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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말씀살이 - 소공동체를 위하여
이 달의 말씀살이
- 소공동체를 위하여


교구 성서사도직과 조재근, 이동철, 김요한, 박상욱, 강호동 신부

  ·소공동체 복음나누기 자료제공 : 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 (053) 250-3082 cafe. daum.net/biap

 

 

  

* 매주 하는 복음 나누기 7단계

(1) 주님을 초대한다.

“기도로 이 자리에 예수님을 초대해 주십시오.”

 

(2) 말씀을 듣는다.

“ ― 복음 ― 장을 펴 주십시오. 어느 분이 ― 절부터 ― 절까지 읽어 주십시오.” (다 읽고 난 후 잠시 침묵한다.) “다른 분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3) 복음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각자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짧은 구절을 선택하여 큰 소리로, 기도하듯이 세 번씩 읽어 주십시오. 읽는 사이에는 잠시 침묵을 지켜 주십시오.” “어느 분이 본문을 다시 한 번 읽어 주십시오.”

 

(4) 침묵 중에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

“3분 동안 침묵 속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듣도록 합시다.”

 

(5) 마음안에 들려온 말씀을 나눈다.

“이제 각자 주님께로부터 들려온 말씀을 함께 나눕시다. 왜 그 말씀이 내 마음에 와 닿았는지, 그 말씀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6) 모임에서 해야 할 활동에 대하여 토의한다.

“지난 번 모임에서 결정했던 사항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그 결과와 개선해야 할 사항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이번에는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 주위에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7) 자발적으로 함께 기도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자유롭게 기도합시다.”

 

 

 

3월 1일 사순 제2주일 : 마르 9,2-10.

 2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마르코복음 9장 2절~10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십니까?(2절)

- 예수님의 옷은 어떻게 변합니까?(3절)

- 예수님께서는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십니까?(4절)

- 베드로는 예수님께 무엇을 말씀 드립니까?(5절)

- 구름 속에서 들려온 소리는 무엇입니까?(7절)

-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분부하시며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9-10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본 베드로는 그 산에 머물고 싶어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시어 세상으로 가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도 영광의 순간(안락한 생활)에만 머무르지 않고 세상 안에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제자들이 되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72번을 부르겠습니다.

 

 

사순 제2주일 복음묵상 조재근(마르코)|대구대교구 경찰사목담당 신부

춘천 102보충대에 입대를 했습니다. 강원도 최전방 사단에서 신병훈련을 받고는 그만 전투경찰로 차출되고 말았습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었지만 미사참례는 꿈도 못 꿨습니다. 몇 달이 흐른 어느 날,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 신부님과 평신도 선교사님이 부대를 방문하셨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때부터 주일에 선교사님이 오셔서 교리도 공부하며 천주교 종교모임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모임은 나날이 불어만 갔습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첫 미사 때에 반가운 선교사님이 오셨습니다. 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에서 만든 전의경 교리서와 몇 가지 책자를 주셨습니다. “신부님! 혹시 압니까? 신부님이 나중에 대구대교구에 경찰사목을 시작하시게 될런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있을 때였습니다. 주임신부님의 명을 받들어, 첫 해에는 첫 영성체 가정교리를 본당에 처음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엔 ‘PESS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주일학교 교리교육에 도입했습니다. 규모가 큰 주일학교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며 청하는 가운데 열심히 하면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경찰사목을 시작하는 저에게 있어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제 삶의 실타래가 하나씩 풀립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전경으로 근무했지, 또 본당에서 그렇게 시작하는 일도 잘 하도록 도와줬지, 이게 다 이 일을 맡기려고 그렇게 한 거야. 어때? 할 수 있겠지?’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도 이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에게 미리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장차 다가올 수난과 죽음 앞에서 걸려 넘어지지 않고 굳건하게 믿음을 간직하며 부활을 기다릴 수 있는 용기를 주시려 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주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더니, 베드로가 주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했거든요.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 앞에 덜컹 마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주시는 주님의 세심한 배려를 느껴봅니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습니다.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본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습니다.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삶을, 곧 부르심을 받은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의 세례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고 덧붙이셨습니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과 계명을 새긴 증언판을 받아들고 내려온 것처럼, 제자들은 말씀이신 예수님과 함께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인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으로 사는 데에 때론 어려움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점차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리라 믿습니다. 어둠의 세력, 죽음의 문화가 이 세상에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더욱 세상의 빛이 필요한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필요로 하십니다.

