸고 있는 왼손과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오른손, 성심 곁으로 우리를 불러들이는 것 같다. 외국의 어떤 성당에서 본 예수 성심 상도 잊을 수 없다. 창에 찔리시어 피 흘리시던 예수 성심 상, 슬프고 두려워 기도조차 할 수 없었다. 집에도 예수 성심 성화가 벽에 걸려 있다. 가시에 찔려 피 흘리고 계시는 예수 성심, 그러나 예수님의 얼굴은 고요하다. 성심상 앞에 앉으면 마음이 한없이 아늑하다. 영혼의 피난처 같다.
예수 성심이 불가마처럼 타오르는 이유, 예수 성심이 아직도 창에 찔리고 있는 이유, 그것은 우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감당하고 있는 고통,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죄, 그리고 무죄한 자들이 짊어지고 있는 고통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 이런 것 때문에 예수 성심은 아직도 사랑의 아픔으로 타오르고 있 는 것이 아닐까. 또 창에 찔리는 고통을 견디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가톨릭성가 199번 ‘예수 마음’을 즐겨 부른다. “예수 마음 겸손하신 자여 내 마음을 내 마음을 열절케 하사 네 성심과 네 성심과 같게 하소서.”, “내 마음을 내 마음을 잡아 당기사 네 성심에 네 성심에 결합하소서.”, “내 마음을 내 마음을 차지하시와 네 성심에 네 성심에 보존 하소서.”, “내 마음을 내 마음을 변화케 하사 네 성심과 네 성심과 바꿔 주소서.”
아, 우리는 어떻게 하면 예수 성심의 깊은 사랑을 닮을 수 있을까. 이 뒷날 임이 나를 보시고 “날 닮았다.”하는 예수 성심의 말을 들을 수 있을까.
* 약력 : 현대수필문학상, 대구시 문화상, 전국 수필의 날 ‘올해의 수필인상’ 수상. 수필집 「돌미나리를 찾아서」, 「그 맑은 향기」 외 다수. 한국문협, 대구문협 회원, 대구가톨릭문인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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