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가톨릭문인회 연례행사의 하나로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한티순교성지에서 일일 피정을 했다. 대구에서 북쪽으로 24km쯤 되는 곳에 위치한 해발 600m가 넘는 한티는 깊은 심산유곡에 가파른 고갯길을 굽이굽이 돌아 묵주기도를 하며 가던 중 이미 신부님의 강론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성지로, 그곳은 맑은 공기 속에 그림처럼 말은 없어도 언제나 가고 싶었던 곳이다.
동족간의 배신과 종교탄압을 피해 신자들이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찾아들어 교우 스스로 작은 교우촌을 형성하고 오직 주님을 향한 믿음으로 신앙인답게 살 수 있었던 마을에 병인박해로 처형을 당한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장된 순교성지에 피정의 집이 세워지면서 새로운 신앙의 안식처가 되었다고 한다. 현존하고 있는 옛 공소는 두 채의 초가지붕으로 비닐보자기를 덮어선 채 우리를 맞아주었고 마가렛꽃도 활짝 피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갈대처럼 바람 부는 대로 휘청거리는 사람과는 달리 그들은 오직 주님을 향한 믿음 하나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신앙의 불을 지피며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살았다고 한다. 가혹한 종교탄압으로 이 깊은 심산유곡까지 수색한 총, 칼 앞에 천주를 배신하지 않고 살아서 전교의 사명감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에 추격하여 오는 병사들에게 참혹한 죽음을 당하였을 것이라 생각되어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들의 흔적의 지표인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면서 부끄럼 없는 가톨릭 신자로서 살아왔던가, 아니면 자기중심적인 자유로운 세상 속에서 도망치듯 살지는 않았을까 등등의 뉘우침으로 나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생명의 고귀한 보답으로 주님께 감사하며 나보다 불우한 이웃을 위해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 아닌가 하고 묵상으로 다짐을 했다. 요한복음 6장 44절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는 복음 말씀처럼 주님께서 이 미천한 나를 이끌어 주시리라 믿으며 따라가는 십자가의 길은 굴곡진 인생길이었다. 겨우 한고비를 넘었나 싶으면 언제 어디서나 뿌리칠 수 없는 숱한 악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나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싶었고 또 내가 애타게 갈구했던 모든 것들, 이를테면 분노, 허욕에서 벗어나 나를 지킬 수 있게 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우리를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그 고통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한티의 십자가의 길은 오름과 내림길에서 순교자들의 희생적인 신심을 절실하게 승화시키고 나를 감명시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주님에 대한 신앙을 한층 높은 경지로 이끌어주었다. 이미 노령에 이른 나약한 나이지만 순교성인을 기리며 남아있는 나의 삶에 충실하여 가난한 내가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활동을 함으로써 즐겁고 보람 있게 사는 일, 그것만이 내게 남은 구원의 길이라고 생각해본다.
“봉사하는 사람은 항상 부족한 사람이어야 하며 예수님께서 우리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고 작은 희생을 바칠 때 주님께서 큰일을 하 신다.”는 말씀을 들려주신 대구가톨릭문인회 담당 정태우(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담아, 보잘 것 없고 스스로 낮고 작아지는 삶을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간절히 기도드린다.
* 약력 : 시인, 화가, 수필가로 활동. 〈문학예술〉 수필 신인상수상. 저서로 《기도이게 하소서》, 《숲은 한 음절씩 눈을 뜬다》가 있다. 현 한국문학예술가협회 대구·경북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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