 

 

 

3월 8일 사순 제3주일 : 요한 2,13-25.

13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23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24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25그분께는 사람에 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2장 13절~25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어디로 올라가십니까?(13절)

-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어떤 행동을 하십니까?(14-16절)

-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무슨 요구를 하며 예수님은 어떤 답변을 하십니까?(18-19절)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어떤 의미이며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언제 믿게 됩니까?(20-22절)

- 파스카 축제 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무엇 때문에 믿게 됩니까?(23절)

- 예수님께서는 왜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으십니까?(24-25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성전 안에서 하신 예수님의 행동을 보며 나는 성전이 하느님의 집이 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우리 본당을 참된 하느님의 집으로 만들기 위해 각자 작은 희생 한 가지씩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65번을 부르겠습니다.

 

 

사순 제3주일 복음묵상 이동철(대건안드레아)|두산성당 보좌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사에 사용될 여러 동물들을 파는 사람들과 돈을 바꾸어주는 환전꾼들을 쫓아내십니다. 예수님께서 쫓아내신 사람들은 제사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돈을 받고 팔긴 했지만 거룩한 제사를 위해 흠 없는 동물들을 제공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거룩함을 위해 흠 없는 동물들을 판다기보다는 그저 자신들의 재물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과 결탁하여 서로의 이익을 탐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룩함을 잊어버리고 세속적인 마음으로 물든 그들을 쫓아내심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열정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하신 행위에 대한 권한을 따지듯 묻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그 말씀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즉 예루살렘 성전만이 성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실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은총을 간직하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전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십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께서 전해주시는 하느님과 그 나라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 성전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그 나라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가 성전입니다.

2천년 전, 예루살렘 성전에 계셨던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성전인 나 자신과 우리 교회도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그 나라의 은총을 받아들이고 전하는 수단으로써 세상의 것들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것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들이 하느님을 밀어내고 삶의 첫자리에 왔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져 세속적인 사람, 세속적인 교회로 변질될 것입니다.

사순 제3주일입니다. 내 안에, 또 우리 교회의 모임 안에 어떠한 것들이 하느님과 하느님의 뜻을 밀어내고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성찰해 봅시다. 그 성찰을 통해 나 자신과 우리 교회가 완전한 성전이신 그리스도를 닮아 세상 안에 하느님을 전하는 도구로서의 성전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월 15일 사순 제4주일 : 요한 3,14-21.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3장 14절~21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사람의 아들은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14절)

-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15-16절)

- 하느님께서는 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까?(17절)

- 심판을 받는 기준은 무엇입니까?(18절)

- 믿지 않는 이들이 받은 심판은 무엇입니까?(19절)

- 악을 저지르는 자와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각각 어떤 행동을 합니까?(20-21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 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나의 삶 안에서 빛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으며 또 어둠의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는지 성찰해보고, 빛으로 나아가기 위한 믿음을 청하며 참 빛이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사랑을 실천하도록 합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15번을 부르겠습니다.

 

 

사순 제4주일 복음묵상 김요한(세례자요한)|태전성당 보좌신부

얼마 전 한 신부님이 그리신 카툰의 한 글귀가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겸손한 이들은 자신들이 겸손한 줄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교만한 이들은 자신들이 교만한 줄을 모릅니다.’ 겸손과 교만의 모습은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 평생 숙제와도 같습니다. 앞의 말처럼 겸손해지면 교만의 유혹을 받고 교만해지면 귀를 닫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겸손과 교만의 모습은 내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판단해주실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태어날 때부터 눈 먼 사람을 다시 보게 해주십니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신 예수님께 바리사이는 그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내려고 아등바등 애를 씁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 말씀 중에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구절이 있는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시오. 우리는 그자가 죄인임을 알고 있소.”라는 바리사이들의 말입니다.

평소에 우리는(특별히 사제들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기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 이 말을 할 때도 있고, 습관적으로 이 말을 할 때도 있습니다. 참으로 그분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 또한 주님께서 판단하실 문제입니다. 앞뒤가 꽉 막힌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보며, 제 자신이 이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봉사하시는 여러 형제자매님들에게도 이 모습이 타산지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의 일을 하면서 주님의 일로 덮어 씌우기를 하고 있나요? 차라리 우리는 잘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주님의 판단에 맡겨드리면 좋겠습니다. 그저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여쭙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듣는 마음’이 생겨나겠지요. 듣지 않고 말하기만 하는 바리사이가 되지 않도록,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라고 거짓말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합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어디로 가는지 보다 엄마 손을 잡는데 더 마음을 쓰는 것처럼 우리도 그저 주님의 손에 나를 맡길 때 참된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3월 22일 사순 제5주일 : 요한 12,20-33.

