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이 지난 지도 벌써 한달 여 되었네요. 가을은 깊어만 가고, 밤도 길어져만 가는데, 이렇게 길어져 가는 밤이 두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이부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누우면 눈은 더 초롱초롱해지는 것 같고, 정신도 더 또렷해지는 느낌, 그렇다고 잠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있자니 내일도 오늘처럼 또 힘든 하루가 될까봐 걱정스럽고…. 딱히 마음 깊은 곳에 큰 걱정거리가 자리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잠을 못 잔 며칠 새 머리는 띵하니 아프고, 피곤하고, 쉽게 지치는 것만 같습니다. 아직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불면증 때문에 큰 병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
정신과 외래에서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이런 불편함 때문에 방문하시는 분들이 꽤 있으십니다. 이런 분들은 대개 ‘내가 정신이 이상한 것은 아닌데….’ 하면서 어색하게 진료실에 들어오십니다.
잠이라는 것이 단순히 몸을 쉬게 한다는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며, 상당히 활동적인 우리 삶의 한 부분입니다. 어린이에게는 성장호르몬이 주로 잠자는 시간에 나오기 때문에 키가 잘 크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이 반드시 필요하지요. 성인에게도 잠을 통한 생체리듬의 회복은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 중에는 잠이 오지 않는 날이면 소주를 한두 잔 드시고 잠을 청하시는 경우가 있더군요. 술은 진정기능이 있어서 잠을 청하는데 일견 아주 효과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술은 수면을 유지시켜 주지 못하고 오히려 아침에 일찍 깨이도록 만드는 일이 흔합니다. 또한 나중에는 술을 먹지 않으면 결코 잠이 들지 않아서 결국에는 술로 인한 문제를 더 갖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혹 떼려다 다른 혹까지 붙인 격이죠.
정신과에 이런 분들이 오시면, 우선 이 분들의 생활 패턴을 먼저 여쭙게 됩니다. 본인은 잠을 잘 못 잘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하시는데, 의외로 하나하나 따져보면 커피를 하루에 3~4잔씩 마신다던가 하는 문제를 발견하게 되지요. 이렇듯 일상생활에서 수면에 영향을 주는 습관적인 문제를 수면 위생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수면 위생을 호전시키는 여러 방법들입니다.
1.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기.
2.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수면 장애 전의 수준으로 제한하기.
3. 수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호식품과 약물 피하기. (커피, 담배, 술, 흥분제 등)
4. 낮잠을 피하기.
5. 오전 시간에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6. 초저녁에 흥분할 수 있는 일을 피하기. (저녁 시간에 TV 시청보다는 라디오를 듣거나 독서 하기.)
7. 잠자리에 들기 전에 따뜻한 물로 20분 정도 목욕을 하기.
8. 매일 일정한 시간에 식사를 하고, 자기 전에 많은 음식을 먹는 것을 피하기.
9. 저녁 시간에 명상, 요가, 체조와 같은 방법으로 신체적인 이완운동 하기.
10. 자기 전에 물을 많이 마시지 않기.
이 같은 지침에 몇 가지 추가한다면, 누워 있은 지 한참이 지났다고 생각이 되고 또 계속 해서 잠이 오지 않으면, 차라리 잠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일(지루한 책읽기) 등을 하는 것이 낫겠고, 자다가 자꾸 시계를 보는 일도 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침실을 안락하도록 하고, 높지 않은 베개를 베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또한 자기 전에 따뜻한 우유 한 잔 혹은 양파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도 호전이 없다면 정말 어느 정도 잠을 못 자는지에 대해 객관적인 검사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실제로는 충분한 시간 잠을 잔 후에도 간밤에 한 숨도 못 잤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이 경우는 깊은 수면을 못한 때문인데, 수면다원검사 등을 통해서 그 원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수면제도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는 부작용이 거의 없는 수면제들이 많이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전문의와 충분한 상의를 거친 이후에 투약한다면,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불면증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 이제 우리 한번 발 쭉 뻗고 편하게 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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