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새로운 노래를 주님께
피에르 코쉬로(Pierre Cochereau, 1924
-1984) 즉흥연주 〈춤곡 모음, 1974〉


박수원(프란치스코 하비에르)|교수, 오르가니스트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가로지르는 세느강 한 가운데에는 오랜 세월 동안 흙과 모래가 쌓여 이루어진 작은 섬이 있다. 강폭이나 섬의 크기도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것이 대한민국 서울을 가로지르는 장대한 한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거기 세워진 멋진 건축물 하나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노트르담대성당! 이 건축물은 ‘우리 어머니’, 다시 말해 ‘성모 마리아’의 이름으로 약 850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많은 사건들을 겪어왔다.

옛 성당을 허물고, 무른 땅에 전봇대만한 나무 말뚝을 수없이 박아 기초를 다진 후, 초석을 다시 놓고 제대의 방향을 예루살렘이 있는 동쪽으로 두고 거기다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겨우 비를 피할 작은 공간을 마련하는 데에 이십 년이 걸렸다. 그때부터는 장막을 친 채로 미사를 드리면서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지어나갔는데 오늘날처럼 크레인으로 무거운 자재를 훌쩍훌쩍 들어 올리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시대인지라 돌 하나하나 지고 오르내리다 병들고 다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행여나 벽이라도 무너질 것 같으면 곧장 설계를 바꾸어 지지대로 떠받치는 등 우여곡절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69미터에 달하는 두 탑을 올려 온갖 조각과 색유리로 마무리한 다음 이제 다 지었다고 두 손 툭툭 털고 보니 두 세기 남짓 지나고 난 후였다.

희생과 노력이 빚어낸 정갈한 아름다움이여! 세월을 간직한 숙연한 신비로움이여! 최대 9천명이 들어와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이 엄청난 공간은 왕과 교회의 힘을 드러내는 상징물로, 화려한 영광을 누렸지만 대혁명이 일어나자 폭도들에게 유린당하는 수모를 피할 수 없었다. 성인과 천사 조각상들은 목이 잘리고 벽들은 허물어져서 나폴레옹 대관식을 부서진 벽을 가린 채 거행했을 정도였다. 마침내 마구간이나 창고로 쓰일 지경에 이르러 아예 없애버리자는 말도 나오게 되니, 당대 문학가 빅토르 위고와 같이 뜻있는 이들은 이 성당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유명한 《노트르담의 꼽추》란 소설이 발표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의 일이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대대적인 모금활동이 펼쳐진 결과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원될 수 있었던 것 같다.

1970년대, 파리와 뉴욕을 왕복하는 새 항공 노선이 열렸다. 제비처럼 날렵한 몸매로 뾰족한 조종석 부분이 위아래로 접히는 콩코드 여객기가 개발되어 소리보다 두 배 더 빠른 속도로 대서양을 가로질렀다. 무척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음속을 통과할 때 생겨나는 엄청난 소음으로 말미암아 뉴욕 시당국과 환경 단체들이 온갖 규제로 제동을 걸기 시작했고, 콩코드 운항 금지 운동이 사방에서 일어났다. 아무도 이렇다 할 말 한마디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을 때, 노트르담의 오르가니스트였던 피에르 코쉬로가 대담한 필체로 르몽드 지에 다음과 같은 이색 성명을 발표했다.

“노트르담의 오르간은 허용기준치를 초과하는 큰 소리를 내므로 지금 이 시간부로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에서 미국 오르가니스트들의 연주를 금지하기로 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이 사건은 노트르담의 이름을 내걸었기에 이슈가 될 수 있었던 해프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