20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21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22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리자,

23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27“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28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29그곳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천사가 저분에게 말하였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

30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 소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린 것이다.

31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32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33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 예수님 초대

어느 분이 짧은 말로 예수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 말씀 읽기

어느 분이 요한복음 12장 20절~33절을 큰 소리로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

다음의 사항들을 살펴보며 본문의 말씀을 각자 천천히 읽겠습니다.

- 필립보에게 예수님을 뵙고 싶다고 청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20-21절)

-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리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22절)

-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하십니까?(24절)

-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25절)

-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26절)

- 27~28절을 다함께 읽어 보십시오.

-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엇을 가리킵니까?(31-33절)

복음말씀을 누가 한 번 더 천천히 읽어주십시오.

 

● 새겨 듣기

잠시 침묵 가운데 복음을 통해 들려 주시는 말씀을 곰곰이 새기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가집시다.(3~5분)

 

● 나누기

오늘 하느님께서 나에게 들려 주시는 말씀을 짧게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실천하기

지난 주 결심하고 실천했던 것을 나누어 봅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나는 생활 안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희생함으로써 맺은 열매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보고, 또 어떻게 희생하겠다고 결심해 봅시다.

 

● 청원기도

우리 반공동체, 본당공동체, 지역공동체, 우리나라, 지구촌공동체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입니다.

 

● 마침기도

마침성가는 가톨릭 성가 419번을 부르겠습니다.

 

 

사순 제5주일 복음묵상 박상욱(라우렌시오)|복현성당 보좌신부

사순시기 잘 보내고 계신가요? 벌써 사순 제5주일입니다. 사순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부활이 곧 다가옵니다. 모두 힘을 내십시오! 최근에 인터넷 블로그에서 〈“나는 천주교신자입니다.”라고 말할 때〉 라는 제목의 글이 많은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 깊은 공감을 얻고 퍼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꼭 한 번 검색하셔서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고통과 아픔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사건, 사물 등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통을 이겨내고 거부하고 싶은데, 사실 그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고통을 거부하고 피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고통과 아픔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답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통에서 예외가 아니셨습니다.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할까요?”

다만 그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내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천주교 신자’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차이가 난답니다. 무릇 천주교 신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러한 고통의 순간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고통과 절망의 순간에서 이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예수님에게서 배웁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또한 천주교 신자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처럼 비록 지금은 내가 아프고 힘들지만 내가 진정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서 죽을 수 있을 때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그런데 고통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결코 우리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구요? 반드시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그러한 다짐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히브 5,7)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고통의 그 순간에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내가 다른 이들을 위해서 진정으로 죽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바로 이것이 ‘천주교 신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사순시기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위해서 죽을 수 있을 만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1독서의 말씀처럼, 부활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천주교 신자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가슴과 마음에 새로운 법을 새겨주실 것입니다.”(예레 31,33) 더불어 “그분은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우리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예레 31,34)

 

 

아모스 복음나누기 소개

 

* 목표 : 아모스 복음나누기의 목표는 그리스도 공동체들이 당면한 사회의 여러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복음의 빛으로 비추면서 주님의 뜻을 찾아가는데 있다. 즉 복음나누기 7단계가 성경에서 출발하여 삶의 문제를 풀어나간다고 하면, 아모스 복음나누기는 삶에서 출발하여 그 삶의 문제에 대해서 하느님의 계획을 실천해가는 것이다.

 

3월 29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1) 주님을 초대한다. : “기도로 주님을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십시오.”

 

(2) 삶을 바라본다. : 아래 글을 한 분씩 낭독해 봅시다.

* ‘지구가 뿔났다’ 3장 신음하는 지구, 열 번째 이야기 육지의 배설물은 바다에 쌓인다.

1997년 찰스 무어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하와이까지 태평양을 횡단하는 요트 경기를 마치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북태평양 아열대 환류대’를 통과하던 즈음이었다. 바다 저 멀리 흐릿한 섬이 떠올랐다. 지도를 펼쳐 보니, 섬이 있을 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지금 요트가 항해하는 이곳은 태평양 한가운데 하와이에서도, 미국 서부 연안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진, 태평양에서 가장 외딴 지역이었다.

