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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를 살다
제대와 감실의 관계(2)


최창덕(프란치스코 하비에르)|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평신도신학교육원 원장

무엇이 문제인가?

성당은 하나의 건축물이기도 하지만, 그 구조나 장식은 언제나 그 시대의 신학과 신심을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고딕식 건축 양식은 전적으로 하느님께로 눈길을 돌리고 그분만을 중심으로 삼았던 중세에 꽃핀 양식입니다, 화려한 장식이 주를 이루는 로코코, 바로크 양식의 성당은 신앙생활이 내적으로보다는 외양적인 데로 흐른 중세 후기에 발달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성당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신앙의 자리를 어느 정도나마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지어진 성당은 과장된 성체신심으로 인해 감실이 성당의 중심인 양 배치되고 장식되었으며, 대부분 제대 위나 제대 바로 뒤 성당 중앙 벽에 자리 잡았습니다. 영성체보다는 성체공경을 더 좋아하던, 신앙생활의 실천보다는 미사의 의무를 더 강조하던, 말씀에 따라 사는 삶보다 정적인 성체조배를 더 강조하던 당시의 신앙인의 모습이 이렇듯 감실이 중심이 되는 성당 구조를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잘못된 신심을 일소하고 말씀이 중심이 되는 신앙, 성찬례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 행동하는 신앙을 강조하면서 전례도 이에 맞추어 개혁되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의회 이후에 지은 소위 현대식 성당은 외양이나 내부 장식에서 변화가 있을 뿐, 여전히 감실이 중심이 되는 옛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여 공의회 이전의 왜곡된 신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성당 구조가 이러하니 신자들은 여전히 성찬례 자체보다는 감실 안에 모셔진 성체를 공경하는데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감실과 그 옆에 켜둔 감실등이니, 자연히 거기에 신경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아무리 말로는 말씀이 우리의 중심이다, 성찬례가 우리 신앙의 원천이다 해보았자 정작 신자들의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감실과 그 안에 모셔진 성체입니다. 말씀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고는 하나 우리 신자들의 성경에 대한 관심은 어떠합니까? 미사에 참석하는 것은 단지 주일 의무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화려한 장식으로 이루어진 감실에 비해 말씀이 선포되는 독서대는 사정이 어떠합니까? 감실 안에 책이나 잡동사니를 넣어둔다면 펄쩍 뛸 우리들이 독서대는 어떤 식으로 관리하고 있습니까? 심지어 제대마저도 소홀히 취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 신앙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찬례

우리가 미사(성찬례)를 지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신 것은 제자들이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당신을 기념하는 가운데 죽기까지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고 실천한 주님의 모습을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성찬례의 핵심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성변화(聖變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체와 성혈로 드러나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 즉 파스카 신비에 있습니다. 따라서 성찬례를 지내는 우리는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실 때마다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묵상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천적인 삶을 사는데 있습니다. 내어주고 나누고 헌신하는, 한마디로 ‘위하는 삶’을 사는데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마심으로써 우리 자신이 바로 살아있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 봉사하고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중심인 성찬례(미사)의 본뜻이라 하겠습니다.

 

감실과 제대의 관계

감실은 성체를 모셔두는 자리입니다. 성체를 따로 모시는 까닭은 병자를 위해서, 어떤 사정으로 인해 미사에 참여하지를 못하는 신자에게 또는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나아가 미사 때 신자들을 위해 충분한 제병을 준비하지 못한 경우를 대비하여, 또한 미사 때 남은 성체를 보관하기 위해서도 감실은 이용됩니다. 물론 중세 이후 내려온 관습에 따라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흠숭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미사성제로서의 성체성사야말로 미사 없이 성체께 바쳐지는 경신례의 원천이요 목적이다.” 「성체공경 훈령」 3항과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신심 예식서」 2항에 나오는 이 선언은 성찬례로 대표되는 제대와 성체신심으로 대표되는 감실과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즉 감실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 위에서 거행되는 성찬례와 그로써 드러내고자 하는 파스카 신비를 신자들에게 상기시키는데 그 본래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달리 하면, 제대와 연계되지 않은 감실, 성찬례와 상관없는 감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감실이 신자들의 눈을 제대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감실의 본래 존재 목적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당 안에서 감실의 위치는?

