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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과제


박석재(가롤로)|신부, 대구대교구 사무처장

 

우리는 이중국적자로 살아간다. 이 땅의 백성으로,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만일 이중국적이 허용되지 않고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어느 쪽이 될까? 순교자들은 실제로 그런 선택의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었고 이 땅의 것들 대신 하느님 나라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순교자들을 공경하면서 그들의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우리에게도 그런 선택을 할 용기와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우리가 스스로를 신앙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신앙이라고 말할 때의 그런 가치, 그런 태도를 참된 것으로 여기고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원하지 않지만 현실을 살아가는데 많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이 땅의 가치와 하느님 나라의 가치가 많은 경우에 충돌하고 상반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지만 실제에 있어서 우리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기거나,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한 하느님 대신 세상의 법도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은 우리의 양심을 괴롭히는 문제이므로 거론하는 자체가 서로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등장하신 이후로 이 문제는 더 이상 피해 갈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버렸다. 세월호 침몰의 와중에 오신 교황님은 방한기간 동안 전국민의 주목을 받았고 그분의 말씀과 행동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교황님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책 〈복음의 기쁨〉이 소개되었고 방한기간 중에 보여주신 그 분의 말씀과 행동은 과연 일관되고 분명한 것이었다. 모두가 다 교황님께서 우리 한국교회에 큰 숙제를 남기고 가셨다고 말했고 그 숙제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이루는 것으로 요약했다.

 

이 점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여기에 따르는 몇 가지 의미들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신앙의 영역과 현실생활의 영역은 분리되지 않으며 신앙에 따른 선택은 불가피하게 세상과 불화를 빚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불화가 불편하고 싫다고 회피하는 것은 결국 신앙을 피상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국한시키겠다는 것이고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외면하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런 불화는 교회 안에서도 불가피하다. 사제들과 신자들은 복음과 상반되는 현실을 거론하고 참여하는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불화는 “내가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아느냐?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고 하셨을 때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둘째,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현재의 우리 교회가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라는 말은 아니라도, 적어도 있는 사람들을 의식해서 그들이 불편해 할 말은 아예 하지 않는 그런 교회, 가난한 이들을 쫓아내지는 않지만 가난한 이들이 위화감을 느끼고 소외감을 느끼기 쉬운 그런 교회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어려운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베푸는 정도로는 부족할 것이다. 냉혹한 경제논리 앞에 심화일로에 있는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적 원인에 “아니오!”라고 말하고 인간을 소모품이나 노예로 만드는 불의에 함께 맞서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가난한 사람으로 오셨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셨으며 가난한 이들을 당신과 동일시하신 예수님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우리 믿음의 확고한 바탕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 자신과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영적 세속화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영적 세속화란 말은 우리의 신앙과 교회생활 안에까지 경제, 시장논리가 침투하여 교묘히 작동하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또한 신앙의 이름으로, 열심한 신앙의 모습으로 세속적인 가치들, 소위 성공이나 부, 권력을 추구하고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 중에서 이처럼 신앙적인 외양과 세속정신이 한데 섞여 외적인 성과나 성장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복음화와 무관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냉철히 식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하느님의 일이고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일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애덕의 정신을 거슬러서는 안 될 것이다. 자칫 세상과 싸우다 폭력과 분노에 전염되지 않을 일이다. 세상의 힘이 완강할수록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여유를 잃지 않고 선함과 온유함으로 대적해나갈 일이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힘을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