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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주앙 알랭(Jehan Ariste Alain, 1911
- 1940)〈세 개의 춤: 기쁨
-슬픔
-투쟁〉


박수원(프란치스코 하비에르)|교수, 오르가니스트

 만일 처음 만난 누군가가 당신에게 어떻게 사는지 묻는다면 무슨 대답을 할 것인가? 필자의 경우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나이 마흔 넘어서 세 아이의 아빠고요, 또 여기저기서 가르치고 연주하는 일을 합니다. 한 번씩 가다가 좋아하는 친구들 만나 술 한 잔 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냥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말을 할 때에는 의례히 적당한 미소를 지닌 채 기분 좋게 분위기를 풀어나가는 법이다. 그러나 늦은 밤 홀로 깨어 일을 하면서 밀려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에게 가혹해지는 순간, 그냥 솔직하게 내뱉고 만다. “이것 참, 살기 힘드네!”

누구든지 간에 이렇게 남에게 드러내는 이미지와 속내는 다른 법이지만, 특히 천재라 추앙받았던 음악가들의 삶을 관찰하면 할수록 밖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모습과 달리 이 세상과 소통하는 문제에 있어서 처절할 정도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원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거니와 또 자신이 빚어낸 것을 다른 사람들이 함께 좋아해주길 바라는 직업상 욕구가 강한 탓도 있으리라.

한 100년 전 즈음에 프랑스에서 태어나 활동했던 주앙 알랭이란 음악가는 늘 생각나는 대로 글과 그림을 남기는 버릇을 지니고 있었다. 늘 품고 다니던 수첩 첫 장에 ‘나의 물품 목록’이라며 적어놓은 걸 보면, ‘지나친 경솔함과 약간의 재능’, ‘엄청난 의구심과 약간의 확신’, ‘넘쳐나는 감정과 약간의 절제력’, ‘뻔뻔함과 무관심, 무례함과 어리석음’등 마치 남이 제 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자신의 성품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물건목록 적듯 시시콜콜 나열하고 있다. 아울러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이고 담대한 마음을 드러낸다.

“살다보면 남의 뒤통수를 치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고 괜히 어색한 미소로 본 모습을 감추느니 차라리 그냥 된통 당하는 것이 좀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 미친 듯이 웃을 때도 있고, 아니면 슬픔에 빠져 엉엉 울고 싶을 때도 있지 않나요? 내가 이렇게 해도 될까 싶어서 움츠리거나 망설이기보다는 그냥 자기 자신의 감정을 믿고 거기에 충실하려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습니다. 인생은 미리 짐작할 수 없는 역경과 고난으로 가득합니다. 감추려 하지 말고 싸워 살아남아야 합니다. 뱃고동이 울리고 배가 항구를 떠나가듯 삶과 죽음도 그냥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금은 쑥스러운 듯 종이 한 귀퉁이에 자기자신을 ‘사람 같잖은 놈’이라 적어놓았다. 지나친 겸손인가? 아니면 상처받은 음악가가 이 세상을 향해 쏟아낸 비웃음인가? 여하튼 그에게 음악이란 기쁨과 슬픔이요, 강한 투쟁의 의지가 춤과 노래로 나오는 것이며, ‘너무 좋아서 또 다시, 언제나 듣고 싶은 것’이다. “사람이 겁에 질리면 말도 못하게 되고, 숨게 됩니다. 반대로 즐거울 때는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어린애들은 바로 그렇게 합니다. 진정한 찬미의 노래는 가사가 없는 기쁨의 노래입니다. 가슴에서 우러나는 소리로 기쁨에 가득 차서 외치는 것이지요. 바로 알렐루야가 그렇습니다!” 이제 또 다시 누군가가 당신에게 어떻게 사는지 물어본다면 이렇게 답하는 것도 멋질 것 같다. “저요? 기뻐하다가 가끔 슬퍼하기도 하면서 그냥 그렇게 신나게 싸우면서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