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1분 30초, 성당 맞은편 집 현관에서 성당 정문까지의 시간…. 이 거리를 오는데 1년 이상 걸리다니… 참 감회가 새로워지며 문득 지난날이 생각납니다. 작년 봄 돌아가신 아버지, 투병 중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을 뜨시며 “내 성당 갈란다. 신부님 좀 불러도.”라고 하셨지요. 평생 불교였던 아버지께서 느닷없이 성당이라니 참 의아했습니다. 이후 대세를 위해 모셔온 신부님을 목전에 두고도 주저하며 다시 돌려 보내시길 몇 차례… 결국 꾸준히 기다려 주신 신부님께 대세를 받으시고 작년 봄 주님의 품 안에 안기셨지요.
그 후 참 많은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종교가 바뀌리라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법명까지 받은 열성 불교신자였던 어머니께서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열심히 성당에 다니시더니 결국 작년 말 세례를 받으시더군요. 물론 지금도 매일 새벽미사에, 레지오 활동을 빠짐없이 하실 정도로 열정적이시고요. 그 변화는 저 또한 비켜가질 않았습니다. 스님들 만큼은 아니지만 목탁을 치며 웬만한 염불을 할 정도로 불교에 심취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뒤 베란다에서 보인 매호성당, 이유 없이 갑자기 들기 시작한 ‘저기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 후 올해 4월까지 무려 1년의 시간을 거의 매일같이 뒤 베란다에서 성당을 바라보며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갈까 말까 갈까 말까…. 그러다 드디어 올해 4월 구역장님과 대부님의 도움으로 교리수업 한 달 전부터 두 아이들과 함께 교중미사에 참석하며 예비신자 교리반 수업에 등록했습니다.
6개월 동안의 교리수업은 제게 조금씩 변화와 깨달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우선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학창시절에도 별로였던 머리가 더욱 나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안하던 공부를 수십 년 만에 하려니 어디 머리가 돌아가야 말이죠. 사실 지금도 수업 받은 내용이 가물가물하지만 딱 하나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주님께서 너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너도 주위를 사랑하며 살라. 그리고 항상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월호 사건과 교리수업은 자식들에 대한 욕심을 비우게 하였고 이 세상에 감사할 것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언젠가는 주님의 일꾼으로 쓰일 것으로 믿고 공부 못해도 좋으니 그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주님께 감사하라.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기에 예비신자가 되었음을 감사하라. 오늘 하루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을 주님께 감사하라. 내 직업이 만약 인분을 치우는 일이라 해도 이는 나를 통해 세상을 깨끗이 하려는 주님의 뜻이요 사랑이니,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사랑을 베풀 소명을 받았음을 감사하라. 그리고 늘 주위를 살펴 불우한 이를 보면 같이 슬퍼하며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항상 기도하라. 또한 개인적 기복보다는 항상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무엇을 이루려 하실지 기도로 간구하고 주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 참된 신자임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아마 6개월 동안 함께 교리수업을 받은 예비신자분들 모두의 깨달음일 것입니다
끝으로 제가 머리가 허전해서 그런지 곱슬머리가 얄미울 정도로 잘 어울리신 하창호 가브리엘 주임신부님, 우연히 화요일 교리수업을 갔다가 늦은 시간까지 제 넋두리를 들어 주시느라 고생하신 김요한 세례자요한 보좌신부님, 항상 주님을 잊지 않도록 해주신 담임 교리 선생님, 처음 저를 성당으로 이끌어 주신 구역장님과 대부님, 그리고 예비신자들을 끝까지 잘 이끌어 주신 여러 교리 선생님들, 주님의 부름에 열정으로 참여하신 모든 예비신자분들… 6개월의 여정을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항상 함께 하길 주님께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