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개혁을 열망하는 사람들도 있고 과거의 전통에 매달리는 “전통주의자”도 존재합니다. 이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에 따라 개혁된 전례서들 안에도 개혁주의자와 전통주의자들 사이의 갈등과 타협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서 앞서 소개한 두 문헌의 선언 내용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중세 이래의 전통은 예수님의 현존인 성체가 모셔진 곳이라 해서 감실을 특별한 자리에 마련하여 왔습니다. 이 때문에 이미 앞에서 말한 바대로 감실은 제대를 밀어내고 성당의 중심 자리인 양 인식되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조가 대부분의 성직자, 수도자들을 위시하여 신자들의 마음 안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이때, 위의 교도권의 가르침은 대단히 용기있는 선언이라 할 것입니다. 가능하면 성당 안이 아니라 따로 경당을 만들어 거기에 감실을 설치하라고 권고합니다. 파스카 신비의 장소인 제대는 감정보다는 이성에 호소하는데 반해 감실은 예수님의 현존이라는 감상적 정서에 호소하므로 신자들의 시선을 더 끌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당 안에 감실이 있을 때 신자들의 마음은 제대를 향하지 않습니다.
공간 확보가 어렵다거나 어떤 특별한 사정으로 경당을 마련할 수 없을 때 차선책으로 성당 안의 뛰어난 자리에 모시라고 교도권은 말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자리”가 성당의 중앙 위치, 즉 제대의 존엄성을 해치는 자리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제대의 존엄성을 확보하기 위해 성체를 모실 경당을 따로 마련하라고 요청하던 교도권이, 제대의 위치를 위협(?)할만 한 중요한 자리에 감실을 배치하도록 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뛰어난 자리”란 성당의 제대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성체의 존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용하면서 기도 분위기를 돋울 수 있는 자리, 성당의 한 모퉁이 자리와 같은 곳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위의 문헌에서 소성당 또는 경당의 제대 위에 성체를 모시라는 권고는 중세 이래 내려온 관습을 인정한 것으로써 전통주의자들과의 타협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로마에 있는 4대(大) 성당(성 베드로, 성 바오로, 라테란, 성모 대성당)을 위시한 대부분의 고·중세 전통적 양식의 성당에 들어가 보면 제대 외에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빨간 감실등은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성당 측면 한쪽에 작은 경당을 만들어 거기에 성체를 모신 감실을 마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로마 옛 성당들의 구조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습니까?
전례의 중심이 제대인 것은 인정하면서도 전례를 하지 않을 때는 감실이 성당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감실 안에 예수님의 몸인 성체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 역시 성당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왜 교도권이 감실을 가능한 한 경당에 따로 모시라고 권고하는지 생각한다면 별로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감실 앞에 앉아 기도하는 것은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기 위함인데, 제대는 바로 그러한 파스카 신비의 상징 자체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제대가 언제나 우리 신앙의 중심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감실 자체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감실 안에 모셔진 성체를 통해 우리는 여전히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감실 때문에 제대의 중요성이 감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감실의 위치를 현명하게 배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당 건축의 책임자들에게 드리는 제언
성당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과 신학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당을 건축하는 데 있어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은 성당의 구조가 신자들의 신앙을 올바로 이끌 수 있도록 잘 준비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찬 전례가 이루어지는 제대와 말씀이 선포되는 독서대의 중요성이 부각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감실을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공간에 배치할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제대와 감실 사이에서 혼동을 겪지 않도록 감실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감실을 성당과 통하는 다른 공간, 말하자면 지하나 성당 밖의 별도의 장소에 마련할 수 없다면 성당 안의 다른 장소, 제대 근처에 감실을 마련하여 사제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미사 중 성체를 가지러 가거나 남은 성체를 다시 갖다놓을 때 불편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신자들은 성당 안의 넓은 공간보다는 아늑한 분위기의 경당에서 더 쉽게 성체조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성당은 감실이 모셔진 이상적인 경당 자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대구대교구 안에서는 죽전성당을 대표적인 범례로 들 수 있습니다.
성당을 지을 때 감실을 위한 경당을 마련하지 못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상당수의 회의실과 각종 목적의 공간들을 확보하는데 쓰는 신경을 감실 경당 마련에 약간만 기울인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좀 더 균형 잡힌 것이 되지 않을까요?
마무리
이 땅에 세워진 대부분의 성당들이 비록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 지어졌다하더라도 전례 헌장의 정신과 교회의 규범을 우선적으로, 그리고 원칙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성당은 전례를 거행하는 장소이며 하느님의 백성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기도의 집입니다. 전례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가 드러나고 특별히 성찬례를 통하여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며 성사를 통하여 구원을 선사하시는 하느님의 집입니다.
성당의 중심이 제대냐 감실이냐 하는 문제로 신자들 사이에서 긴장을 가지거나 사목자들 사이에서도 성당을 신축 또는 개축하거나 새롭게 리모델링할 때 이를 위한 가톨릭교회의 오랜 신학적 숙고와 연구를 바탕으로 규정한 규범과 지침들을 고려하지 않고, 잘못 전해져 내려오는 옛 관행이나 기존 관념이나 자신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주요 사항들을 임의로 결정하는 현실은 무척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이 반포된 지 50년이 지났음에도 이 땅의 교회에서는 아직도 감실의 위치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신앙의 원천과 뿌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구현하는 성찬례에 두기보다는 신심을, 그중에서도 성체공경 신심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신앙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전례헌장」은 48항에서 이를 명백하게 가르칩니다.
“신자들은 하느님 말씀으로 교육을 받고, 주님 몸의 식탁에서 기운을 차리고, 하느님께 감사하고, 사제의 손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사제와 하나 되어 흠 없는 제물을 봉헌하면서 자기 자신을 봉헌 하는 법을 배우고, 중개자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이 갈수록 하느님과 일치하고 또 서로서로 일치하여 하느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시도록 하여야 한다.”
● “전례를 살다”는 이번 호로 끝맺습니다. 그동안 유익한 글을 써 주신 최창덕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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