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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선생의 교실이야기 2
우리가 바로 당신의 교향곡입니다


이유정(데레사)|계산성당

 중간고사가 끝난 뒤 연속되는 연휴, 교실을 벗어난 2박 3일의 창의적 체험활동 등을 하다 보니 요즘은 교실을 벗어나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교실 속에서 삶아 놓은 배추처럼 흐느적거리던 아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왠지 걸어 다니는 발걸음도 가벼운 것 같아 그들을 지켜보는 제 마음도 덩달아 즐거워졌습니다. 하지만 며칠 동안의 야외활동이 끝난 뒤 교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은 아이들은 몸만 돌아왔을 뿐 마음은 다 다른 곳에 두고 온 것처럼 하나같이 멍한 얼굴들입니다. 아이들의 집나간 정신을 찾아오기 위한 교사들의 전쟁 같은 하루가 또 시작되었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온 교사들은 아침 자율학습 감독으로 하루를 엽니다. 잠과의 사투에 빠진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기도하고, 피곤에 지친 아이들의 어깨를 주물러주기도 하며 온갖 고민에 빠집니다. ‘꼭 이래야만 할까?, 푹 재우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재우면 다 해결될까?’, ‘지금 같은 경쟁 속에서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사는 우리 학교가 살 길은 이 길밖에 없는데….’ 여러 질문들끼리 제 머릿속에서 싸움을 시작합니다. 제 어깨도 힘이 쭉 빠집니다.

얼마 전 원래 계획했던 서울 탐방 창의적 체험활동은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모두 취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 2학년들은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님과 함께하는 진로 및 직업 탐방, 자연 정화 봉사활동, 대구 근대 골목 투어, 학년 체육대회 등의 다양한 활동을 2박 3일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가장 더운 날 야외로 학생들을 데리고 나간 상황이라 무척 고되고 신경도 많이 쓰였습니다. 흔히들 이렇게 학생들을 데리고 야외활동을 나가면 교사들이 노는 줄 압니다. 제 친구들조차도 “좋겠다. 좀 쉬겠네.”라고 축하를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을 하는 동안 교사들은 녹초가 됩니다.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어쩌나?,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 걸까?, 더위를 먹으면 우짜지?’ 그래도 요즘은 스마트폰이 있어 반톡으로 실시간 상황을 알 수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평소엔 애물단지인 스마트폰이 어찌나 고맙던지.

 

저는 이 활동들을 하면서 우리 학년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 땡볕 아래서 학생들의 야외 봉사활동을 지도하면서 내내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즐겁게 함께 하셨습니다. 그 다음날은 자신이 맡은 장소에서 그 많은 학생들에게 미션을 수행하게 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을 텐데 행사 뒤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의 이야기로 행복해 했습니다.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몸이 많이 지쳤을 텐데도 그 다음날 치러진 체육대회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경기 진행하랴 아이들 돌보랴 동분서주 하시면서도 뒷정리까지 말끔히 끝내 주셨습니다. 특히 비담임 선생님들 중에는 곧 퇴임을 앞두신 선생님들도 몇 분 계셨는데 미션 수행도 지원해 주시고, 체육대회 경기 심판도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모습을 뵈며 ‘이래서 우리 학교가 명문이구나.’란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지면으로나마 2박 3일간 고생해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홀랜드오퍼스(Mr. Holland`s Opus)’라는 영화는 30년간 제자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쏟은 한 음악 교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차선책으로 교사란 직업을 선택했던 그였지만, “교사는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라는 확고한 교직관을 가진 교장선생님의 말씀에서 깨달음을 얻고 열심히 교사로 살며 무관심한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열심히 교사로 최선을 다하던 그였지만 실리를 중시하는 학교 정책으로 어쩔 수 없이 교직을 내려 놓아야 했습니다. 아쉽게 떠나야 하는 그에게 제자들은 작지만 귀한 선물을 준비합니다. 60세의 나이에 30년간 머물렀던 교직을 마감하며 짐을 챙겨 떠나는 홀랜드를 강당에 모신 후, 주지사가 된 그 옛날의 제자가 선생님을 무대에 모시며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은 30년간 심포니를 작곡해 왔습니다. 우리가 바로 당신의 교향곡입니다. 우리가 선생님의 음표이자 음악인 것입니다. 이젠 선생님께 돌려 드리겠습니다. 30년간 작품을 기다린 모든 분들을 위해서 지휘봉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Good Bye Mr. Holland”란 플랜카드 아래 백발의 노(老) 선생님과 장성한 옛 제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미국 심포니’를 연주합니다. 그 순간 선생님의 얼굴에 가득 차오르는 행복감을 보며 저 또한 마지막 무대가 저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감히 품어 봤습니다.

 

며칠 전 2학년 교무실 앞이 소란스러웠습니다. 연휴를 앞두고 마음이 공중부양한 우리 2학년 학생 몇 명이 용감하게(?) 야간자율학습에 불참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담임선생님들이 분주히 야간자율학습 불참자들을 불러 호되게 꾸짖고 있었습니다. 다들 마음이 조금씩 불편했습니다. 꾸중을 듣는 아이들도 꾸짖고 있는 선생님들도! 그래도 “그때 왜 선생님이 날 좀 안 붙들어줬어요?”란 원망을 들을 순 없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교사인 우리들은 그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교사들의 마음을 이 아이들도 아마 우리 나이쯤 되면 알겠지요?

이런 제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그날 저녁 늦게 교무실에 있는 제게 2학년 한 녀석이 찾아와 슬그머니 시판되는 빵과자 2개를 책상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무심히 한 마디를 던지며 제게 미소를 보냈습니다. “좀 드시면서, 쉬시면서 해요. 그러다 병나면 우리 나중에 못 만나잖아요. 히히.” 순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만한 것이 목구멍을 치고 올라 왔습니다. 눈 주위가 저도 모르게 실룩거렸습니다. 애써 참으며 ‘고맙다.’는 한 마디를 간신히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교무실에 혼자 앉아 잠시 동안 손을 멈추고 밀려오는 뜨거운 그 마음을 되새김질 했습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교사는 학생들을 연주하게 만드는 지휘자입니다. 한 명만 뛰어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각자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 서로가 조화롭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그래서 오늘 전 제 직업이 교사라서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 이유정 선생님은 계산주교좌성당 신자로,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