놀랍게도 그가 발견한 것은 거대한 쓰레기 섬이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에세이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가장 원시적인 바다에서 내가 목격한 것은 원시적인 섬이 아니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섬은 플라스틱 더미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그 일주일 동안 아열대의 바다를 건너면서, 수많은 페트병과 뚜껑, 포장재 등의 플라스틱 조각을 헤쳐 나갔다.” 찰스 무어는 고무 타이어, 자동차 계기판, 버려진 욕조를 지나치며 플라스틱의 세상을 여행했다. 그가 발견한 이 쓰레기 더미는 훗날 ‘태평양 쓰레기 섬(Great Pacific Garbage Patch)’으로 이름 붙여졌다.

쓰레기 섬이 떠다니는 지역은 북태평양 환류대 주변이다. 이 지역은 연중 적도의 더운 공기가 고기압을 이루어 바람을 빨아들이기만 할 뿐 내보내지 않는 곳이다. 이 해류는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 사이를 시계 방향으로 돈다. 육지에서 버려진 쓰레기는 빠른 해류를 타고 돌다가 안쪽으로 빠지면서 정체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나둘씩 쓰레기가 모이면서 하나의 섬이 된 것이다. 뱃사람들은 이곳을 예로부터 ‘무풍지대’로 여기며 기피했다. 참치나 고래, 상어도 이곳을 꺼렸다. 바람이 없어 생태계가 다른 곳과 교류하지 않는 ‘태평양의 사막’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 쓰레기 더미가 고립되어 떠다니고 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찰스 무어가 발견한 쓰레기 섬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섬의 크기는 아직까지 정확히 측정되지 않았다. 섬을 이루고 있는 잔해가 대부분 작은 플라스틱이어서 인공위성이나 비행기로는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까이 가서 보지 않는 한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일부 샘플을 토대로 규모를 추정했는데, 작게는 70만 제곱킬로미터에서 크게는 1,50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태평양 전체 면적의 0.4퍼센트에서 8.1퍼센트에 이르는 크기다. 태평양 쓰레기 섬의 쓰레기들은 모두 인간이 버린 것들이다. 우리들이 버린 쓰레기들도, 남해나 동해를 지나 이곳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육지에서 나온 쓰레기는 육지에, 바다에서 나온 쓰레기는 바다에’ 버리는 게 원칙이다.

우리나라도 ‘육지의 쓰레기는 육지로, 바다의 쓰레기는 바다로’라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그래서 수산물 가공 공장에서 나오는 생선 기름이나 생선 찌꺼기들은 바다에 버려도 된다. 수산물 시장에서 나오는 조개껍질이나 수산물 폐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전히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소나 돼지 등의 축사에서 나오는 가축 분뇨와 일반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다. 이것들은 불과 2012년까지도 합법적으로 바다에 버려졌다. 우리가 남은 음식물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면, 지방 자치 단체의 수거 차량이 ‘음식물 자원화 시설’로 가져간다. 음식물 자원화 시설은 이것을 가지고 가축의 사료나 농경지의 퇴비로 만든다. 하지만 거기서 자원화되지 않고 남는 것들이 있다. 이 쓰레기들이 폐기물 운반선을 타고 바다로 가서 버려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 아무 데나 버리는 걸까? 그렇지 않다. 정부는 1993년부터 동·서해 연안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3개 구역을 ‘바다의 쓰레기장’으로 선정해 운영하고 있다. ‘서해 병’, ‘동해 병’, ‘동해 정’ 구역이 그것이다. 서해 병 구역은 군산 서쪽 20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지역으로 수심은 80미터다. 동해 병 구역은 포항에서 동쪽으로 125킬로미터 떨어진 수심 200~2,000미터 지역이다. 동해 정 구역은 울산에서 남동쪽으로 불과 63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수심은 약 150미터 정도다. 동해 병 구역은 전체 폐기물의 60퍼센트 가량을 담당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바다 쓰레기장이다. 서해 병 구역과 동해 정 구역은 각각 전체 폐기물의 27퍼센트와 13퍼센트를 담당한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가 바다에 버려진 것은 음식물 쓰레기의 육상 매립이 금지된 이후다. 이에 따라 음식물 자원화 시설에서 최대한 많은 양을 사료나 퇴비로 재활용해야 하는데, 기술 부족 등의 이유로 성공하지 못하고 바다로 버려진다. 또한 축사에서 나오는 분뇨를 깨끗하게 만드는 정화 시설도 많이 짓지 못했다. 힘이 들더라도 환경 정화를 위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투자하는 대신, 바다에 버리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잘못이 우리에게 있다.

