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바뀌었지만 묵은해는 아직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하고 곁을 맴돈다. 그것은 지난해 방한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 때문이다. 비록 4박 5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그분의 말씀과 행보, 보여주신 모습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인지 이제 그분에 대한 기사가 언론에 나오면 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된다.
그 중 지난해 12월 22일 성탄을 앞두고 교황청 고위성직자들과 성탄 인사를 미리 나누는 자리에서 하신 교황님의 말씀은 가히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황님의 인자하신 모습, 온화한 얼굴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마치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좌판을 뒤엎고,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을 신랄히 비판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고통 앞에는 중립이 없다.” 하시며 고통을 받는 사람의 손을 맞잡고 같이 슬퍼하시는 분이지만 불의를 비판함에 있어서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예수님처럼 말씀하셨다.
이것을 언론에서는 교황님께서 교황청 간부들을 혼내신 것이라 보도했는데, 사실 교황님께서는 늘 그렇듯이 자신을 포함하여 성직자들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었다. 따라서 교황님의 말씀은 교황님을 포함하여 고위성직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해 외치는 죽비소리인 것이다. 이 죽비소리를 듣고도 잠을 깨지 못하고 깨우치지 못한다면 우리 교회는 활력을 잃고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치유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우리를 깨우치는 죽비를 내리쳐 주실 수 있도록 교황님의 건강을 빌고, 고위성직자부터 평신도 모두가 교황님의 죽비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고, 커다란 깨우침을 얻기를 기도한다.
그렇다면 교황님께서 내리친 죽비소리는 어떤 것이었을까? 교황님은 교황청 성직자들 앞에서 우리가 쉽게 걸리는 흔한 질병들을 언급하셨는데, 여기에는 규칙적인 진단을 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휴식을 갖지 못한 간단한 질병들도 있지만 알츠하이머(치매)나 정신분열증과 같은 중병들도 포함되어 있다. 교황님이 말씀하신 중병들 15가지 가운데에서 몇 가지를 소개하면 대략 이런 것들이다.
1) 경쟁심과 허영심의 질병이다. : 이런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 이를테면 수단의 색깔이나 모자의 종류가 삶의 첫 번째 목표가 될 때 이런 현상이 생긴다.
2) 영적치매의 질병이다. : 우리는 주님과의 만남의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서 그것을 본 다. 그래서 현재의 순간에 -열정, 변덕과 집착- 완전히 사로잡혀 살아간다.
3) 실존적 정신 분열증이다. : 이른바 이중적 삶을 사는 이들이다. 곧 일상적인 삶에서의 위선적 태도들과 내실없는 그저 학문으로써의 피상적 영적 성장을 추구한 위선이 만들어낸 이중적 삶이다. 그리하여 다른 이들에게는 엄격하게 가르치고, 정작 자신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이다.
4) 잡담, 험담, 뒷담화이다. : 교황님은 이미 여러 번 이 병에 대해 언급하셨다. 하지만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마 사소한 대화로 단순하게 시작하지만 많은 경우 동료와 형제자매들의 명성이나 인격에 대한 ‘냉혈한 살인자’가 되게 만든다. 사실 이것은 용기가 없어서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만 중얼거리는 비겁한 이들의 병증이다.
5) 장상들을 우상화하는 병이다. : 이것은 그들에게 이득을 보기 위해 높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다. 그들은 출세제일주의와 기회주의의 희생자들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인간을 섬긴다.(마태 23,8-12) 장상들 자신들도 복종과 충성, 그리고 심리적인 의존심을 얻기 위해 그들의 협조자의 환심을 사려고 할 때 이런 병에 감염될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병들은 신자들보다는 주로 성직자들에게 더 많이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성직자와 신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병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1) 협조하지 않는 질병이다. : 구성원들이 함께 일하지 않고 동료의식과 협동 정신을 잃어버려 발이 팔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혹은 손이 머리에게 “내가 할게.” 하며 불협화음과 스캔들을 일으키는 것이다.
2) 침울한 얼굴의 병이다. : 우울하고 시무룩한 사람들의 병으로 장례식에서 진지하게 보이려면 우울하고 무척 슬퍼하는 척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병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용기있고, 평화롭고, 열정적이고 기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가 가는 곳마다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느님의 꽉 찬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전염되는 기쁨을 발산하는 행복한 마음의 소유자이다.
3) 폐쇄적인 편 가름의 병이다. : 이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기 보다는 힘 있는 단체에 더 열성을 보이는 것이다. 이 병은 항상 좋은 의도로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은 멤버들을 노예화하고 몸의 조화를 위협하는 암이 되며 심각한 스캔들을 일으킨다. 그것은 안에서 생기는 악이고,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대로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지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루카 11,17)고 하신 것처럼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교황님의 매운 죽비소리가 계속 귀에서 울린다. 나에게도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질병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과의 첫 만남, 사제가 될 때의 그 마음을 잊어버리고 사는 영적 치매의 증상도 있고, 신자들과의 관계에서도 때로는 관료적으로, 때로는 말과 행동이 다른 실존적 정신 분열증의 증세도 있는 것 같다. 이밖에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이 노화되고, 갖가지 질병의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갖가지 병에 걸린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병들은 가만두면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교황님은 이런 병의 치유를 위해서는 먼저 자신들의 병을 알고 끊임없이 치료를 받겠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얼마 전 교구 사제서품식이 있었다. 사제로 서품되기 위해 엎드린 후보자들을 보면서, 나도 주님과의 첫사랑을 기억해내고, 사제서품 때의 초심을 찾게 해주십사 성령의 도우심과 성인들의 전구를 간곡히 기도했다. 교구에서 살다 보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병들고, 그래서 지체들의 신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곤 한다. 건강한 교회로 살아남고 치유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개인과 공동체가 다 함께 우리의 병을 인식하고,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했다. “한 멤버가 몸의 지체인 한 치료의 희망은 있습니다. 그러나 멤버가 떨어져 나가면 치료도 안 되고 치유도 바랄 수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