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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배움터, 학교


홍창익(비오)|신부, 경주 근화여자중학교 종교교사

가끔씩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선생님 제자들의 얘기를 종종 듣는다. 특히 시골에서 교사 생활을 하신 분들은 그때의 학생들이 성년이 되어 결혼을 해도 자기들은 여전히 중학교 시절의 선생님과 아이들로 남아 한번씩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졸업을 했으니 이젠 선생님과 술도 한잔하면서 사회 살아가는 얘기, 아이 키우는 얘기 등등 선생님께 배웠던 삶을 현실로 살아가면서 삶을 나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곳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우선 학교는 학업을 우선시해야 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학교의 존재 이유는 학생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곳인 동시에 인성을 중요시하고 또 인간이 누구인가를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다. 교육이란 것이 어느 하나만을 지칭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의미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공동체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

 

학교 안에서 선생님과 학생

학교에서 가장 밀접하고 중요한 관계이면서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사제 관계는 학생의 인생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요즘은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그래서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생각까지도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고 볼 수 있다. 부모가 안 계시는 아이에게는 부모가 되어 주고, 먼저 인생을 살아가는 선생(先生)으로서 인생의 선배가 되어주고, 때론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다. 어떤 선생님의 경우는 집안사정이 안 좋은 아이를 데리고 목욕탕까지 가서 씻기고, 밥 챙겨주고, 아침에는 학교에 데리고 오기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쯤 되면  부모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학교 수업시간 45분 내지 50분 동안 줄곧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만 하지 않는다. 때론 그 내용과 연관해서 인생의 의미나 선생님이 살아온 삶을 얘기하면서 인생 공부도 함께 하는 곳이 교실이다. 또 부모에게나 친구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거리들을 선생님들께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이성 친구얘기, 장래 자기 모습에 대한 얘기, 집안 얘기 등등. 신뢰감만 형성되면 얼마든지 친구의 역할도 해 줄 수 있다. 그리고 선생님은 자기들의 안식처이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라고 생각한다. TV나 인터넷에 가끔 불미스러운 기사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선생님은 살아 있다.

 

학생과 학생

학교 마치고 학원 가는 아이들이 많다. 어떤 아이들은 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는다. 어떤 아이는 학교 수업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고, 학원 시험 준비까지 하는 아이들이 있다. 참 안타깝고 한심스러운 일이다. 잘못된 교육정책이 만들어놓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학업 이상의 것을 배운다.

 

아이들은 함께 있으면서 알게 모르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알게 된다. 학교 그리고 교실은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작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교실 안에서 친구들과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투표해서 자기 반의 반장도 뽑고, 학급의 일을 부서별로 나누어서 하는 협동심과 사회 참여의식을 배운다. 때로는 자기가 하기 싫어도 남을 위해서 청소도 해야 하고, 한 사람 때문에 반 전체가 벌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어려운 친구들을 위해 모금해서 돕기도 하면서 세상살이를 몸으로 하나씩 배워 가는 곳이다.

 

이처럼 아이들은 학원이나 집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학교에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삶을 배워 나간다. 학생들은 서로 서로에게 선생님이 되는 것이고, 교실은 삶의 배움터인 것이다.

 

학교와 가정

교육에 있어 학교 따로 가정 따로는 절대 될 수 없다. 학교에 아이들을 맡겨 놓았다고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부모는 학교에서 자기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평소에는 관심이 없다가 무슨 일만 터지면 찾아와서 황당한 얘기만 나열한다.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다,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 학교에서는 뭘 했느냐? 등등 남의 탓으로만 돌려 버린다. 학교의 교육이 이어지는 곳이 가정이고, 가정교육이 이어지는 곳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부모의 관심과 학교의 열의가 함께 어우러질 때 아이들은 올바른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는 삶의 배움터다. 지식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고, 자기 혼자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학교는 삶의 지혜를 찾도록 해주는 곳이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알도록 해 주는 곳이다. 선생님들은 인생 선배로서 자기의 지혜와 지식과 삶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래서 학생은 그 선생님의 자양분을 먹고 올바로 튼튼하게 자라난다. 그리고 사회에 나아가서 자기의 몫을 다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학교 붕괴, 교실 붕괴라는 말들이 한때 유행처럼 나돌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학교는 살아있다. 그리고 선생님들도 살아 계신다. 학교현장에서 직접 사목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나 자신이 느낀 것은 절망보다는 희망이, 답답함보다는 밝은 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아이들이 그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