교도권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지극히 거룩한 성체는 각 성당의 구조와 적법한 지역 풍습을 고려하여 성당의 한 부분에 감실을 만들어 모셔 둔다. 감실은 참으로 고상하고, 잘 드러나고, 잘 보이며, 아름답게 꾸민 곳에, 또한 기도하기에 알맞은 곳에 마련하여야 한다.”(미사경본 총지침 314항)

 

표지라는 뜻에서 볼 때 미사가 거행되는 제대에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가 보존되는 감실을 두지 않는 것이 더 맞다. 그러므로 교구장 주교의 판단에 따라 감실은 아래와 같이 만드는 것이 좋다.

ㄱ) 거행에 쓰는 제대 위가 아닌 곳, 그리고 가장 알맞은 형태와 장소를 선택하여 제단 안에 설치한다. 더 이상 거행에 쓰지 않는 옛 제대 위에 설치할 수도 있다.(미사경본 총지침 303항 참조)

ㄴ) 또는 성당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그리스도 신자들의 눈에 잘 띄며 개인으로 조배하고 기도하기에 알맞은 경당에 설치한다.”(미사경본 총지침 315항)

“신자들이 사사로이 성체께 조배를 드리며 기도를 바치기에 알맞은 경당에 성체 모시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에는 각 성당의 구조와 지역 풍습을 감안해서 성체는 제단에 모시든지 혹 성당의 뛰어난 자리에 적절한 장식을 갖추어 모신다.”(미사경본 총지침 276항, 1969년)

 

1969년의 총지침 276항에 따르면 감실은 사사로이 조배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경당에 모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유하고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에 제단에 모시든지 성당의 뛰어난 장소에 설치하도록 권고한 반면, 2002년의 총지침 314항 시작에 감실을 성당의 한 부분에 모시길 권합니다. 이어오는 315항은 먼저 미사가 거행되는 제대에는 감실을 두지 않는 것이 더 맞다고 밝히면서 설치 장소를 ㄱ)에서 제대 위가 아니고, 그러면서 제단 안에 설치하기를 권합니다. ㄴ)에서는 구체적으로 개인적으로 조배하고 기도하기에 알맞은 경당에 설치하도록 지시합니다. 감실의 자리에 관하여 미사경본 총지침 초판(1969년)과 수정본(2002년)은 이미 1967년의 성체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 “성체의 신비”와 1964년의 예부성성의 “훈령”, “세계공의회”에 나오는 “중앙 제대” 또는 “주 제대 중간”이란 표현을 삭제하였습니다.

그러면 성당의 한 부분 또는 성당의 뛰어난 자리는 어디를 의미합니까? 원칙적으로 제대와 분리된 장소를 의미합니다. 감실은 상존하는 제대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미사 밖에서가 아니라 제대 위에서 거행하는 성찬례 안에서 희생 제사를 봉헌하기 때문입니다. 감실은 더 이상 미사거행을 위해서 우선적으로 적합한 성당의 중심 자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이후 제사의 우위가 조배나 경배에 앞서 공간 안에서 풍부하게 표시되어야 합니다. ‘성사적인 표지들’은 분명하게, 그리고 쉽게 볼 수 있고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의 원리의 새로운 성과입니다. 성사적인 표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보여줍니다. 중세에 지어진 오래된 성당은 제단 가까운 측면 공간에 별도의 작은 제대 위나 제대 가까이에 감실함이나 감실벽에 성체를 모시게 하여 신자들이 사적으로 조용히 기도하고 조배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성당 지하에는 항상 성체조배를 할 수 있도록 경당을 만들었는데 제대 옆에 감실함을 세워 두었습니다. 기도의 내밀함과 안정함은 이러한 형태의 경당에서 가장 잘 이루어지고 보장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당은 조용히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장소가 됩니다. 이는 총지침 315항 나)의 지침에 구체적으로 부합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제단과 가까이에 위치하여 성체를 모시고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신자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 성당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을 할 경우에는 제단에서 떨어진 좌측 또는 우측 전면이나 측면에 작은 감실을 모신 경당을 세우는 방법 또한 문헌이 제시하는 지침을 따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성체를 모셔두는 곳은 참으로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곳은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조배하고 기도하기에 알맞아야 한다. 곧 신자들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께 혼자서도 쉽게 다가가 공경을 드리며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당 중심 부분이 아닌 곳에 경당을 마련하는 것이 더 좋다.”(미사 밖에서 하는 영성체와 성체신비 공경예식 9항 197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