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공동체 복음나누기 자료제공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053) 250-3082 cafe. daum.net/biap
6월 1일, 주님 승천 대축일 : 마태 28,16-20.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28장 16절~20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열한 제자는 어디로 떠났습니까?(16절)
- 예수님을 뵌 제자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17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십니까?(18-19절)
-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20절)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언제까지 함께 있겠다고 하십니까?(20절)
- 예수님의 말씀을 큰 소리로 함께 읽어 보십시오.(18-2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나는 예수님께서 이르신 말씀을 어떤 방법으로 따르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함께 있겠다고 하신 예수님께 침묵 중에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37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 복음묵상 김요한(세례자요한)|매호성당 보좌신부
오늘의 복음은 “열한 제자”로 시작합니다. 빈자리가 느껴지는 이 단어는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긴 유다 사도의 빈자리, 그리고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의 모습. 이어서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 결심했지만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이런 아픔을 겪은 제자들은 아직도 “의심”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빈자리, 부족함이 가득한 이들 ‘열한 제자’ 앞에서 하늘로 오르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을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서’임을 강조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함께’라는 단어가 점점 귀해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아파트 문화에 이어 스마트폰 문화는 작아진 가족들마저도 개별화시키고 있습니다. 인터넷, 통신을 통해 전 세계가 연결된 것 같은데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 멀게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세상입니다.
작년 7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첫 외부 방문지로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를 방문하셨습니다. 더 나은 삶을 찾으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오다 참사를 당한 사람들이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은 다음과 같이 외치셨습니다. “난민들의 고통은 누구 탓인가?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동정심을 잃었는가? 함께 울어주는 능력을 잃었는가? 우리들은 남의 고통에 익숙해졌다. 그들의 고통이 우리한테 아무런 감흥이 없어졌다. 우리의 관심 밖이다. 우리의 일이 아니다. … 그러니 기도하자. 가슴의 소리에 귀 막고, 자기만족에 겨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용서해달라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으라.’ 하셨는데 우리는 타민족, 타지역, 타인을 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주고 명령한 것을 지키라 하셨는데 내가 받은 세례도 잊어버리고 사랑하기보다 내 뜻을 내세우기 급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함께 있겠다 하셨는데 우리는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 머물고 있습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을 맞아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은 모든 사람 위에 있고 모든 이가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해줍니다. 우리의 빈자리는 주님을 통해서 채워집니다. 주님은 우리 ‘사이’에 함께 계십니다. 하늘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이 말씀에 귀 기울이며 이웃의 손을 잡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6월 8일, 성령 강림 대축일 : 요한 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20장 19절~23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제자들은 왜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습니까?(19절)
- 예수님께서 오시어 첫 번째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19절)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십니까? 또한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20절)
- 예수님께서 하신 두 번째 말씀은 무엇입니까?(21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며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22-2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내가 아직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마음의 벽을 쌓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깊이 생각해 보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용서하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청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42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 복음묵상 마성우(세례자요한)|경산성당 보좌신부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이날은 사도들이 성령을 통해 새롭게 변화하고 교회가 굳건하게 성장하기 시작한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오늘 독서말씀인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한테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났는데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력한 성령이 사도들에게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형상이니 불 혀 모양이니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성령으로 눈이 열리게 되면 그전에 보지 못하던 것들이 보일 수 있고 우주 안에 볼 수 있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우리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끈기있게 청하면 이런 일이 우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성령께서는 불고 싶은 데에로 부는 바람 같은 분이십니다. 따라서 오시는 때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정하십니다. 