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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람, 희망을 찾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까요?


김종섭(토마)|신부, 소람상담소 소장, 교구 가정담당

Q. 도와주세요. 저는 결혼 12년 차이고, 남매를 둔 40대 중반의 남자입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고 다양하겠지만 거두절미하고 아내가 보기 싫어 죽겠습니다. 그냥 ‘집’이라는 곳이 너무 싫고 심지어 아이들도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그냥 ‘가족’이니까… 하는 마음일 뿐, 때로는 귀찮기까지 합니다. 좀 쉬고 싶은데 집에서는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 것 같아서 회사에 출근하는 것보다 집에 가는 것이 더 부담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런 제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이 꽤 크게 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끓어오르는 뭔가 알 수 없는 ‘욱’하는 짜증들이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직장 선배는 “그래도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아직까지는 다행이다. 난 그냥 산다.”고 이야기하는데 제게는 그리 와 닿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내다가 그냥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까요?

 

A. 찬미예수님. 가정은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소중하고 행복과 삶의 의미, 위로와 안식, 그 모든 것의 원천인데 오히려 가족들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거나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사랑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지면의 한계가 있겠지만 우선 질문을 하나 드려볼 테니 천천히 생각하시고 자문해 보세요. 혹시 지금 형제님 안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이 무엇인지요? 우리들은 살면서 외적인 일이나 여러 가지 신경 쓰이는 일들이 있지만 의외로 정작 그 이면에 들어 있는 나의 욕구나 원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내가 회사에서의 바쁜 일과 사람에 치여서 집에서는 휴식을 원하는 마음이 있는데, 나의 내면에서 원하는 욕구는 휴식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가정 외에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지 못하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깔려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오늘도 직장에서 고생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혼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본다든지 자신의 취미생활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되고 그렇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짜증이나 화가 납니다.

그런데 내 안의 진짜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가족들이 나를 배려하여 쥐 죽은 듯이 조용하게, 말 한마디 걸지 않는 상황에서 진정한 휴식을 취했다는 만족감을 얻지 못하게 되고 알 수 없는 불만족만 가득하게 됩니다. 가족들의 과도한 배려가 또다른 짜증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죠. 진짜 나의 내면 속에는 ‘휴식’이 아니라 가족들의 ‘지지’와 ‘인정’이 필요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즉 정확한 나의 욕구를 알지 못하고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만을 보신다면 충족감과 만족감, 안녕감을 갖지 못하게 되어 마음 속에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계속 남아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신경이 쓰이는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신경 쓰이는 일의 이면에 있는 나의 욕구는 무엇인가?’ 이런 자기 탐색을 통해서 우리는 의외의 것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지금 형제님의 말씀으로는 단지 짜증이 나고 가족들, 특히 아내가 보기 싫고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느낌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감정이 발생하게 된 것에는 반드시 그렇게 유도한 촉발요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이런 감정은 반복되거나 더 불유쾌한 경험으로 확장될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아니 굉장히 자주 감정은 습관으로 강화되어 그것이 부정적일 경우에는 계속적으로 부정적 정서를 이끌어 내고, 긍정적인 것일 때는 긍정적 정서를 발생시키는 특성이 있답니다.

따라서 어떤 대상, 사람이나 장소, 공간이나 물건, 상황이나 사건 등에 대해 내 안에서 어떤 감정적 반응을 하는지 잘 찾아내도록 해야 합니다. 이때 지성적 작업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원초적인 감정 반응, 즉 1차적이고 즉각적인 나의 감정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감정이 부정적일 경우 그것을 대치시킬 수 있는 긍정 정서나 그것을 촉진할 수 있는 긍정경험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한 두 번의 시도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 훈련과 학습을 통해 개발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하는 삶의 작업임을 강조합니다.

그럼 이제 하얀 종이 위에 지금 느끼는 나의 감정들을 나열해보세요. 그리고 하나 하나를 곰곰이 살펴보면서(물론 감정 유발은 총체적 원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을 발생시킨 가장 직접적인 사건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혹시 그것을 다른 사람,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투사 시켜서 감정을 쏟아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하나 하나 ‘분리작업’을 할 때 굉장히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형제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신 바로 그 한 사람입니다. 힘내세요. 아멘.

 

 

* 아래 주소로 여러분의 고민을 보내주시면 채택하여 김종섭 신부님께서 지면상담을 해주십니다.

· 이메일 : soram3113@hanmail.net  · 전화 : 053-250-3113

· 우편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 4길 112 천주교 대구대교구 월간<빛>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