그런데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도 런던 의정서에 따라 해양 투기를 전면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제 사회에 2012년부터 가축 분뇨의 해양 배출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고, 이어 2013년에는 음식물 쓰레기도 모두 육상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결국 2013년부터 해양 투기가 전면 금지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1억 2,000만 톤의 쓰레기를 육상에서 처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우리는 국제 사회에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우리 바다가 오염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 곳의 ‘바다 쓰레기장’은 다른 바다보다 중금속 등의 유해 물질 농도가 높은 것으로 여러 연구 결과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해 병 구역은 중금속 농도가 가장 높다. 바다가 오염되면 어떻게 될까? 결국 바다 생태계의 건강성이 악화되고 생선과 해초를 먹는 우리 건강도 위협받게 된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바다에 사는 생선을 먹으면 우리 인체에도 같은 중금속이 농축된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06년부터 세 구역의 일부에 휴식년제를 설정해 해양 배출을 금지했다. 휴식년제 덕분에 오염 물질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납이나 카드뮴 등의 중금속 농도가 미국 해양 대기 관리처(NOAA)의 기준을 초과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물론 지구에는 자정 능력이 있다. 거대한 쓰레기 섬도 수백 년 동안 파도에 부딪히고 자외선에 노출되면 조금씩 분해된다. 음식물 쓰레기가 만든 바다의 오염 지대도 해류를 타고 확산되면 점차 오염 물질의 농도가 낮아진다. 하지만 언젠가 지구의 자정 능력이 작동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물건을 아끼고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 지구는 결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지구가 뿔났다, 남종영 저 2013. 04.22)

 

* 달라진 생활쓰레기 분리배출

바쁘게 지내온 2014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남원읍 새마을부녀회원들은 생활쓰레기 분리배출 정착화를 위해 추진하였던 활동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올해 남원읍 새마을부녀회 회원들은 클린환경감시단 활동을 활기차게 전개하였다. 상반기만 해도 생활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가 분리되지 않은 채 배출되어, 클린하우스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였다. 게다가 이곳을 지나는 취객들의 노상 방뇨와 음식물 쓰레기에서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여 클린하우스 인근 주민들이 클린하우스를 철거하거나 이설 등 갖가지 요구들로 골칫거리였다. 생활쓰레기 분리배출이 아직 정착되지 않아 어려운 상황에서 남원읍 새마을부녀회 회원들이 클린하우스 청소는 물론 EM(유용미생물)발효액을 살포하여 해충방제에 솔선수범하여 왔으며, 쓰레기 종량제 실시와 분리배출 정착을 위한 원년으로 결심하여 추진하여 왔다.

그러나 잔치 이후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가 클린하우스에 산더미같이 쌓여서 길을 지나는 사람이나 동네 사람들은 행정기관에서 처리 해주도록 항의도 수차례 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 남원읍과 새마을부녀회 회원들이 참여하여 쓰레기 수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였으며, 생활쓰레기 배출요령 전단지를 가정에 홍보하였다. 남원읍 새마을부녀회에서 야간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을 하는 과정에서 이웃과 마찰도 발생되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과 분리배출 홍보 등 클린하우스 청결운동에 매진하여 왔다. 또한 남원읍 새마을 부녀회원들이 중문 색달매립장 현장 견학을 다녀온 후, 체험을 통하여 쓰레기 분리배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아직까지 읍·면에서 음식물쓰레기가 재활용되지 못하고 소각되기 때문에 음식 쓰레기의 양만 줄여도 전체 쓰레기량을 줄일 수 있음을 알고 이에 적극 동참하였다.

쓰레기 분리배출 실천 가능성이 주민들로부터 반신반의했지만 놀라게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클린하우스에 산더미처럼 쌓였던 쓰레기가 점점 줄어들고 고약한 냄새도 사라져 클린하우스가 깨끗하고 청결해졌고, 그 결과 쓰레기 분리배출이 확 달라짐으로써 지역주민들로부터 환경개선에 따른 호평을 받고 있다.(헤드라인제주, 2014.12.15)

 

(3) ‘왜’라는 질문을 한다.

왜 태평양 바다에 쓰레기 섬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왜 클린하우스에서 해충과 고약한 악취가 들끓었을까요?

 

(4) 하느님께 귀를 기울인다.

① 성경 본문을 읽는다. : 창세 1,24-26.

