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1일(수)부터 24일(토)까지 일본 나가사키·오도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대명성당 고건상(멜키올) 주임신부님의 지도와 임석환(스테파노, 교구 대안교육 담당) 신부님의 인솔 아래 교우 11명이 함께 했다. 특히 임석환 신부님의 성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안내는 물론 숙박호텔, 항공편, 배편, 버스대절, 그리고 중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주선해 주시어 잘 듣고, 잘 보고, 잘 느꼈으며 부수적이긴 하지만 잘 자고, 잘 먹고, 편한 순례가 아니었나 싶다.
상(上)오도에는 하루밖에 머물지 못했지만 그 여운이 짙어 그 순례기를 적는다. 일본 나가사키현의 서쪽에 있는 고토열도에서 그 북부에 자리하고 있는 상오도는 십자가 모양의 7개의 유인도와 크고 작은 60개의 무인도가 있는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지형으로 서해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나가사키에서 고속선으로 1시간 30여 분 거리에 있는 상오도는 다른 성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나가사키현에는 138개의 성당이 있는데 그중 40%에 가까운 53개의 성당이 오도에 있어 “기도의 땅, 신앙의 땅”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박해가 끝난 후 신자들이 모여 살던 곳곳에 성당이 세워져 상오도에는 29개의 성당이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데, 현재 거주민의 25%이상이 가톨릭 신자로 와카마쓰 지역에는 아직도 숨은 기리스탄이 그들의 전통을 계속 지키고 있는 공동체가 있어서 순례의 가치가 있는 곳이다. 또 국가지정 중요문화재인 가시라가시마 천주당과 아오사가우라 천주당도 이 섬에 있다.
임 스테파노 신부님의 설명에 따르면 오무라 영주는 영지에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고 인구가 감소되지 않도록 각 가정에 장남만 남겨두고 남은 아이들을 강제로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기리시탄들은 그 큰 죄를 범할 수가 없었으므로 박해를 피하여 오도로 이주하였는데, 그 수가 늘어 3천 명 정도가 되었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불교 혹은 신사의 신자로 가장했다고 한다. 나가사키 오우라 천주당에서 “신자 발견”이 있은 후 숨은 기리시탄들이 천주교로 돌아왔다고 한다.
일본은 현재 역사는 오래지만 신자의 수는 우리보다 적다. 하지만 진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하셨다.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신자들이 자진해서 재산과 노동을 바치며 자신들의 마을에 크고 작은 성당을 세워 신앙을 지킨 그들의 역사가 신부님의 설명을 뒷받침해준다.
상오도에서 우리 일행은 10여 개의 성당을 순례하였다. 박해가 끝난 뒤 마을로 돌아온 신자들이 손수 사암을 쌓아올려 7년에 걸쳐 완공한 가시라가시마 천주당! 낮에는 노동과 봉사를 하고, 밤에는 생활을 위해서 고기잡이를 하였다니 그들의 그 헌신적인 노력을 짐작하리라. 50여 가구 소수 신자의 힘으로 벽돌로 지은 아오사가우라 천주당에서는 성당 입구 상부의 장미모양으로 된 스테인드글라스의 우아함을 볼 수 있었다. 또 오소마을 33명의 신자들이 팔각형 둥근 형태의 종루와 색이 다른 두 종류의 벽돌을 사용하여 만든 벽면과 함께 잉태한 마리아를 만날 수 있었다. 벚꽃 무늬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었던 오소성당과 성당 종루의 일부가 나가사키의 우라카미 천주당의 피폭 벽돌로 사용된 다이노우라 성당도 인상적이었다.
성당 내부의 줄지어선 기둥 위쪽 부분의 하얀 벽을 오도 특산의 동백꽃으로 장식하고 해변에 비치는 모습이 선명하여 ‘물거울 성당’이라 불리는 나카노우라 성당, 그리고 민가를 구입하여 만든 작은 성당인 와카마쓰오라 성당도 만날 수 있었다. 이 성당 중앙제단에는 지역 신자들의 손에 의해 마리아상이 모셔졌고 그 발밑에는 고토 신앙의 상징인 동백꽃이 장식되어 있었다. 얼굴형은 서양인이 아닌 동글동글한 동양인(고토)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 외에도 히야미즈 성당, 도이노우라 성당, 기리 성당도 순례하였다. 지금도 고속선으로 한 시간 반이 걸리는데 그 시대 박해를 피해 섬으로 이주하면서 신앙을 숨기고, 자식을 살린 그 죽음의 길을 떠올리며 그 신앙을 생각해 본다.
오도는 나무가 우거졌고 공기도 맑았다. 하루 종일 중형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도 머리가 맑다. 자연환경이 베푼 은혜이리라. 도로는 꼬불꼬불한 옛길 그대로여도 차들이 교통규칙을 잘 지키고 있었고, 곳곳에서 도로공사를 해도 전후에 철저한 안내가 있었다. 그 나라에서 하는 일들 - 위안부나 독도문제 등 - 못마땅한 점도 적지 않으나 잘 하는 건 배워야 하지 않을까.
숙박호텔은 산 위의 마아거리타아 리조트 호텔이었다. 호텔 이름인 글씨의 예술성이나 T자를 십자가(+) 모양으로 써놓은 간판이 퍽 인상적이었다. 저녁을 먹고 5분 거리에 있는 성당을 다녀오는데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하다. 북두칠성을 세면서 글의 소재를 주은 것 같다. 저녁에는 무지개가 열린 낙조를 보았고, 아침에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쪽빛바다에 섰다. 맑고 신선했다. 나가사키 일원과 시마바라의 성지, 26성인상의 기념관, 오우라 성당의 자료관, 우라카미 성당의 피폭된 성모님을 모신 경당과 역사관 등도 순례할 수 있어서 더욱 뜻 깊었다. “주님!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 신앙의 삶을 본 받으며 서로 사랑하게 하시고 말씀의 진리 안에 살게 하소서! 아멘.”
(본문 사진제공 : 대명성당 고건상 멜키올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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