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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오래 기억될 영성의 해’를 마무리하며


김준희(안드레아)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부 2

저희 대구관구 신학교에서는 학부 1학년 과정을 ‘영성의 해’로 정하여 한티순교 성지 내 영성관에서 1년 동안 생활을 한 다음, 겨울방학 기간 중 실시하는 필리핀 어학연수를 끝으로 ‘영성의 해’를 마치게 됩니다. 이 글을 통해 저희들의 필리핀 어학연수기를 여러분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1월 5일, 남산동 신학교에 모여 한 달의 연수를 담당하실 신영규(베드로) 신부님, 신동철(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과 함께 김해 국제공항으로 갔습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며 저의 앞으로의 날들을 상상하여 보았습니다. 처음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서 기대감이 솟아올랐습니다. 두려움 반 기대 반, 그렇게 저는 필리핀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필리핀에 대해 수집한 자료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그 중 눈길을 끌어당긴 것은 필리핀의 종교였습니다. 무려 85%가 넘는 인구가 가톨릭을 믿고 있다는 사실, 말 그대로 국교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현지인들의 신앙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끔 하였습니다.

 

3시간 30분 후(현지시간 오후 11:00)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신학생들 모두 입고 있던 두꺼운 옷을 벗으며 마닐라의 뜨거운 열기에 적응하려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도착의 기쁨도 잠시, 짐을 급히 챙긴 후 저희가 머물며 공부 할 바기오신학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6시간의 긴 여행길이었습니다.

 

바기오신학교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하얀 수단을 입은 신학생들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마침 아침기도와 미사시간이어서 짐을 숙소에 놓고 저희는 기도와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아뿔싸! 영어로 전례가 거행되고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목을 조여 오는 압박감!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이 핑~ 돌아가고, 마침내 이런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불쌍한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다음 날, 그 곳 신학생들과 시내를 둘러보며 그 곳 지리도 익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영어학원에 가자마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영어시험. 동기 중 누군가 나에게 “이것이 뭔가요?”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흰 것은 종이, 검은 것은 글씨.”이런 조선시대 농담을 말 할 만큼 정신없었습니다. 아무튼 시험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부터 그룹 편성 후 일대일 수업 세 시간, 그룹 수업 두 시간을 공부하였습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큰 성장을 하기보다, 스스로 가지고 있던 영어의 두려움을 물리치라.”고 하신 신부님의 말씀에 따라 학문적 영어보다는 경험을 쌓고 밖으로 나아가 부딪쳐 보고 깨어지며 스스로를 단련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사람은 언제나 몸으로 부딪쳐보고 배움을 통해 노력하며 성장함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에는 학원에서 저녁에는 신학교에서 생활하며 영어를 공부하고 서로 이해해가며, 이국의 문화를 배우고 친구를 사귀며 다르게는 한국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함께 동화됨을 느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표로 공부하고, 돌아와서는 침대에 엎드려 숙제를 하며 짜증도 내었지만, 저희가 살아본 고작 일 년의 신학교 생활에 비해서 참으로 자유로운 생활이었던 것 같습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사람의 ‘내적 고요’는 지금의 처지보다는 자신이 믿음을 두고 있는 것, 어디에서든지 하느님 안에서 숨을 쉴 수 있음을 기뻐하는 것처럼 감사와 찬미가 절로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희의 생활도 때론 불만과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많았지만, 스스로 한 순간을 위해 노력하고 매 순간 감사드리며 생활에 임하면서 마음에 고요는 조금 더 성장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필리핀에 가기 전부터 신경 쓰이던 것은 ‘먹는 것’과 ‘꼭 둘러 봐야 할 곳’이었습니다. 식사는 거의 신학교(필리핀식)와 학원(한식)에서 먹었고, 금요일 수업마침 후부터 주일 저녁까지는 의무적으로 각자 여행을 다니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모두가 선배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그리고 모아온 자료들을 통해 미지의 체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음식. 과연 들었던 것처럼 느끼함과 달콤함을 동반한 음식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살 좀 찌겠는걸!’하는 생각도 잠시, 막상 받아본 음식메뉴들은 저희를 놀라움으로 휘감아 버렸습니다. “난쟁이 종합메뉴인가?”너무 적은 양이었습니다.(제가 좀 많이 먹는 편입니다만…) 적은 양은 뒷전이고 일단 밥, 너무나도 찰기가 없었습니다. 그 때만큼 어머니의 밥이 그리워졌던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만에 고추장을 동반하여 밥을 먹기 시작하였고, 또한 부족한 뱃속은 사나이 울리는 라면과 내 입에 안성맞춤인 라면으로 항상 든든하였습니다. 그러나 비장의 무기는 바로 ‘김치’입니다. 조금씩이었지만 그 맛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 이 맛이야!”를 연발하였으니까요.

 

여행. 서로 느낀 바는 다르지만 한결같은 것은 바로 이국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보고 있으면, 제 마음 한 구석 카메라는 사진을 담아내느라 정신없었습니다. 호기심만으로 뛰어들었던 필리핀은 이제 아름다움으로 다가서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깨끗한 자연을 지니고 그곳에서 평온을 얻으면서 태초의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희에게 오직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이 땅에 심어 주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한 어디에서든 기도하고 미사드릴 수 있는 성당과 길거리의 성모상들이 많음에 놀라워하며, 내 조국에도 그런 날이 오기를 기도드리곤 했습니다. 그 중 소중하게 와 닿은 것은 인간의 감사와 찬미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미약한 인간의 삶 안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 주신 사랑은 인간의 하느님 존재의 깨달음으로 그리고 감사와 찬미로 이어져, 길 곳곳에 아름다운 성당과 십자가상, 성모상을 세우고 늘 마음속에서 하느님을 잊지 않으려 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슴 뭉클해짐을 느꼈습니다. “신앙은 매 순간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과제와 함께. 그래서 그곳에서의 여행은 조금씩 신앙을 더해주었던 것 같았습니다.

 

돌아오는 낮 비행기 안에서 환희를 느꼈습니다. 지난 한 달을 회상하며, 스스로 조금은 발전한 느낌으로 말입니다. 물론 영어 실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했지만, 필리핀에서의 한 달은 저희들의 삶의 경험을 쌓으며 내적 두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준 한 달이었으며, 또한 큰 교훈을 남기며 ‘영성의 해’를 잘 마무리 하도록 도와준 기간이었습니다. 아직은 부족하고 또 아쉬움에 자꾸 뒤돌아보게 되지만, 이렇게 저희의 ‘영성의 해’는 저물었습니다.

 

끝으로 저희 05학번 신학생들을 위해 많은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리며, 저희가 받은 그 사랑만큼 또한 여러분께 더욱 열심히 기도로 갚아드리겠습니다. 본당과 신학교, 가정 나아가 그 어디에 있어도 선하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노력하는 신학생이 되겠습니다. 그것이 저희들의 ‘약속’이며 동시에 저희들의 ‘영성’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