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을 나설 때마다 마주치는 산딸나무,
계절 따라 몇 차례 몸을 바꿔도
느낌은 언제나 그대로다
사람의 아들 예수와 산딸나무 십자가,
그 기막힌 골고다 언덕의 사연 때문일까
귀가 때도 어김없이 나를 굽어보는 산딸나무
늦봄에 흰 십자가 꽃잎턱에 맺히던 열매는
어느덧 영글어 검붉은 핏빛,
잎사귀들도 붉게 물들었다
산딸나무 꽃은 왜 꽃이 아니고
열매를 받치는 십자가 모양의 꽃잎턱일까
잎도 열매도 때 되면 성혈처럼 붉어지는 걸까
꽃 피우기보다 오직 열매를 받치기 위한
꽃잎, 그 받들어진 열매 빛깔 따라
붉게 타오르다 지고야 마는 잎들
집을 나서거나 돌아올 때마다
나보다 먼저 나를 굽어보는 산딸나무,
단풍도 열매도 이젠 다 비워내려 하고 있다

* 약력 : 197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림자의 그늘』, 『우울한 비상의 꿈』, 『물속의 푸른 방』, 『침묵의 푸른 이랑』, 『침묵의 결』, 육필시집 『유등 연지』 등이 있다. 대구시문화상(문학), 동서문학상, 한국가톨릭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대구예술대상 등 수상. 매일신문 논설주간, 대구한의대 겸임교수, 교구평협 부회장, 범물성당 총회장 등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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