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에 염색을 하려다 거울에 비친 나의 본 모습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가장 투자를 많이 한 입안부터 먼저 들여다보았다. 아래 어금니 두 개와 앞니 세 개 외는 본래 치아가 아닌 의치다. 파마한 머릿밑은 하얗게 돋아 띠를 만들어 인공과 자연의 경계가 그어져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러 받은 치아를 그대로 두었다면 나는 이미 합죽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반백이 된 머리를 감추려고 머리카락을 낱낱이 뒤지며 물을 들였다. 물세수를 한 맨 얼굴을 살피니 잔주름, 굵은 주름, 점과 엷은 검버섯들이 마치 지도책 속에 산맥과 강과 평야를 표시한 듯 온 얼굴에 빡빡하다. 제법 공을 들여 밑화장과 덧분을 바르고 눈썹도 그리고 입술도 발라 본다. 화장 전 모습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남의 눈에 쉽게 띄는 외양엔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은 특별한 신호를 보내기 전에는 그냥 넘긴다.
6년 전 대장암 판정을 받았을 때 좀 더 일찍 발견하지 못한 것에 무척 후회했다. 눈에 보이는 곳에 생겼다면 금방 제거했을 텐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터를 잡는 병줄을 잡기란 누구도 쉬운 일이 아니다. 생로병사가 자연의 순리인 것을, 날로 발달한 과학과 의술로 생명이 더 연장된다. 상한 장기를 들어내어 인공장기를 교체까지 하니 평균 수명이 길어져 저승에서 놀 사람들이 이승에서 노니 세상이 바글바글 하다.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조물주의 영역을 침범했으니 그들에게 내릴 하느님의 벌이 보통 벌이 아니지 싶다.
일전에 대소댁 혼례식장에서 집안 동생의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진 걸 보았다. “염색을 좀 하지 왜 그러고 있느냐?”고 했더니, “직업상 일부러 염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갓 40대중반인 동생은 회계사다. 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고객들이 신뢰를 더 하는 것 같아 그대로 두고 있다고 했다. 적당하게 늙어 보이는 게 때론 경륜을 쌓은 노련미로 인정된다고 하니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갓 칠십인 나의 머리는 까맣고, 40대 중반인 동생의 머리는 희끗희끗하다. 자연의 모습 그대로인 동생은 흰 머리로 신뢰를 얻기 위함이고 나는 덜 늙어 보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나의 할머님께서는 나와 같은 70세쯤일 때 백발 할머니셨다. 동백기름 자르르한 머릿결에 은비녀를 꽂으시고, 여름 날 모시, 치마적삼 일습으로 부채질하신, 집안의 상어른이셨다. 거울 속에 비친 지금의 나를 50여 년 전의 내 할머니의 모습에 덧씌워 비춰본다. 파마한 까만 머리에 붉은 티셔츠, 청바지 차림에 구두 신은 내 모습에서 치아가 다 빠진 합죽 할머니가 은회색 머리 단에 쪽진 비녀를 하고, 모시 적삼, 치마 일습에 흰 버선, 흰 고무신, 반백의 할머니가 수술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면 천수를 다했다며 저승 문 앞에 있을 것이다.
몸에 병이 나면 의사와 과학이 고쳐주지만 내 양심만은 내가 보수하고 부수고 취향대로 고쳐 가면서 산다. 남이 볼 수 없다는 핑계로 내 양심을 속여 가면서 한 행동에 남들이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으로 비아냥거림을 받은 적은 없었는가? 양심이 시키지 않는 일시 모면을 위한 임기응변식 가림이 나를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준 일은 없었던가? 좀 더 보람 있는 삶을 위해 가진 종교가 오히려 걸림이 되어 음성을 아는 본당신부님께 고해하지 않고 타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본 일은 없었는가. 내 양심은 묻는 차례로 다 그랬다는 답을 주고 있다.
남에게 나의 본 모습을 보이기 싫어 염색약으로 검게 물들인 내 머리, 다 빠져버린 치아를 의술에 의해 다시 심어 놓은 후 내 상을 거울을 통해 보고 있다. 모두가 제 자리인양 당당히 버티고 있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나의 양심을 내가 허물기도 하고 덧칠을 해 남에게 보일 수는 있어도 맘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본 모습은 나만이 볼 수 있다.
조물주가 주신 나의 양심을 되도록 본래대로 간직하고 싶다. 많은 공사를 했지만 머잖은 여생이다. 내가 태어날 때 남은 웃고 나는 울었다고 한다. 내가 갈 때는 남은 울고 나는 웃는 자가 되라고 했다. 후회와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만족할 수 있는 마지막 웃는 모습, 그 길은 누구도 원하는 길이다. 지금 거울을 보면서 웃는 연습을 해본다. 처음은 일부러 웃은 웃음이 일그러진다. 그러나 자꾸 웃으니 차차 밝은 웃음이 된다.
거울 속처럼 나는 변화 될 수 있다. 누구의 도움보다 나 자신의 힘으로, 병마를 이김도 나를 둘러 싼 불만도 그것을 고칠 의사는 나다. 외면적 아름다움보다 맑은 영혼을 가진 내적 아름다움이 자신을 더욱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거울을 말끔히 닦고 다시 나를 본다. 잘 비추어진 거울 속 나는 밝게 웃고 있다. 내 양심을 비추는 거울도 이렇듯 깨끗하도록 닦고 갈아야겠다.
* 약력 :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달구벌·대구문학, 가톨릭문인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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