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 백백합보육원 출신 해외입양인입니다. 한국에 가서 백백합보육원을 방문하고 싶습니다. 아기 때 있었던 방도 보고 싶고 제가 처음 버려졌던 장소에도 가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친가족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도와주세요.”
위 내용은 해외입양인들이 자주 보내오는 이메일 내용입니다. 대구수녀원 설립 이래 80년 동안 백백합보육원을 거쳐 미국,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등지로 입양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모국을 방문합니다. 친부모를 애타게 찾고 있는 이들이 친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빛> 잡지 형제자매들의 기도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노르웨이 가정에 입양된 마근힐드 릭스타드 씨는 입양된 지 30년 만에 남편 후로우다 할버슨 씨와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릭스타드(한국 이름 : 구신애) 씨는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친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졌고 아이들이 가족사에 대해 물어 올 때마다 꼭 뿌리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보육원의 아동카드 기록에 의하면 구신애 씨는 1982년 9월 21일 대구시 봉덕 1동 매일신문사 사장집(옛 ME 만남의 집) 부근에 버려져 있었고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상인 김두선 씨가 발견하여 봉명파출소(현 봉천지구대)에 신고하여 백백합보육원에 맡겨졌다. 보육원에 의뢰될 당시 다리가 골절되어 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한국 이름 ‘구신애’는 보육원에서 지어주었고 생년월일도 추정에 의한 것이다.
1982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노르웨이로 입양되기 전 6개월 동안 보육원의 나자렛방(6개월~12개월 유아방)에서 보살핌을 받았다.
릭스타드 씨는 30년 전 자신이 머물었던 백백합보육원(현 백합어린이집)의 방을 보고 그 당시 보육원 원아들의 생활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첩에서 실낱 같은 흔적이라도 찾으려는 듯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며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처음 발견된 장소를 찾기 위해 봉명파출소(현 봉천지구대)를 방문하여 경찰관들의 협조를 구했다. 경찰관들은 자기 가족의 일인 양 안타까워하며 친절하게 30년 전 그 장소까지 동행해 주었다. 집은 옛날 그대로 남아 있지만 집 앞으로 난 넓은 도로에는 차량들만 무심하게 오가고 있었다. 경찰관들의 적극적인 호의로 DNA 검사도 해 둔 상태다.
양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건강하게 자란 릭스타드 씨는 현재 노르웨이에서 엔지니어인 남편과 함께 세 자녀를 키우며 의류메니저로 일하고 있다.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꿈에도 그리던 한국에 왔습니다. 저를 포기하셔야 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포기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제가 좀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저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고 거기에 대해 어머니를 이해하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현재 저의 모습도 보여드리고, 사랑하는 남편과 저의 세 아이들 11살 안드레아, 7살 아말리아, 5살 요나스에게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꼭 만나게 해주고 싶어요. 만나는 게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부모님에 대한 생사여부라도 알고 싶습니다. 꼭 연락주세요. 언제까지나 기다리겠습니다.” - 구신애 씨의 어머니를 향한 글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백백합보육원 입양인 지원 : 053-659-3333
김 데레사 수녀 : spct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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