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은 쌀쌀해진 날씨와 차가운 바람으로 누구나 마음 한쪽이 선득해짐을 느낍니다. 풍성하게 매달려 있던 많은 열매들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자취를 감추고, 누런 곡식의 물결로 출렁이던 들녘도 이젠 휑하니 찬바람만 끌어안고 있습니다. 넉넉함 뒤에 만나는 상실감이라 한겨울보다 마음이 더 허전한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3 수험생을 둔 부모에겐 유난히도 춥고 마음 졸이는 시간이 바로 대입수능시험이 있는 11월입니다. 고3 담임을 여러 해 맡았던 저 역시 이 11월이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가톨릭학교인 만큼 우리 학교는 수능 전 고3 수험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전체 미사를 드립니다. 수능을 앞둔 고3 학생들과 담임들이 교실 문을 나서 미사를 드리는 3층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양 옆으로는 후배들과 교사들이 수험생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큰 박수를 치며 “수능 대박”을 기원합니다. 서로가 그 간절함을 알기에 종교를 떠나 모두가 마음을 다해 격려하고 기도합니다. 미사 시간 내내 지나간 시간을 곱씹으며 간절함으로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는 고3 수험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연신 제 마음이 소리를 지릅니다. ‘주님, 이들을 도우소서. 이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소서. 이 일로 이들이 상처입지 않게 하소서.’
읍 단위 학교라서 우리 학교 고3들은 경산시에 소재한 학교에 가서 시험을 칩니다. 그래서 매년 우리 학교는 버스를 대절해 담임들이 학생들을 인솔해 각 시험장에 데려다 줍니다. 새벽 6시 30분! 겨울의 새벽은 참 더디게 옵니다. 어두컴컴한 운동장에 아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그만큼 날도 점점 밝아옵니다. 7시 정각이 되면 가족들과 선생님, 후배들의 환송을 받으며 떨리는 가슴의 고3들을 태운 버스는 교문을 나섭니다. 교문이 닫히고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하던 시험장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우면 우리 선생님들도 그제야 아침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합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학교 고3 선생님들은 수능 날 학생들이 시험 치는 동안 성모당에 가서 성모님께 도움을 청하고, 초대 교장이셨던 이임춘 펠릭스 신부님의 묘를 방문해 이들을 도와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느 해엔 불교를 믿는 아이들도 있다는 생각에 간절한 마음으로 절까지 찾은 적도 있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기 한 시간 전부터 시험장 앞에 삼삼오오 서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우리 학교 교사들을 보고 어떤 학부모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부모보다 더 하네. 부모들도 다 안 오는데!” 그 말씀을 들으며 가슴 한 쪽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교 고3 선생님들이 동료라 참 행복했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다시 버스에 오르는 아이들의 등을 두드리기도 하고 안아보기도 하며 “야들아! 수고했다. 고생 많았다.”라고 말하면서도 아이들 표정을 살피느라 교사들은 정신이 없습니다. 표정이 좋은 학생을 보면 덩달아 교사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고, 구겨진 얼굴로 시선을 외면하는 아이들을 보면 교사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를 듣습니다. 반 아이들 시험 못 친 것이 마치 자신의 잘못이기라도 한 것처럼 속상해 하고 마음앓이도 합니다.
몇 년 전 수능 다음 날! 늘 당당하고 성실하던 우리 반 실장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고개를 수그린 상태로 계속 그 자리에 앉아만 있었습니다. 뭔가 위로의 말을 던지고 싶었지만 금방 도망가 버릴 것만 같았던 그 아이의 눈빛이 너무 참담해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종례를 하며 저는 조심스럽게 실장을 따로 잠깐 남으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복도 통로에서 “아들!”이라고 부르는 한 마디에 그 아인 제 어깨에 머리를 박고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은 그렇게도 수능이란 시험 하나로 아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현실이 싫었고, 그런 현실을 만드는 어른이라 저 스스로에게도 몹시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힘겨운 11월이 그래도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누군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하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적 삶의 본질인 사랑의 바탕에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온전한 희생이 있음을 십자가 죽음으로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 성모 마리아가 계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고통을 곁에 서서 그대로 다 지켜보시고, 그 주검을 껴안으신 채 무너진 가슴으로 아들을 지켜보셨던 성모어머니의 심장은 핏빛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이런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고스란히 닮은 우리네 어머니들이 또 계십니다.
몇 년 전 수능 날! 예외 없이 그날도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유난히 추웠습니다. 아이들을 시험장 안으로 다 들여보내고 돌아서려는데 시험장 문 앞에 홀로 서서 교문이 도망이라도 갈까봐 문살을 꼭 잡은 채 고개를 수그리고 기도하시는 낯익은 어머니 한 분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학교 고3 학생의 어머님이셨습니다. 날이 추운데 서 계신 그 뒷모습이 무척이나 애처로우면서도 너무나 완강해 차마 함께 떠나자는 말 한마디도 못 걸고 저희들은 자리를 떴습니다. 아침 8시의 그 어머닌 오후 3시가 넘어 우리 교사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까지 동상처럼 그 곳에 그렇게 덩그러니 서 계셨습니다. 마치 원래부터 교문과 하나였던 것처럼 아침에 뵈었던 그 모습 그대로 그렇게! 하지만 그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배신한 시험 결과는 교문을 나서는 아들의 얼굴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어머닌 아들의 찬 손을 쥐고 끌어안은 채 어깨를 다독다독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뵈며 전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다 성모님 마음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부산 치매 할머니〉라는 문구가 있어 궁금해 클릭을 했습니다. “남루한 행색의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 두 개를 들고 거리를 헤맨다. 한 시간째 왔다 갔다 한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한 부산 아미지구대 경찰들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한 분을 만납니다. “우리 딸이 애를 낳고 병원에 있다.”라고 말씀하시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딸의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상태였답니다. 후줄근한 보따리만 꼭 부둥켜안고 발을 동동 구르는 할머니의 사진을 찍어 동네에 수소문한 끝에 딸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낸 경찰들은 할머니를 병원까지 모셨다고 합니다. 겨우 딸과 만난 할머니는 갓난쟁이와 함께 누워있는 딸 앞에 주섬주섬 보따리를 풀었답니다. 할머니께 그렇게도 소중했던 보따리 속에는 아기를 낳은 딸을 위해 준비한 다 식어버린 미역국과 나물반찬, 흰 밥이 있었답니다. “어여 무라.(어서 먹어라.)”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들은 딸과 병실 안의 사람들은 그대로 눈물바다를 만들었답니다. 치매로 모든 기억을 잃은 그 할머니가 그래도 끝까지 놓을 수가 없었던 마지막 하나는 바로 “엄마! 어머니!”였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사랑이 있는데 한낱 시험 하나에 우리 아이들이 무너지겠습니까? 성모 어머니를 꼭 닮은 세상의 어머니들! 우리 예수님처럼 아무런 대가 없이 온전히 다 주시는 엄마! 당신들의 사랑이 있어 시린 11월이 이렇게도 따뜻한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세상의 모든 아들, 딸들! 오늘 어머니를 꼬옥 한 번 안아 드립시다.
* 이유정 선생님은 계산주교좌성당 신자로,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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