하지만 준비하지도 않고 청하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오셔도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뛰어난 최고의 조종사가 있어도 고장 난 비행기는 하늘로 못 날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고장 난 비행기는 먼저 뜯어 고치고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도들도 그랬었고 주님을 따르는 많은 성인들도 이런 고통과 고난의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 없는 부활 없고, 고생 없는 열매 없고, 슬픔을 모르고서 참 기쁨을 알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는 돈이나 명예, 쾌락 같은 세상 것들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과 수고를 합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얻고 싶은 것을 다 누려보지도 못하고 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욕구는 끝이 없게 만들어졌는데 세상 것들은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고 더 근본적인 이유로 악의 세력은 우리가 세상 것들로도 풍요를 누리고 행복해 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악마들은 우리가 어떤 참된 행복도 맛보지 못하도록 적당한 미끼로 홀려서 시간만 빼앗고 죽어가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천상에서 내려오는 은혜는 다릅니다. 누구든지 차고 넘치게 누릴 수 있을 만큼 무한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하고 청하는 사람은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누구보다도 우리가 행복하기만을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한 번 진지하게 구해보시기 바랍니다.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셔서 성경과 영성 서적을 읽으시고 주요교리를 새기시고 선행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단 10분, 5분이라도 규칙적으로 시간을 내셔서 눈을 감고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 것들을 구하는 노력의 10분의 1만 쓰셔도 성령께서 너무나도 기뻐하시면서 도와주실 겁니다. 우리가 기어가기 시작하면 주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달려오시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안타까운 것은 이 10분의 1도 아까워하는 인색하고 무정한 우리 자신들입니다. 세상의 유흥거리에는 10시간도 아깝지 않고 돈도 펑펑 쓰면서 천상의 기쁨을 얻는 데는 10분도 아깝고 천 원도 아까워하며 살아간다면 우리 영혼은 굶을 수밖에 없고 삶은 점점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용기를 내시고 매일 올바른 선택을 하셔서 성령의 은사를 가득히 누리시고 또 풍성히 열매 맺는 기쁜 삶이 되시길 빕니다. 아멘!
6월 15일, 삼위일체 대축일 : 요한 3,16 -18.
16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3장 16절~18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사랑하는 세상을 위해 누구를 주셨습니까?(16절)
- 외아들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16절)
- 하느님께서는 보내신 아들을 통하여 세상에 어떤 일을 하십니까?(17절)
- 아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18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 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며 감사드리고, 각자가 생활 중에 삼위일체께 드릴 경배 또는 봉헌을 한 가지씩 생각하고 실천하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81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묵상 박상욱(라우렌시오)|복현성당 보좌신부
하느님께서 성부·성자·성령의 삼위로 이루어져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신비는 가톨릭 신앙의 기초이며 핵심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부’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성자’는 성부께서 세상에 보내신 아들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오시어 교회 안에 머무르시고 우리를 ‘성화(聖化)’시키고 사랑으로 일치시킵니다. 사실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인간의 언어로, 또 머리로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학적 단어입니다. 하지만 삼위일체에 대한 교의와 신학이 생겨나기 전에, 성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신비 또한 이에 대한 교회공동체의 믿음과 고백이 먼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위일체가 무엇보다 신비임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크신 분이시며, 또한 사랑이신 분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삼위일체 신앙은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왔고 325년 니체아 공의회에서 신앙의 신조로 재확인 되었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인 성사는 모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바로 교회가 삼위일체에 바탕을 두고 모인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자들이 늘 기도하는 성호경과 영광송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하고 증거하는 기도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목적은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또한 성화됨으로써 삼위일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기도하려고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것과 나중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성호경입니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말하면서 이마와 가슴, 양어깨를 손으로 짚으며 십자가를 크게 긋습니다. 어떤 기도를 하든지 우리는 맨 먼저 성호경을 긋습니다. 성호경은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한 분이신 하느님, 즉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곳에서든 식사시간에 성호경을 긋고 밥을 먹을 때 신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정성스럽게 성호경을 긋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천주교 신자인 것을 알아봅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신앙고백입니까.
삼위일체의 신비는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엄청난 신비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 이 신비를 알아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요한 사도께서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해 깊게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호경에 담긴, 삼위일체의 신비를 생각하면서 우리 모두 크고 정성스럽게 성호경을 긋고 모든 일을 시작하고 마치고, 또한 우리가 속한 가정, 학교, 직장, 이웃들 안에서 삼위일체의 사랑을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6월 22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 요한 6,51-58.
