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2세인 A씨는 미혼으로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다. 언니들이 가끔 챙겨주지만 각자의 삶이 바쁘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짐이 될까봐 근처에 조그마한 임대아파트를 얻어서 따로 살았다. 어릴 때부터 누구에게 폐를 끼치거나 신경 쓰게 한 적이 없었다. 본인도 그런 것을 원치 않아서 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지냈다. 주변으로부터 착하고 심성이 곱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그렇지만 혼자 집에 있을 때면 외롭고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간혹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그 외로움이 사무치게 다가와 가슴이 먹먹하고 텅 빈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A씨는 힘들고 괴롭다. 잠도 오지 않고 자더라도 계속 악몽을 꾸게 된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어렵다. 이야기할 사람도 별로 없지만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마음의 말을 조금 꺼내어 놓으면 “혼자라서 그렇다.”, “남편과 아이가 없어서 그렇다.”, “일이 없어서 그렇다.”라는 말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기도 무섭고 두렵다.
술을 마시게 되었다. 처음에는 잠이 오지 않아서 마셨다. 소주 한두 잔을 마시면 잠이 금방 들었다. 몽롱해지면서 외롭고 허전한 느낌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감각이 무뎌지면서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외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소주 한두 잔으로는 잠이 오지 않았다. 더 마셔야만 잠이 오고, 외롭고 허전한 느낌이 잊히고 마음이 내는 소리를 외면할 정도로 감각이 무뎌졌다. 점차 술의 양이 늘어날수록 다음날 깨어나기가 어려웠고 깨어날 때면 지독한 두통과 한층 강렬해진 허전한 느낌은 더욱 가슴을 조였다.
A씨의 일상은 술을 마시거나 취해 있거나 빈 술병을 보며 후회로 얼룩진 시간들로 채워졌다. 가끔 식당에서 일을 도와주던 것도 그만뒀다. 술을 더 이상 마시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모든 생각과 행동은 술에 의존해 있었다.
언니들의 손에 이끌려 병원에 간 A씨에게 내려진 진단은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으로 시작해서 알코올중독으로 이어진 경우였다. 치료를 받으면서 헝클어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도 많이 사라졌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사가 자신의 병을 밝히면서 많은 이들이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병에 대해 좀 더 알고 도움을 받고 있지만 ‘알코올중독’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자기가 술을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건데 치료가 왜 필요하냐는 시선이 팽배하다. 하지만 알코올중독은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장애진단 통계편람에서 ‘알코올 남용’, ‘알코올 의존’으로 정의되는 질환이다. A씨의 경우도 그러하다.
구미종합사회복지관(관장 : 정석수 유스티노 신부) 2층에 위치한 구미알코올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알코올중독’이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술을 끊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힘들지만 이를 악물고 노력한다. 하지만 사회의 편견은 오히려 이들의 단주 의지를 꺾게 한다. 우리 센터는 다른 사회복지단체에 비해 후원이나 자원봉사자도 적은데다 가족들마저도 편견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본다.
지금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편견없이 바라보는 시선이므로,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되길 기대해본다.
* 구미알코올상담센터 : http://www.gmalcohol.or.kr/ (054-474-9791~2)
경북 구미시 검성로 103-2(황상동 110번지) 구미종합사회복지관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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