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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1000차 주회 기념, 나가사키 성지순례기


유재명(스테파노)|월성성당 ‘천국의 열쇠’ 쁘레시디움

 

월성성당(주임 : 조성택 사도요한 신부) ‘천국의 열쇠’ 쁘레시디움(단장 : 이한주 마르첼로)은 1992년 2월 5일에 창단(초대단장 : 유재명 스테파노)하여 22년째, 역사적인 1000차 주회를 맞이하였다. 현재 14명의 활동단원이 성모님의 군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보다 의미 있는 1000차 주회를 기념하기 위하여 쁘레시디움 단원들이 일본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세월호의 참사로 피어나고 있는 어린 생명들을 포함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90분이라는 구조될 수 있는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손을 쓰지 못하고 차가운 격실에 갇힌 채 속절없이 주검으로 변해버린 안타까움과 비탄을 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가사키 성지순례의 길을 떠났다.

현해탄을 넘어서니 덥지도 춥지도 않는 계절의 여왕답게 저마다 뽐내는 봄꽃들의 향연이 도로마다 우리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이번 성지순례의 인솔자이며 우리 쁘레시디움의 김상경(석두루카) 단원은 일찍부터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성지순례는 신앙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공고히 하여 주님의 복음전파자로서 새로운 결심을 다지는 길이 되길’ 강조하며 첫 순례지이면서 첫 미사를 봉헌할 우라카미 성당으로 안내했다. 이날 미사는 일본에서 가장 전통 깊은 나가사키대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조성택(사도요한) 본당 주임신부님의 주례로 봉헌하는 미사인 만큼 그 의미가 더욱 컸다. 특히 순교자들의 피로 점철된 땅위에서의 미사는 순교성인들의 통공이 지금 여기 함께 하시어 굳건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간구하였다. 미사가 끝나고 3일 동안 우리의 여정에 도움을 주실 이 율리엣다 수녀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본격적인 성지순례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의 가톨릭은 4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나 한국과는 달리 일본 사회의 깊숙한 곳까지는 침투하지 못했다. 한국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으나 에도 막부의 쇄국정책에 의한 그리스도교 탄압 정책으로 오랜 기간 박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박해의 증거로 ‘후미에’가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자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십자가나 성모 마리아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목판을 밟도록 하여 밟지 않으면 즉시 체포하여 처형시키는 제도로, 순교자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후미에 목판을 보면서 신앙의 자유가 허용 된 지금의 우리 자신을 견주어 보며 옷깃을 여미게 한다.

우라카미 지역에 소재한 나가이 다카시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과 거처였던 여기당을 향해 두 번째 여정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원폭의 참상을 들을 수 있었다. 1945년 8월 9일 아침, 나가사키의 하늘에는 갑자기 굉음과 함께 검은 버섯구름이 하늘을 찢고 솟아 올랐다. 원폭으로 인해 아름답던 항구도시 나가사키는 순식간에 죽음의 도시로 변하고 엄청난 주검만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초토화 된 도시 한가운데 나가이 다카시 선생이 있었다. 선생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될 참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많은 저술 활동으로 평화와 이웃사랑에 대한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으며 일찍이 우리 대구대교구에서도 여기회(총재 :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를 설립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나가이 다카시 선생의 저서들을 읽고 독후감을 공모하여 시상을 하고 있다. 또한 여기애인(如己愛人)이라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의 실천을 널리 알리며 이웃 사랑과 세계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나가이 다카시 선생의 위업을 기리며 본 받는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원폭기념관과 여기당, 평화공원을 참배하면서 새삼 반핵운동의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지구상에 일어나지 않기를 빌어본다.

 

둘째 날의 첫 일정은 26위 순교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나섰다.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자랑스럽게 순교하신 성인은 주님 때문에 죽게 됨을 기쁘게 생각하며 우리 주님이 나에게 내려주신 커다란 은혜라고 생각하며 순교하셨다.’는 당시의 외침이 귓가에 맴돌았다. 특히 예수님과 같은 나이인 33세에 순교하신, 본당 보좌신부님의 영명 성인이신 바오로 미키 성인의 유해에 친구 드리며 모든 사제들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스페인에 있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방불케 하는 성 필립보 성당에서 봉헌된 미사에서 본당 주임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다. 특히 “치열한 생의 한 가운데를 지나치며 인생의 황혼기를 준비하는 이 중요한 시기에 성지순례의 축복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도록 큰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부분을 깊이 공감하며 가슴에 새겼다.

오후에는 막시밀리안 콜베 성인의 거룩한 삶의 행적을 찾아 나섰다. 일본 성지 소임을 맡고 계신 이 율리엣다 수녀님은 “그동안 이렇게 열심히 순례하는 팀은 처음 맞게 된다.”면서 “도보는 7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시며 가파른 언덕길을 향해 기꺼이 걸어가 주셨다. 콜베 성인 신부님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형을 당하게 된 동료 수감자를 대신해서 처형을 받으신 분으로 ‘성모기사회’를 일본에 널리 알리고 일본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수년 동안 활동하신 성인의 소박한 집무실, 집기 등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다. 그곳에서 거의 평생 동안 콜베 신부님의 기념사업에 애쓰고 계시는 오자이 토메이 수사님으로부터 성인 콜베 신부님의 생생한 행적을 들으며 절로 숙연해졌고 특히, 성인 신부님의 깊은 성모 신심인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라는 가르침이 새삼 와 닿았다. 이어서 우리 일행은 오우라 지역으로 향했다. 오우라 천주당을 참관하고 접해 있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있는 그라바 공원을 찾았다. 이곳은 18-19세기의 서양문물과 외국인들의 생활양식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공원 내에는 1863년에 완공된 스코틀랜드 출신의 상인 토마스 그라바의 목재저택을 비롯하여 옛날 미츠비시 조선소 승무원들의 휴식과 숙박 장소였던 제2의 도크하우스 등이 있었다.

마지막 날이 밝았다. 부활 팔부가 끝나는 주일날, 오우라 천주당에서 생애 처음으로 일본어로 된, 일본 신부님에 의한(본당 주임신부님과 공동집전), 일본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통해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미사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같은 형식으로 같은 전례주년에 의한 같은 내용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 일행들을 위한 좌석이 앞쪽에 별도로 마련되었고 미사 말미에 다 같이 인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우리 모두 하느님 안에 한 자녀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미사 후에는 때마침 나가사키 항구에서 열리고 있던 범선 축제를 즐기게 되었다. 러시아를 비롯한 해양강국들의 범선이 제각기 위용을 뽐내며 퍼레이드를 펼치며 항진하는 범선 축제가 순례 일정과 맞물려 축제를 즐길 수 있는 행운을 맞게 되어 일본 범선에 승선하여 바다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나가사키 항구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순례기간 내내 대부분 대중교통인 전차를 이용하여 일본사회의 속살을 보다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일정이 자유여행으로 짜여져 있었기에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낭만으로 일행들끼리 끈끈한 우정이 새롭게 생기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서 형제애는 공고해졌고 자기도 모르게 순교신앙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함께 동참해 주신 조성택 주임신부님의 보살핌이요 모든 일정을 준비하고 실행한 김상경 형제와 이한주 단장의 열정이었음을 이 자리를 빌려 모든 단원들을 대표하여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