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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정신건강
충동 조절 장애
- 절도광과 방화광


조근호(토마스 아퀴나스)|의사, 대구 가톨릭대학병원 정신과

‘충동’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뚜렷한 목적이나 의사 없이 본능적·반사적으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마음의 작용을 이르는 말’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심리학에서 충동은 이렇듯 본능적 성향을 이야기합니다. 특정 행동을 하고 싶은 강한 욕구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충동들 중에서 많은 것들은 스스로 억제하거나 조절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 때나 술을 마시고, 성적으로 문란한 행동을 하면 사회적인 문제를 만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습관성 약물이나 성적인 문제 이외에도 본인의 충동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여 사회적 또는 개인적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 행동들은 정신과에서 치료해야 할 질환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반복적으로 다른 사람의 물건에 훔치거나 불을 지르는 경우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절도광’이라는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일반 절도범과 다른 점은 훔치는 물건이 그 사람에게 별로 필요하지도 않고, 별로 값이 나가지도 않는 물건들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훔치기 위한 계획 같은 것을 미리 세우는 것도 아니며, 훔칠 기회를 노리고 지내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행동은 즉흥적이고 언제나 혼자서 물건을 훔치게 됩니다. 훔친 물건 자체에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함으로써 만족감을 얻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절도광’ 환자들은 훔치기 전에 긴장이 고조되었다가 물건을 훔친 이후 쾌감을 느끼고 긴장이 풀린다고 합니다. ‘절도광’ 환자들은 가끔씩 저지르는 도둑질 이외에는 나머지 사회생활은 정상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발적인 치료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정신과를 방문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들 중 많은 수가 우울증을 경험하는데, 혹시 잡히거나 들키게 될까봐 하는 걱정에 심리적 고통이나 죄책감을 갖게 되며, 이로써 우울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도광’ 환자들에 대한 확실한 치료 방법은 없습니다만, 환자가 스스로 병원을 방문하고 또 치료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 정신과 의사와의 지속적인 면담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충동 조절 장애는 ‘방화광’입니다. 뚜렷한 동기 없이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불을 지르는 것이죠. 복수를 위해서, 혹은 보험금을 타기 위해,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홧김에 하는 방화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불타는 것을 보면서 긴장이 완화되고 강한 희열을 느낀다고 합니다. 때로는 활활 타오르는 불을 끄는 과정에 본인이 참여함으로써 강렬한 불의 힘을 제압할 수 있다는 스스로의 능력을 느끼고 싶어서 불을 지르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절도광’과는 달리 ‘방화광’은 방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합니다. 이들 ‘방화광’도 ‘절도광’과 마찬가지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합니다. 또한 치료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방화광’도 불을 지르는 행동에 얽힌 심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속적인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이 거의 유일한 치료법입니다.

 

요즘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방화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소방방재청에서는 지난 1월 18일 방화와의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했더군요. 반복되는 도벽과 방화, 이는 정신과에서 치료해야 하는 충동 조절 장애일 수도 있지만, 또한 분명한 것은 이러한 행동이 범죄라는 것입니다. 주위에 이런 분들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불조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