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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선교이야기
견진성사


서준영(요한)|신부, 볼리비아 선교사목

올해 들어 볼리비아에는 별로 많은 비가 내리지를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저희가 사는 산타크루스에 비가 별로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는 봄이 시작되는 9월에 제법 비가 내려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씨를 뿌릴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 비가 내리지를 않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아마 도시가 성장하면서 도시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숲들을 베어내면서 기후가 변하게 된 게 아닌가 하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산타크루스 시가 이렇게 커지기 전부터 이곳에 살아온 사람들은 8월의 바람과 9월의 비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처럼 이곳에 오래 살지 않은 사람들은 8월과 9월의 바람만을 기억합니다. 그것도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모래 바람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비가 제법 왔습니다. 좀 많이 늦은 10월 말이긴 하지만 길이 떠내려가고, 다리가 끊어지고, 사람들이 사는 집 안에까지 물이 들이찰 정도로 비가 왔습니다. 비록 너무 많은 비가 왔지만, 그래도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비라서 다른 때 같으면 그 비가 참 반가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별로 그렇지가 못했답니다. 왜냐하면 비가 온 날짜가 10월 24일 새벽이었는데, 그날 바로 저희 본당에서는 견진성사가 있던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달에 박상용 신부가 들려준 첫영성체 이야기를 들으셨지요? 여기에서는 견진성사도 첫영성체처럼 해마다 집전됩니다. 2월 초부터 견진성사를 받을 사람들을 신청 받아서 3월 초부터 교리를 시작합니다. 물론 중간에 ‘빠세오(Paseo)’라는 소풍도 가고(5월경),‘까미나따 (Caminata)’라고 하는 성지순례(9월 경)도 갑니다. 올해는 본당에 약 150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견진성사를 신청했습니다. 예년에 비해서 약간 많은 숫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숫자는 아니지요. 그리고 세 곳의 시골 공동체에서도 견진 교리가 시작되었습니다. ‘라스 로미따스(Las Lomitas : 7명)’와 ‘빌랴 플로르(Villa Flor : 13명)’ 그리고 ‘브레챠 시에떼(Brecha 7 : 2명)’, 모두 합쳐서 약 170명 정도가 지난 3월부터 교리를 시작했답니다. 물론 시골 공동체에는 각 학교에서 종교교사로 일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교리교사를 담당하거나 저희 본당에서 교리교사를 파견해서 교리를 했습니다.

 

견진성사도 첫영성체와 마찬가지로 본당에서 양성된 교리교사들이 교리를 진행합니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인근의 학교에서 종교교사로 일하는 사람들이지만(이들은 자신이 속한 본당에서 교리교사로 일하도록 규정이 되어 있습니다.), 일부는 그냥 평범한 대학생들이거나 직장인들입니다. 올해는 모두 10개의 반에 18명의 교리교사로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견진대상자 가운데 약 40명 정도가 중간에 포기를 하였답니다. 단 한명도 탈락하지 않고 모두들 무사히 견진성사를 받기를 원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그렇게 되지를 못했습니다. 중간 중간에 탈락자들이 생기고, 숫자가 많이 줄어든 반들을 통폐합하면서 마침내 지난 10월 24일에 모두 132명이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견진성사를 집전하신 주교님은 브라우리오 사에스(Braurio saez)라는 분이신데, 이번에 새로 산타크루스 교구에 보좌주교로 임명이 되신 분이십니다. 원래는 오루로(Oruro)라고 하는 아주 높은 지역 교구의 교구장이셨답니다. 그런데 최근에 고산병 때문에 심장에 문제가 생기셔서 더 이상 그곳에서 교구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실 수가 없게 되어 결국 이곳 산타크루스 교구의 보좌주교직을 수락하신 분이시지요. 저도 이번에 처음으로 이분을 만났는데, 스페인 사람답게 기질이 아주 쾌활하고 끊임없이 농담을 즐기시는 성격이었습니다. 저희가 사는 곳을 이번에 처음 방문하셨는데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다음에 다시 꼭 방문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지요.

