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의 무더위가 연신 온몸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예전엔 방학이라 견딜만 했는데 올해는 방학조차 2주뿐이라 8월 한여름부터 2학기가 시작되어 더욱 힘겹게 여겨졌습니다. 대한민국 고등학교의 하루는 정말 깁니다. 우리 학교도 예외일 순 없습니다. 새벽 6시만 되면 기숙사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먹게 하기 위해 10여 명의 선생님들이 학교로 등교를 합니다. 7시가 되면 기숙사 학생들과 형설반, 심화반 학생들의 아침 자율학습이 시작됩니다. 오는 잠을 뿌리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과 이들을 잠으로부터 떼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사들과의 한 시간짜리 팽팽한 긴장은 시작됩니다. 어떤 날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졸업한 후 이 아이들이 하나같이 우리들에게 감사하다고 하니 이 또한 멈출 순 없습니다. 또한 이들 중에는 그 이른 시간의 피곤함 속에서도 꿋꿋하게 책과의 씨름을 견뎌내며 자신의 꿈을 위해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는 아이들이 있으니 이런 고단함이 어찌 나쁘다고만 하겠습니까?
짧은 2주간의 방학에도 일주일은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을 했습니다. 마지막 야간 자율이 있던 목요일은 어지간히도 공부가 하기 싫었나봅니다. 이제껏 열심히들 야간 자율학습을 잘 하던 우리 2학년 중 몇몇 녀석이 야간 자율학습에 불참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음날 2학년 교무실 앞은 볼만 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우리 선생님들은 전날 야간 자율학습 불참자들을 아침부터 불러 모아 꾸지람을 하시고 벌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우리 반은 자타가 인정하는, 2학년 중에서도 애물단지가 무지 많은 반입니다. 제 예상은 어긋남 없이 우리 반도 8명이나 야자에 불참했습니다. 그 중엔 모범생들도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 가는 걸 보며 자신도 모르게 가방을 챙겼다는 아이들의 맘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침부터 호되게 꾸지람을 한 뒤, 약속을 지키지 않은 벌로 엉덩이를 각각 다섯 대를 때렸습니다. 고3의 수능 100일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은 사실상 고2에겐 고3의 시작입니다. 내년 이맘 때면 이 고2들도 수시 원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몰래 야자를 빼먹은 그들을 이해는 하지만 혹시라도 그냥 넘어가면 다음에 또 그래도 되는 것으로 받아 들일까봐 제대로 혼을 냈습니다. 그리고 전날 빠진 야자를 방학 마지막 날인 금요일 저녁에 교실에서 저와 다시 오붓하게 야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가끔이긴 하지만 체벌 금지인 요즘 시대에 저는 용감하게 매를 듭니다. 오래전 퇴임하신 교장 선생님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식이 정말 잘못하면 부모는 자식에게 매를 든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자식은 부모에게 반항하지 않는다. 이 선생은 아이들에게 엄마라면서! 바르게 만들기 위해, 잘 되게 하기 위해 잘못 앞에서 매 한 번도 들지 못하는 게 어디 부모고? 감정적으로 말고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맞아야 고쳐질 것이라 판단되면 매를 드는 것도 사랑이다.” 그리곤 제게 매를 하나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후로 저는 ‘저 녀석이 내 아들이다.’라고 생각한 후 매를 듭니다. 그래도 매를 들고 난 후의 기분은 정말 별로입니다. ‘정말 이 방법밖에 없니?’ 스스로에게 여러 번 되물어봅니다.
사실 저는 그 전날, 혼자서 짧은 방학이지만 그래도 고생한 아이들을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이름 모를 천사가 보내 준 통닭 몇 마리와 제가 준비한 수박 두 통, 그리고 7월 생일을 맞는 아이들의 생일 선물로 1학기를 마무리하는 파티를 했습니다. 매를 맞은 8명도 먹는 것 앞에선 기분이 좋은지, 엉덩이 맞은 것도 금방 잊고 연신 웃으며 신나게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습니다. “파티가 끝나면 쌤이랑 헌혈하러 갈 사람 있냐?”는 제 말에 이 애물단지 8명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의외의 모습에 왜냐고 물으니 “맛난 것도 먹었고, 야자도 해야 하니 그 사이 빈 시간에 헌혈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좀 전에 매를 댄 것이 왠지 더 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착한 아이들의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전 야간자습하기로 한 것을 취소하고 이 애물단지들에게 ‘명량’이란 영화를 보여 주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온 후 큰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인사하는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니 제 맘도 훨씬 편해졌습니다. 한참 뒤 제 핸드폰으로 문자가 한 통 왔습니다. 잘못 했는데도 이렇게 영화까지 보여주셔서 고맙다는 인사와 더불어 영화에서 본 이순신처럼 자신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문자 내용을 몇 번이나 반복해 읽으며, 이런 좋은 아이들을 제게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날 ‘명량’을 보며 저는 이순신 장군이 그의 아들 이회와 대화를 나누면서 한 말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두려움은 필시 적과 아군을 구별치 않고 나타날 수가 있다. 저들도 지난 6년 동안 나에게 줄곧 당해온 두려움이 분명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승리할 수 있다.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말이다.”
12척으로 어떻게 그 많은 왜군을 이길 수 있냐는 아들의 물음에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내뱉는 이순신 장군의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힘겨운 싸움에 지쳐가며, 아무리 공부해도 오르지 않아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말인 것 같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저는 아이들에게 줄 2학기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두려움이 아무리 커도 승리할 수 있다.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말이다. OO야! 우리,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그리고 마지막에 웃자.”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인용한 책갈피를 만들며 한 명 한 명에게 힘내자고 격려의 글을 적는 그 늦은 밤이 제겐 한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사람을 들뜨게 만드나 봅니다.

새벽녘! 따뜻하게 데워진 가슴으로 자리에 누운 저는 이런 저런 생각에 한참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 참 좋은 시절입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으니 제겐 무척이나 아쉬움이 큰 시절이기도 하고 후회도 참 많은 시절입니다. 그보다 더 큰 것은 그리움인 것 같습니다. 그 시간대를 떠올리면 가슴 한 편이 아련해지며 그리운 얼굴들이 그 때 그 모습으로 제 망막 앞을 채웁니다. 언젠가는 이 아이들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하겠지요. 먼 훗날 그 때! 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제가 조금이나마 그들 삶에 도움이 되었던 사람, 소중한 사람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봤습니다. 어느 새 밝아오는 해가 제 창문을 두드립니다.
* 이유정 선생님은 계산주교좌성당 신자로,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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