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갑자기 죄송하지만요… 신부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요? 성당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저는 성당 다닌 지 이제 6년쯤 된 50대 자매입니다. 주위 친구의 권유로 성당을 다니게 되었지만 저는 아직 모르는 게 많아요. 그래도 그동안 본당에서 이런저런 봉사도 하고 레지오마리애 회합과 반모임에도 나가면서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친하게 지내는 성당 형님이 돈을 빌려 달라고 해서 빌려 줬어요.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갚지를 않는 겁니다. 엄청나게 큰 돈은 아니지만 잠시 필요하다고 해 놓고선 이제 와서 돌려주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싫은 소리를 좀 했어요. 제가 ‘모 아니면 도’인 좀 정확한 성격이거든요. 그랬더니 “갚는다, 갚을 건데 이렇게 나를 못 믿느냐, 서운하다.”고 하는 거에요. 어쨌든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어요. 갑자기 성당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레지오 단원들도, 반모임에서도 사람들이 자꾸 저를 피하는 느낌이 들어서 알아봤더니 돈을 빌려간 성당 형님이 저에 대해서 계속 안 좋은 소문을 냈던 거에요. 정말 속상하고 억울해요. 도대체 제가 뭘 잘못한 것일까요? 이제는 돈이 아니라 그 사람이 너무 밉고 ‘성당 다니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럴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요. 가만히 있자니 계속 당하는 것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A. 아이고~ 자매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습니다. 여러 가지 속상한 경험을 하신 분들께서 간혹 “어떻게 성당 다니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실 때가 있는데 성당 다니는 사람으로서, 아니 성당에 사는 사람으로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참 미안하고 속상하고 또 한편으로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억지로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해요. ‘부족하고 모자라고… 그런 나니까, 그런 우리니까 좀 더 나아지라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 교회로 초대해 주신 거구나.’ 합니다.
어떤 말로도 자매님께서 받으신 상처와 혼란스러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자매님 마음 안에 계신 예수님의 마음에 조금 집중해보는 건 어떨까요?
우선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를 좀 해보도록 하죠. 먼저 자매님께서 빌려주신 돈의 액수가 큰가요? 돈의 액수를 왜 묻나 싶으시겠지만 사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크지 않은 금액의 돈에서 과감하게 그 돈을 포기해버리면 이 상황은 훨씬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액수가 어느 정도 된다면(제가 쉽게 단정하면 안 되겠지만 대다수의 우리들은 약한 사람인지라) 이 경제적인 문제가 해소되기 전까지는 계속 마음에 찌꺼기가 남게 되요. 즉 돈을 돌려 받아야만 해결이 될 거란 말입니다. 이런 면에서 힘이 드시겠지만 먼저 자매님께서 ‘포기해야 할 돈인가? 아니면 받아야 할 돈인가? 일단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출발점인 이 부분에 대해 내가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하는 것을 결심하셔야 해요. 그 작업이 이루어지고 나면 상황은 보다 명확해집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라고 보입니다. 성당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물론 신앙공동체이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을 지향하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늘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 이 사회, 이 공동체 안에 놓여 있는 나의 처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겠죠. 이때 우리는 심각하고도 중대한 유혹에 노출됩니다. 그것은 바로 ‘같은 방법으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원하는 바가 있고 우리는 이것을 ‘욕구’라고 부르지요. 그것은 흔히 말하는 욕망처럼 치부되어 버릴 때도 있지만 훨씬 더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지배할 때가 있어요.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만족하지 못하니 불만이 쌓이게 되요. 이 불만은 불안이나 화, 분노 등등 나 자신에게 긍정적이지 못한 증상 혹은 반응을 발생시킵니다.
특히 내가 누군가로부터 공격(물리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을 받았다고 여겨질 때 더 심해집니다. 그래서 나도 ‘같은 방법’으로 ‘무엇인가’를 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일종의 사회 관계성 속에서 심리적인 ‘게임(Game)’을 선택하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밀당’도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어요.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자면 아마 자매님께서도 이런 유혹에 노출되어 있고 이런 생각을 해 보시지 않으셨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유혹을 과감하게 떨쳐버리셔야 되요. 절대로 ‘게임’은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길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시기를 바랍니다. 상황이나 인간관계가 꼬여 있으면 꼬여 있을수록 오히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받으셔야 하는 돈이라면 거기에 맞는 방법을 결심하시고, 이제 돈은 필요없고 성당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이라면 ‘신자로서의 길’을 살아가시면 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응답을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아멘.
* 아래 주소로 여러분의 고민을 보내주시면 채택하여 김종섭 신부님께서 지면상담을 해주십니다.
이메일 : soram3113@hanmail.net 전화 : 053-250-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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