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람 봉사자로서 소람과 만난 지 1년 6개월여. 소람은 직장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는 소람에 강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여유있는 시간에 봉사하며 단지 스스로 하느님 앞에 봉사한다는 안도감을 주는 그냥 그런 공동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봉사만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소람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도대체 제게 소람은 무엇일까요?
제가 소람에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는 소람이 제게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소람을 알게 되면서 사회적 활동에 대한 욕구와 가정에 충실하고자 하는 욕구가 조화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상담을 하며 사회적 자아를 실현하면서도 가정에 소홀하다는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게 되면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저의 자존감도 높아졌습니다. 아이와 남편도 제가 투사하는 면들이 줄어드니 더 행복해보입니다.
그 다음은 상담자로서의 성장입니다. 그동안 상담해 온 여러 기관과 달리 소람에서는 환청을 듣는 정신분열 내담자, 자신의 상처를 아이들에게 투사하며 괴로워하는 엄마, 궁핍하고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상처를 과대망상으로 포장해 살아가는 내담자, 자기탐색을 원하는 사람 등 정말 다양한 내담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상담자로서의 제게 다시금 겸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또한 삶의 다양함과 이를 극복해 낼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각 개인에게 주신 힘을 느끼며 삶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감탄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로저스의 이론대로 모든 유기체는 성장을 향한 것들을 선택하는 본성이 있다면, 저를 성장으로 이끄는 소람에 제가 빠져들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소람에 빠져드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제 꿈의 상담소이기 때문입니다. 상담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할 때 저는 상담료를 지불할 수 있을 만큼 잘 사는 계층의 품위를 높여주는 수단으로서의 상담이 아니라 힘겨운 삶을 사는 이들에게 실제로 힘이 되어 주는 상담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주신 선한 본성을 되찾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소람이 바로 그 길을 걷고 있기에 마치 제 꿈이 이뤄지는 듯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소람의 핼퍼(소람은 ‘상담사’라는 말을 쓰지 않고 내부적으로는 ‘helper’라는 말을 씁니다. 소중한 사람을 돕는 일이 소람의 상담이기 때문입니다.)로서 하느님이 불러주셨기에 이 자리에 있는 것인데, 혹시라도 저의 개인적인 욕구충족과 자아실현을 위해 소람을 활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묻게 됩니다.
때때로 소람에서 받는 것들이 너무 많아 봉사자로서 정체감을 잃어 갈까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주 하느님께 이런 질문을 기도드려봅니다. “내담자와 함께하는 순간 내담자에게 충실하고 핼퍼로서 진정성을 가지고 임하는 것에 우선하려는 결심이 있다면, 위에 적은 것처럼 제가 소람에서 얻어가는 것들이 본질을 흐리게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소람을 제 인생에서 어떤 포지션에 두어야 하는 걸까요? 함께 고민하면서 진정성을 잃지 않고 성장해가면 되는 건가요?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면 제 마음을 어떻게 다잡아야 할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도 행복한 마음으로 ‘소람상담소’를 향해 예수님의 길을 떠올리며 나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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