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이 마무리 되는 한 해의 끝에 서 있는데도 올 12월은 왜 이리 분주한지 모르겠습니다. 날은 점점 추워 오는데 주변은 여전히 서늘한 이야기들만 가득합니다. 무섭고 기억하는 것만으로 슬픔이 차오르는 사건, 사고가 많았던 한 해라 그런지 이 마지막 달에는 좋은 이야기만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래도 올해는 이 추운 계절에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우리 아기 예수님처럼 당신의 몸을 낮추시며 소박하고 겸손하게 우리를 찾아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계셔서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누추한 곳에 당신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이 있는 12월이기에 우리 마음은 또 이렇게 설레나 봅니다.
우리 학교엔 ‘토닥이’와 ‘다독이’가 있습니다. ‘토닥토닥 카페’는 장애학급 친구들이 자신들의 도움반 선생님의 보살핌 아래 운영되고 있는 교내 카페이름입니다. 장애로 다른 아이들과 지적 수준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한 걸음씩 자신을 키우는 발걸음을 내딛는 도움반 친구들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학교 구성원 모두가 어깨동무하고 가자는 의미를 가진 말이 ‘토닥’입니다. 커피 만드는 법을 익히고, 주문을 받고, 돈 계산을 직접 하는 그들의 모습은 참 대견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작은 것 하나까지도 반복해서 가르쳐야 하는 도움반 선생님의 수고스러움이 있었기에 이 아이들에게 ‘내일’이라는 희망이 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다독이’는 국·영·수 각 과목별로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해 기초부터 하나씩 다지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희망을 키우는 학습반 이름입니다. 기초가 부족해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적이 잘 오르지 않거나,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몰라 고민하는 아이들을 위해 야간수업까지 하면서 그들이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도록 그들의 어깨를 다독다독 두드리며 가자는 의미에서 ‘다독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수업이라 그런지 하루 종일 수업을 들어 피곤할 텐데도 저녁시간 수업에 임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을 냅니다. 그래서 전 어느 수업보다 야간 다독이반 수업을 할 때가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열심히 자신의 도약을 준비하는 이들이 졸업식 날 자신이 꿈꾸던 삶에 도달한 기쁨에 입가에 미소를 띠며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다보면 짜릿함마저 느낍니다.
 
문득 몇 달 전 받은 편지 한 통이 생각납니다. “선생님들이 믿어주고 격려해주신 덕분에 저는 이렇게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믿어주시고 기도해주셔서요.” 이 구절을 떠올리며 전 지금 그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재작년에 졸업한 녀석으로 참 좋은 인성을 지녔고 삶의 목표도 뚜렷했으며 항상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성적은 늘 제자리걸음을 하며 아이의 속을 까맣게 만듭니다. 녀석은 학교 정기고사나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슬픈 눈빛을 하곤 저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저에게 꼭 확인합니다. “쌤! 저 할 수 있을까요? 저 할 수 있겠죠?” 그 안타까움과 간절함에 지켜보는 저조차 울컥하고 울음이 목구멍을 치올라 오지만 아이를 더 힘겹게 할 것 같아 꾹 누릅니다. 그리곤 멀대 같이 큰 키에 꾸부정하게 서있는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저는 말합니다. “걱정 마. 넌 반드시 될 거야. 우린 할 수 있어.” 그리고 연이어 말합니다. “널 좋은 도구로 쓰실 수 있도록 하느님께 도와달라고 같이 기도하자.” 하지만 수능시험이 코앞에까지 왔는데도 성적은 아직도 위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수능 전날 녀석의 손을 잡고 저는 말하고 있습니다. “걱정 마. 넌 될 거야. 할 수 있어. 기도하마.”
녀석은 수능 시험을 가장 잘 쳤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자신이 목표하던 곳에 안착했습니다. 녀석의 편지는 저를 행복한 교사로 만들어 줬습니다. 그리고 믿는다, 기도한다는 것이 이들에게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는지 새삼 확인하게 해줬습니다. 그래서 전 이 글을 쓰며 또 다시 저 자신에게 되뇌어 봅니다. 포기를 못하는 교사가 되자고요. 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교사가 되도록 열심히 애쓸 것입니다. 올해도, 내년에도, 또 먼 훗날에도 또 이런 편지를 받으며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사랑 속에 형제 모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형제에 손 맞잡고 가로질러 들판 -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김남주 님의 시로 된 성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의 가사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를 항상 외치고 계신 우리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것 같아 이 성가를 부르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제 의지가 다시금 불타오릅니다. 같이 살라고 하나가 아닌 둘을 내신 하느님,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을 성경 속에 늘 말씀하시는 주님의 가르침처럼 우리 아이들이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세상을 살아가면 정말 좋겠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저는 스무 명 남짓한 다독이반 수업을 했습니다. 쉬는 시간도 없는 1시간 40분 동안 제게 눈을 맞추며 매 번 열심히 수업을 하는 그들이 무척이나 고마워 지난 시간에 맛난 것을 사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수업이 시작도 되기 전에 칠판에는 일찌감치 “오늘은 떡볶이 먹는 날!”이란 글자를 큼지막하게 적어놓곤 다들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배달되어 온 떡볶이를 삼삼오오 앉아 나눠 먹으며 웃음꽃을 피우는 ‘다독이’들을 보며 저까지 행복했습니다.
글을 마치는 지금! 아침 햇살이 조금씩 어둠을 밀치며 일어서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떠올리며 주님께 청해봅니다. “이들에게 끝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끈기를 허락하소서. 그리고 마지막엔 꼭 웃게 해 주소서.”
* 이유정 선생님은 계산주교좌성당 신자로,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무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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