24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제 종류대로, 곧 집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25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집짐승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26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② 성경 본문 중 마음에 와 닿은 단어나 짧은 구절을 선택해서 묵상한다. : “마음에 와 닿은 단어나 짧은 구절을 선택하여 기도하듯이 세 번씩 외쳐 주십시오. 세 번씩 외치는 사이에는 잠시 침묵을 지켜 주십시오.”

③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 “2분 동안 침묵하는 가운데 지구의 쓰레기 문제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④ 함께 나눈다. : “이 성경 본문은 자연 안에서 다른 창조물들과 함께 사는 우리들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5) 근본 원인을 찾는다.

① 우리 사회 또는 공동체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② 지구에 점점 더 쌓여가는 쓰레기를 보는 내 마음과 내 손은 어떠해야 합니까?

교회의 가르침을 읽고 잠시 생각해 봅시다.

♣ 창조자원의 “무분별한” 착취 풍조는 오랜 역사적 문화적 과정의 결과이다. “현대는…자원에 대한 정복과 착취의 양상이 주를 이루며 번지고 있고, 오늘날에는 환경의 호의적 측면을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곧 “자원”으로서의 환경이 “서식지”로서 환경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문명이 제공하는 강력한 변화의 수단 때문에 때때로 인간과 환경 사이의 균형이 위험한 지경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간추린 사회교리 461항)

♣ “안전하고 건강한 자연환경에 대한 권리”와 관련한 법 규정이 공동선의 요구와 오염의 주범자들을 처벌하려는 공통된 바람에 따라 창조 재화의 사용을 규제하려는 여론의 관심에 자극을 받아 점차 모양을 갖추어가고 있다. 그러나 법적 수단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거기에는 책임감의 증대와 사고방식과 실질적인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68항)

 

(6)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운다.

* 개인과 가정 차원에서

* 소공동체(반모임) 또는 우리 동네 차원에서

 

(7) 감사나 청원기도로 모임을 마친다. :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자유롭게 기도합시다.”(혹은 잘 아는 성가나 기도로 마칠 수 있다.)

 

 

3월 29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마르 14,1-15,47.

1파스카와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궁리하고 있었다.

2그러면서 “백성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축제 기간에는 안 된다.” 하고 말하였다.

3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4몇 사람이 불쾌해하며 저희끼리 말하였다. “왜 저렇게 향유를 허투루 쓰는가?

5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러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6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가만 두어라.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7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으니,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잘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8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9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10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기려고 그들을 찾아갔다.

11그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2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3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14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15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47그때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그의 귀를 잘라 버렸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묵상 강호동(마티아)|성동성당 보좌신부

침묵하시는 하느님

예수님께서 수난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마지막으로 이루실 그 일을 바라보시며, 고난과 힘겨움을 마주하면서까지 길을 걸어가십니다. 당신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당신의 몸과 피를 나누어 주십니다. 제자들은 도무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고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당신의 길임을 아셨음에도 공포와 번민의 시간을 벗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배신과 당신이 당할 수난의 고통, 그 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의 침묵이었습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그렇게 당신 수난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저항하지도, 피하지도, 당신을 팔아넘긴 제자와 당신을 모른다고 배신한 제자에 대한 원망도 없으십니다. 당신을 조롱하고, 박해하고, 비아냥거리는 이들에 대한 억울함도 내색하지 않으십니다. 그 모든 고통과 수모를 그저 다 받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예수님께서 외치십니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하느님 아버지를 향한 그 외침 속에는 지금까지 침묵하신 하느님께 대한 애절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그토록 원했던 아버지의 도우심을, 그토록 원했던 아버지의 손길은 끝까지 침묵으로만 전해질 따름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세상에 오셨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임을 아셨지만 세상과 제자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마저 철저하게 버려졌다는 것을 느끼는 그 순간, 예수님께서 겪으셔야 했던 그 아픔은 무엇으로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끝까지 당신의 십자가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시는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 앞에서, 죄 없는 이들이 당해야 하는 수많은 어려움 앞에서, 과연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며, 어떤 말씀을 해 주시는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그 아들을 통해 세상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수난을 함께 겪으시면서, 그 고통 가운데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 그것은 하느님의 침묵의 표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에 전하시는 구원의 표지임을 당신의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왜 침묵하시는가?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당신의 말씀을 전하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한 믿음도, 우리의 나약한 마음도, 제 십자가를 저버리는 잘못도 다 받아 안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십자가를 이제 당신께서 짊어지고 그 길을 걸어가십니다. 앞으로 시작되는 성주간,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며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