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새해를 맞아 세상을 어떻게 “열린 마음으로” 보아야 할까를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아픔과 절망이 너무나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하셔서 다시 일어나라 손을 잡아주시는 그 위로에서 우리는 조심스레 용기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2014년은 아픔과 위로, 좌절과 희망, 절망과 용기라는 몹시 삐걱거리는 세월의 경험이었다. 하여튼 2015년엔 세상을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려 희망과 용기를 가져본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사람들은 새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다진다. 생각해보면 새로운 꿈과 계획과 결심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지난날의 고달픔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현재의 우리의 삶이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논하는 것이다. 이는 죽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분명 지금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여전히 신진대사(新陳代謝)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짐으로 묵은 세포가 몸밖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놀랍게도 신진대사 이야기는 세례성사 이야기이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27) 세례성사로 우리는 묵은 ‘나’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그리스도’라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순례하는 신앙여정의 삶은 세례성사의 삶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 상태는 어떨까? 교황님께서는 2014년 8월 16일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미사에서 우리가 받는 세속적 도전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오늘날 우리는 자주 우리의 신앙이 세상에 의해 도전받음을 체험합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우리의 신앙을 양보해 타협하고, 복음의 근원적 요구를 희석시키며, 시대사조를 따르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실제로 우린 그리스도라는 옷보다는 재물과 권력과 쾌락이라는 세속 옷에 마음을 더 많이 빼앗긴다고 고백한다.
우리 사회는 1990년대 들어 세계화와 무한경쟁을 부르짖으며 급격하게 개인주의 사조로 기울어졌고, 사람들은 손쉬운 물질적 성공과 즉흥적 쾌락에 탐닉한다. 물질과 쾌락을 숭상하는 사회는 무신론적이고 비인간적 경향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각 계층의 사회공동체(가정공동체까지)가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그래서 교황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하게 호소하신다.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빈다.”(2014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강론)
어느 수녀님이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의 일부인데, 할아버지의 말씀은 사제인 나에게는 채찍의 말씀이었다. “할아버지는 세상 사람들이 종교인을 존중하는 이유는 일반인들이 살아내지 못하는 삶을 산다는 것 하나 때문인데 요즘엔 드러내놓고 일반인보다 더 앞서서 물질적인 삶을 사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종교인들이 잘 살아야 일반인들이 그나마 제 길을 찾는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니 세상을 위해서 기도할 생각 말고 종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어요.”
“우리의 문화는 이 세상 안에서 감지할 수 있는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에 대한 감각을 잃어 버렸습니다.”(교황 프란치스코 회칙, 신앙의 빛, 17항) 세속이 미친 듯이 물질과 쾌락을 추구한다면, 2015년 우리는 열성을 다하여 ‘살아있는’ 신앙을 추구해야 한다. ‘살아있는’ 신앙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그리스도가 되고자 하는가? 우리는 ‘더불어 사는 가난을 실천하는’ 그리스도라고 말하자.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가장 소중한 본질까지도 내어주는 가난을 실천하신 분이 주님이시다.
2015년 한 해 우리 교구의 사목지향은 교구장 사목교서의 제목처럼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보다 잘살고 더 나은 사람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어 그들보다 못할 때 자신이 불행하다 여기기가 쉽다. 하지만 자기보다 더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는 사람을 도와주게 되면 삶의 보람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참된 행복이 아닐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행복의 길을 이미 훤하게 밝혀 주셨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그렇다. “신앙은 그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시듯이 그분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신앙의 빛, 18항)
2015년 새해의 꿈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빼닮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빼닮기 위한 계획과 결심을 세우고, 그리고 용기를 가지자. 성령께선 우리 편이시다. 2015년 우리의 삶의 구호를 “더불어 사는 가난의 실천”이라고 정하자. 사제인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을 읽고 책표지에 몇 줄 적었다. “주님, 제가 자신을 녹여 맛이 되는 소금과 자신을 태워 빛이 되는 촛불의 가난함을 삶의 보람으로 삼게 하소서. 하오나 주님, 제가 몸의 진액을 빨아먹고 자란 알 굵은 진주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추호도 갖지 않게 하소서. 세상 사람들이 진주 빛을 칭송한들, 사제인 저에게는 어리석은 유혹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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