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대구대교구에서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배재근(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와 남종우(그레고리오) 신부를 선교사제로 파견하였습니다. 이 글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방기교구의 한 본당에서 선교 중인 배재근 신부가 보내 온 편지입니다.
저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방기에 있는 락광과성당 보좌신부로 지내고 있는 배재근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입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수단, 케냐, 카메룬처럼 나라 이름입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선교한다고 사람들에게 말씀을 드리면 일반적으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하십니다. 나라 이름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사는 앞집에 ‘우마’라는 5살짜리 꼬마가 있습니다. 어느 날 우마가 저에게 오더니 물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물이 없다고 거짓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한국이라면 물을 쉽게 마실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보통 가정에서는 우물에서 물을 긷지만 그 물을 바로 마실 수가 없는 데다, 사제관에 수도시설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물이 깨끗하지 못해서 바로 마실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제가 물이 없다고 우마에게 대답하자, 우마는 사제관에 물도 없냐고 되물었습니다. 사실 물이 있긴 있었지만 우마에게 물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제관에서도 생수를 사서 마시고 있는데, 그 생수를 주게 되면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몰려와서 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수는 본당에서 구입을 하는데 보좌신부인 제가 마음대로 줄 수 있는 상황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낮에 우마에게 물이 없다고 말한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식사를 하려면 낮 동안 전기가 있을 때 충전을 해두었다가 불을 밝혀서 식사를 해야 합니다. 제가 사는 사제관은 밖에서 식사하는 모습도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마가 밖에서 제가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에서는 밖이 어두워서 잘 볼 수 없지만 밖에서는 사제관 안을 잘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반찬 한두 가지로 식사를 마치고 생수를 찾아와서 물을 마셨습니다. 우마는 저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우마는 저를 보자마자 어제 분명히 물이 없다고 해놓고 왜 저녁에 물을 마셨냐며 조금은 화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순간 저는 어제 우마가 제가 식사하는 모습을 다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습니다. 저는 우마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물이 없는지 알았는데, 찾아보니 있더라고 또 거짓으로 대답을 해버렸습니다. 그 순간 선교를 하러 온 제가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데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 거짓을 말하며 그의 목마름조차 채워주지 못하는 저의 신세가 참으로 처량했습니다.
제가 편하자고 거짓말을 하는 것은 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마에게 물을 주려면 사제관에서 나오는 수돗물을 통에다 며칠 받아 두었다가 깨끗한 물을 떠서 끓여주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물을 끓여서 저도 마시고 있고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에게도 대접을 하고 있습니다. 우마뿐만 아니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어린이들은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저는 오늘도 좋으신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주님의 도구가 되고자 합니다. 목마른 친구들에게 시원한 물이 될 수 있는 사제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면 주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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