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새 학년을 맞이하는 달입니다. 그래서 교사인 저는 또 다시 제게 새로운 약속들을 합니다. 2년 만에 저는 또 다시 고3 담임이 되었습니다. 입시를 눈앞에 둔 아이들인 만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고, 희망 반 두려움 반으로 수시로 마음이 변하는 혼란을 견디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보기만 해도, 아니 생각하기만 해도 안쓰럽습니다. 그 중에 유독 제 마음을 끌어당기는 아이가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무척이나 제 마음을 힘겹게 한 녀석입니다. 이 녀석은 수시로 문자를 보냅니다. “저 학교 그만 둘래요.”, “그동안 감사했어요.”, “이제 내일부터 저 학교 안 가요.” 가슴 벅차게 하는 문자를 받은 뒤 전화를 하고 상담을 하면 다음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교에 옵니다. 화가 나면 분노를 참지 못해 바로 앞뒤 상황을 판단하기도 전에 폭발해 버릴 때도 있습니다.
사실 가끔은 사랑을 몰라주는 그 녀석이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속상할 때면 전 하느님께 한 번씩 여쭤봅니다. “저 아직 사랑이 부족하나요? 언제까지 저를 덜어내야 하나요?” 1학년 때부터 그러던 녀석이 이제 3학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 아이의 담임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전 올 한 해 더 열렬히 사랑하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제 사랑이 이기나 그 녀석의 고집이 이기나. 훗훗. 그래서 조금은 더 설레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도드려 봅니다. 더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하느님께 청하며.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많은 사건, 사고들을 보며 세상이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는가 걱정이 됩니다. 잇달아 일어나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폭행, IS인질 참수, 인면수심의 여러 살인 사건들 등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연일 일어나는 현실이 언제 좋은 세상으로 바뀔까, 바뀔 수는 있을까란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를 지켜보시던 우리 주님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셨는지 제게 이 한 편의 시(詩)를 던져 주셨습니다.
나 하나 꽃 피어 /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 말하지 말아라. //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 결국 풀밭이 온통 /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 나 하나 물들어 /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 말하지 말아라. //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 결국 온 산이 활활 /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병화 님의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시입니다. 잿빛으로 앙상한 겨울산이 언제 붉은 빛으로 활활 타오르겠느냐고 조바심을 내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큰 것의 변화는 작은 것 바로 “나”의 변화로부터 시작됨을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이란 구절은 제 가슴을 강하게 두드렸습니다. 이 시는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잘못 가는 세상을 보며 절망하기에 앞서, 간절하게 소망하는 만큼 먼저 시작하는 <나>가 되어야 세상이 변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었습니다.
지난 2월 보충 수업 기간에 제가 맡고 있는 독서토론 동아리(카타르시스) 학생들이 학교 주변에 사시는 독거노인들을 위해 연탄봉사를 했습니다. 학교축제 때 자신들이 잉어빵을 직접 구워 판매한 수익금과 자신들의 책을 기증해 판매한 수익금으로 연탄배달을 계획했지만 금액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적게나마 혼자 사시는 노인들을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을 보며 교장, 교감, 도움반 선생님께서 도움반 학생들이 운영하는 교내 토닥토닥 카페의 수익금 일부를 보태 주셨습니다. 1,200장의 연탄을 여섯 분의 독거노인들께 나눠 주기로 한 학생들은 이틀에 걸쳐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두터운 겉옷을 벗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도 줄지어 서서 연탄을 전달하는 아이들의 얼굴은 참 밝았습니다.
1장에 500원인 연탄 한 장이 가져다 준 따뜻한 온기는 아직 아궁이에서 지펴지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따끈따끈 했습니다. 지팡이 없이는 거동하기 힘든 상태인 할머니 한 분은 아이들과 제 손을 잡고 쓰다듬으시며 연신 “추운데…공부해야 할 텐데…. 고맙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를 반복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 집 당 200장은 겨울나기엔 부족할 것 같아 감사의 인사 말씀을 듣는 것이 오히려 죄송했습니다. 기어이 그냥은 못 보내겠다며, 지팡이에 의존해 손수 커피 여러 잔을 태워 오신 할머니의 맘을 뿌리칠 수 없었던 저희들은 커피를 마셨습니다. 봉사를 끝내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한 녀석이 “우-와! 오늘 커피는 ○○○○ 커피보다 더 맛있었어요. (친구들에게) 그치? 그치?” 라며 즐거워했습니다. 녀석은 그날 커피를 마신 것이 아니라 따끈따끈한 사랑 한 잔을 마셨나 봅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저 또한 가슴 한 쪽이 따뜻해졌습니다. 내년엔 더 많이 도와드리자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이들이 만들 미래는 좀 더 환할 것 같아 제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제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나>부터 먼저 좋은 세상 만들기에 앞장서자고요.

봄이 오는 소리는 싱그럽습니다. 봄이 보여주는 연록의 색깔은 보들보들합니다. 긴 겨울 내내 그렇게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벗은 채로 우뚝 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려 연록의 새잎을 손톱만큼 조금씩 내밀며 세상을 보들보들하게 만드는 수목이 하나가 아니라 수십, 수만 개 있어 봄이 오듯이, 꽁꽁 언 땅이랑 강물이 바깥세상의 세찬 바람을 몸으로 막아 견디며 그 속에 생명을 키우며 땅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 새순이 톡톡 소리를 내며 싱그러운 봄을 열듯이 저는 올 한 해 또 열심히 참 좋은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힘겨움을 견뎌낼 것입니다. 제가 자신있는 이유는 우리 학교에는 학생들에게 열정을 피워 올리는 많은 교사들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나>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라서 저는 참 행복합니다. 제가 행복한 것보다 더 많이 우리 아이들이랑 선생님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우리 주님께 마음을 모아 기도드려 봅니다.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 결국 온 산이 활활 /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우리 모두 같이 활활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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