 

견진미사는 저녁 7시 30분에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날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와서 원래 계획했던 야외미사는 취소가 되어버렸습니다. 미사를 드리는 바로 그 시간에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성당 마당이 온통 진흙 밭이었고, 또 언제 다시 비가 올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성당 안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지요. 저희 성당은 아주 좁습니다. 그래서 견진자 132명과 그들의 부모와 대부모들만으로 성당이 꽉 차버려서 많은 손님들이 성당 밖에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비록 좁고 더운 성당에서 봉헌된 견진미사였지만 모든 참석자들이 아주 정성을 다해서 미사에 참례했고, 또한 견진자들도 성령을 받아 모시는 새로운 성령강림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성실히 살아갈 것을 하느님과 본당 공동체 앞에서 약속도 했습니다.

 

견진교리가 진행되는 동안 탈락하게 된 40명 가운데 참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7개월이나 계속되는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포기해버린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본인은 간절히 원하나 그가 처한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실하게 미사와 교리에 참석한 사람들이 갑자기 미사와 교리에 참석하지 않게 될 때, 담당 교리교사가 그 학생의 집을 방문하게 됩니다. 원래 교리를 시작하던 3월에 모두 앞에서 약속한 것이 있거든요. 교리와 미사를 포함해서 8회 이상 결석하게 되면 견진성사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성실하게 참석하다가 갑자기 결석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잘라버릴 수가 없어서 방문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사연들 가운데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요? 이 학생의 이름은 미구엘(Miguel)입니다. 미구엘은 그렇게 드러나지 않게 교리에 참석했답니다. 그렇지만 8월까지 단 한번의 지각도, 결석도 없이 성실하게 미사와 교리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9월이 되면서 갑자기 연락도 없이 미사와 교리에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담당 교리교사가 그 집을 방문하게 되었지요. 저희들이 사는 곳은 아직 주소가 없는 곳이기 때문에 담당 교리교사는 물어물어 그 집을 찾았습니다.

 

이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집이었다고 해요. 판자로 대충 두른 방 한 칸짜리 집에 온 식구가 함께 먹고 자고 하는 그런 집이요. 게다가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그런 가정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혼자 일을 해서 먹고 사는 그런 가정이요. 그런데 너무 가난해서 전기와 수도가 끊겨버렸대요. 그래서 밤마다 촛불을 켜고 생활을 하다가 그만 불이 나고 말았던 겁니다. 온 집을 홀랑 다 태우고, 그것도 모자라서 잠을 자던 동생 한명과 어머니가 화상을 입었습니다. 다행히 미구엘과 다른 동생들은 불이 난 곳에서 좀 떨어져서 자고 있어서 많이 다치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집에서 유일하게 경제 인구였던 어머니가 화상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구엘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시작한 일이 토요일과 주일까지 일을 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에 미사와 교리에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주위의 도움으로 화상을 입었던 어머니와 동생 한명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어머니가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미구엘은 미사와 교리에 나오지 못할 처지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결국 견진성사를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더 걱정스러운 것은 내년에도 미구엘이 견진성사를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화상 부위가 얼굴이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직장생활을 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지요. 만약 그 얼굴 때문에 어머니가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면 미구엘이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하고, 그렇다면 내년에도 견진교리와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년 2월에도 새롭게 견진 교리교사들이 구성될 것이고, 새로운 견진대상자들과 함께 1년 동안 교리반이 운영될 것입니다. 물론 내년에도 미구엘과 같은 견진대상자들이 나타나겠지요. 그리고 미구엘처럼 저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겠지요. 그렇지만 저희들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여기서 계속해서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하느님이 저희들을 도구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이 되도록 사용하고 계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미구엘에게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되어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늘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도 우리를 자신의 Padre(신부, 아버지)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리라는 믿음도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