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세요. 한 해를 마감하면서 지난 날들을 떠올려 보게 되는 날입니다. 어느 덧 성탄입니다. 지금 굉장히 외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 저는 30대 후반의 남자로 결혼한 지 3년 만에 이혼하였습니다. 자녀는 아들 하나이고요. 이혼한 이유는 아내의 불륜 때문이었습니다. 결혼 전부터 알고 지내던 남자가 있었고 결혼 후에도 저 모르게 그 사람과 계속 연락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략)… 아내는 새 출발을 하겠다며 아들과 저를 버렸습니다. 어머니께서 제 아들을 키워주고 계시며 저와 셋이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이 ‘모성’이라지만 저는 그 말을 믿을 수 가 없습니다. …(중략)… 용서가 안 되는군요. 아니 용서하기 싫습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그동안 다니던 성당에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사를 나갈 때면 용서를 위한 기도보다는 그 사람이 파멸했으면 하는 마음이 아직은 더 큽니다. 도와주십시오.
A. 이 글을 읽으실 때 날씨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답변을 드리는 오늘은 눈이 흩날립니다. 어떤 사람은 눈이 온다고 좋아하고 감상에 젖어들겠지요. 그러나 저는 아직 젊으면서도 감상적인 마음보다는 뭔가 몸이 찌뿌둥하고 최근에 아팠던 곳이 다시 아픈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누구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누구에게는 싫은 일이 된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눈이 오는 것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인가 봅니다. 문득 이렇게 잔뜩 흐린 날을 참으로 좋아했던 10대 때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 걸 보면 같은 ‘나’라도 시기에 따라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이런 작은 일상의 가르침을 주는 ‘눈’입니다. 이렇게 사람은 다른 가 봅니다.
형제님께는 지옥 같은 경험이었고 지금도 그 내면의 상처 때문에 고통을 받고 계시지만 자기 잘 살겠다고 떠난 그 분은 같은 일을 경험했음에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 편히 살아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 분 또한 차마 말 못할 마음의 상처를 평생 짊어지고 갈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더 깊은 사정은 제가 알 수 없으나 사람이 어떻게 자기 뱃속에서 열 달을 품은 아기를 버리고 떠나겠습니까? 뭔가 사정이 있으려니 하십시오. 혹시 지금 제 말에 ‘지금 이 상황이 제 잘못입니까?’, ‘지금 그 사람 편을 드는 겁니까?’하는 생각으로 말이 안 통하고 답답하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종이를 찢어버리든지 신문지를 둘둘 말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땅을 치든지 하십시오. 있는 힘을 다해 화내고 분노하고 성을 내십시오. 단! 조금만 안전한 방법으로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형태의 감성적 폭발을 ‘발화(發火)’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몸뿐만 아니라 지성, 이성, 마음, 감성,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굉장히 힘든 일, 특히 용서할 수 없는 형태의 일을 겪을 때 대다수의 우리는 처음에 화를 냅니다. 어떤 사람은 성을 내며 외부적으로 표현하고 어떤 사람은 굉장히 싸늘한 형태의 분노를 표출하는 등 다양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이성적인 통제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용서하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머리로는 용서해야지 하지만 떠올리면 다시금 속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와 견딜 수 없게 됩니다. 더 시간이 지나면 되겠지 싶어도 어떤 종류는 참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해서라도 용서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눈’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했지요? 같은 상황인데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 ‘외부’의 것이 아니라 나 ‘내부’의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켜드립니다. 그를 용서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이제 그가 저지른 잘못이나 악행이 아닙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 굉장히 불행하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이미 생겨버린 일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그냥 인정하고 내려놓는 생각들을 많이 하셔야 합니다. 이러한 부분이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를 이해하고 나를 위해서라도 용서해야지 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도 쉽게 안 되지요?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기 때문에요. 그것은 머리로는 용서하지만 마음에서, 즉 감성적 측면에서는 용서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면의 상처는 치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발화’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를 위해 상담관련 전문가를 만나시면 큰 도움이 될것입니다. 혼자 하시려면 소위 말하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취미나 레저 등이 도움이 됩니다. 신심활동에서는 성령세미나나 기도회와 같은 동적 영성 프로그램이나 반대로 자아 탐색 형태의 묵상·관상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정적 영성 프로그램에 참여하시기를 권합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힘을 내십시오. 우선 몸의 자세부터, 허리를 펴고 어깨를 펴십시오.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아니 지금 와서 잘잘못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한 걸음만 앞으로 내딛으시길 바라며 기도 올립니다.

* 아래 주소로 여러분의 고민을 보내주시면 채택하여 김종섭 신부님께서 지면상담을 해주십니다.
이메일 : soram3113@hanmail.net 전화 : 053-250-3113
우편 : (700-834)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로 4길 112 천주교 대구대교구 월간<빛>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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