51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52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요한복음 6장 51절~58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합니까?(51절)
- 유다인들은 왜 서로간에 다툼이 일어났습니까?(51-52절)
-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53-54절)
-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어떤 상태가 됩니까?(56-57절)
- 조상들이 먹은 빵과 예수님이 주시는 빵은 어떻게 다릅니까?(57-58절)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나는 예수님의 몸을 모실 때 어떤 마음으로 모시고 있는지 반성해 보고, 더욱 깊은 믿음을 지닐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하며 정성껏 준비를 하여 미사에 참여하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6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복음묵상 강호동(마티아)| 성동성당 보좌신부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삶
모든 것에는 원천이 있습니다. 물의 원천이 되는 샘이 있듯이 생명에도 원천이 있습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들이 근원적인 원천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생명력을 세상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원천에서 벗어난 삶은 죽은 삶입니다. 비가 오지 않고 뜨거운 햇볕 아래 메말라가는 땅에는 생명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살아 있더라도 그 삶은 메마르고 생명력이 없습니다. 신앙인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근원이 되는 생명의 양식을 얻어 누리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메마르고 생명력이 없는 신앙생활을 할 따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세상에 생명을 주는 살아있는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가 되시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 생명의 참된 양식, 우리 삶의 참된 원천은 바로 주님의 몸과 피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드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를 위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그것을 “먹어라.”고 말씀하시며 참된 생명으로 이끌고 계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주님께서는 친히 우리 안에 머무르시면서 우리의 생명이 되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당신 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 그리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이 둘 모두 주님 안에 머무르는 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지키신 아버지의 계명, 예수님께서 이루신 아버지의 뜻은 바로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놓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도록 당신 자신을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도, 우리가 지켜야 할 주님의 계명도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원천으로 하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머무르는 삶이 생명을 살아가게 합니다. 머무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기를 내어놓는 희생과 사랑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머무르시길 바라십니다. 우리에게 속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참된 생명을 살아가길 너무나도 바라십니다. 우리가 받아 모시는 성체와 성혈의 신비는 우리 또한 당신의 몸이 되어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누어집니다. 주님께서 떼어주시는 그 빵이 우리를 주님 몸의 일부가 되게 하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된 삶으로 이끌어줍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하나 되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우리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들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머물 때 서로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희생할 때 하나 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누어주신 사랑을 우리 가운데서 나누며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사랑이시듯, 우리가 사랑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7)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 마태 16,13-19.
13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주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의 눈을 여시어 주님의 길을 보게 하시고, 저희의 귀를 여시어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아멘.”)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태오복음 16장 13절~19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어디로 가셨습니까?(13절)
- 사람들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말합니까?(14절)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물으시자 누가 어떻게 대답합니까?(16절)
-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왜 ‘행복하다.’라고 하십니까?(17절)
- 예수님께서 어디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십니까?(18절)
-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무엇을 주시며, 그것은 어떻게 사용되어집니까?(19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나에게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각자가 예수님께 한 대답에 맞게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19번을 부르겠습니다.
* 위 성가는 예시 자료입니다. 자유롭게 성가를 고르셔도 됩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복음묵상 한승호(베드로)|원평성당 보좌신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의 첫 질문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였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사람들의 소문대로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언자라고 말씀드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느끼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나에게 예수님이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교리시간에 가르쳐 주는 대로,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알고 있지만은 않습니까? 그 결과 남들이 이야기하는 예수님만을 따라서 고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예수님을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를 띄지 못한 채 그저 예수님을 복을 주시는 분, 액운을 막아 주고 곤경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분으로 의식하고 있습니다. 또한 9일 기도도 하고, 매일 미사에도 참석하고 기도를 많이 했는데,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실망하며 우리의 믿음도 흐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 존재를 의심하기에 이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은 당시 제자들에게나 현재의 우리에게 참 중요한 질문입니다. 제자들의 첫째인 시몬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대답은 베드로 사도가 직접 자신이 체험한 메시아, 구세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고백입니다. 바로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한 여정 속에서 진정으로 하느님의 아들로 사랑을 보여주시고,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임을 체험할 수 있었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그분을 ‘그리스도’ 곧 진정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제 다시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의 구원 업적만 생각하고 지나쳐 버린다면 예수님에 대해 오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구원 과정을 올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세례만 받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이들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구원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 애쓰도록 깨우쳐 주시고, 몸소 앞장서 가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스승이자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물으실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가 체험한 사랑의 하느님, 그 사랑의 증거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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