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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①
우리들의 엠마오


임정희(안젤라) | 포항 덕수성당

크고 작은 사건들로 올해는 유난히 많은 이들이 힘든 사순절을 보내야 했다. 교반 식구 중에 한 형제는 병을 얻어 수술을 하면서 오래 떠나 있던 주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는 기쁨을 가족들에게 선사해주었다. 그래서 우리 교반은 어려운 시간을 내어 태백으로 1박 2일의 엠마오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특별한 프로그램은 없었지만 5월의 자연 속에서 마음을 힐링하고 여행지의 작은 성당에서 주일미사도 참례해보고 싶어서였다. 엄마만큼 커 올라온 6학년 아이 둘도 함께해서 모두 10명이 승용차 2대에 나누어 타고 출발하면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을 위해 다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다.

싱그러운 차창 밖의 풍경은 그대로 우리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으며 당일 저녁시간은 조촐하게 보냈다. 그리고 주일 이른 아침, 태백 금대봉 야생화 군락지 산책길에 올랐다. 산림 가꾸기가 잘 되어 있는 산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곳이라 좀 쌀쌀하긴 했지만 발을 옮길 때마다 피어있는 야생화들에 감탄이 이어졌고 연신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았다. 얼레지, 현호색, 노랑제비꽃, 바람꽃, 벌개덩굴 등 사람이 거름을 주며 가꾸어도 이런 조화로운 화단을 가꾸기는 힘들리라 싶었다. 꽃들과 바람의 상쾌함에 주님 찬미의 노래가 저절로 나와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하고 성가를 흥얼거리며 우리는 아버지 화단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처럼 금대봉을 누비며 내려왔다.

이어서 정해진 대로 그곳 밑 길옆의 자그마한 고한성당의 주일미사에 참례했다. 50여 명 안팎의 신자들이 미사에 나와 있었고 조촐한 제대 앞의 소박한 꽃꽂이도 우리를 편안하게 맞아 주었으며 연세 있으신 해설자 형제님의 조용한 안내로 미사가 시작되었다. 그날은 생명주일이었고 엠마오의 길에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복음이 봉독되었다. 신부님의 강론이 시작되었을 때 단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은 감동이 우리 마음을 휩쓸었고 그 순간 “아, 이 분이 바로 그분이시다.”라는 신선한 감동의 눈빛이 살아나 교반 식구들과 함께 신부님의 강론 말씀에로 빠져 들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생명은 오직 하느님의 권능이시고 하느님의 권능이신 생명이 소수 집단의 이기심으로 경시되고 또 우리가 무심히 서로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이며, 세계 각지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보이는 것들도 실상은 대부분 우리 인간이 자초한 일이었다.”면서 “하느님은 살리려 하시지만 당신 혼자 다 알아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어 우리의 응답과 협력과 실천을 요구하시는데 우리가 욕심에 휘둘려 이에 응답하지 못하면 그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벌써 재앙이 시작되고 있다.”는 말씀 등 뼈아픈 감동이었다. 계속해서 “자신의 문제나 자신의 생명이 아니라고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에 무감각할 것이 아니라 같이 아파하는 ‘공감과 연대의식’을 보여주는 것이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첫 번째 길”이라고 말씀하시며 “다행히 전 국민이 세월호 참사를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생명을 존중하고 살려야 한다는 공감과 연대의식이 일어나고 있음은 희망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엠마오의 예수님 말씀이 제자들에게 강하고 힘 있는 감동을 주었듯이 우리 모두에게 그런 힘으로 다가와 떨리는 감동을 주었다. 나지막하고 차분하면서도 강하게 말씀하시던 신부님께 미사 후 “부활하신 예수님이 여기 계셨네요.”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드렸더니 신부님께선 미소만 지으셨다. 그곳 교우들이 주는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씩을 나눠 마시고 성당을 나오면서 왜 그리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쁘고 감사하던지….

한없이 협곡에 이어지던 숲들과 꽃들과 신선한 공기, 하느님의 권능이신 그 싱그러운 자연을 통해 우리 영혼도 힐링이 된 듯 그렇게 돌아와 저녁을 함께 나누며 또 그 엠마오의 예수님 이야기로 똑같은 공감의 감동을 나누었다. 나아가 우리는 모두 태백 여행길에서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웃에게 전할 기쁨과 감동으로 새로운 힘이 생겨남을 느꼈다. 주님은 정말 우리가 뵙고자 열망하면 어느 때, 어디에서든 문득문득 여러 가지 감동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오신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소중한 교반 엠마오였다. 주님께 찬미 드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