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찬미예수님. 저는 30대 중반 남성으로 결혼한 지 이제 2년 남짓 되었고 막 돌이 지난 아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직 인생경험이 짧고 부족한 탓이겠지만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장모님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합니다. 결혼준비를 할 때에도 이 문제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신혼집, 혼수, 결혼식 장소 등등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지만 다들 그렇다고 하길래 그러려니 하면서 참았는데 요즘은 참는 것조차 잘 안됩니다. 특히 최근 들어서 더 힘듭니다. 맞벌이인 저희 부부에게 아이가 태어나고 장모님께서 아들을 돌보아 주시면서 부쩍 간섭이 심해지셨습니다. 막말도 막말이지만 보이지 않게 은근히 압박을 주시고 생활에 간섭을 하고… 한마디로 집이 집 같지가 않습니다. 분명히 장모님과는 따로 살고 있으며, 제 집이고 제 가정인데도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처가 식구들이 온통 와 있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제 한 가족이니 그런 것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참고 또 참다가 아내에게 말하면 저만 속 좁은 사람이 되고 바쁜데 별것 아닌 것으로 뭐라 한다면서 아내는 되려 저를 비난합니다. 그렇다고 저희 부모님께 이야기 할 수도 없어요. 때로는 전문직인 아내의 월급이 저보다 많은 것도 트집이 되기도 해요. 어디 가서 말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지내자니 할 짓이 아닌 것 같고 도대체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죠?
A. 알렐루야!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성삼일과 부활 대축일은 잘 지내셨습니까? 맞벌이에 아기도 어려서 성당 다니시는 것이, 특히 성삼일을 지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어떻게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형제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들이 한편으로 와 닿으면서도 또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애매모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형제님의 말씀과 표현들은 전반적으로는 충분히 공감되고 (지면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참 답답하시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뭐랄까… 모호한 표현들을 통해 핵심문제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합니다. 사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지금 나의 느낌이 무엇인지, 심지어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형제님께 지금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정리’를 해 보시길 권하며 지금의 상황에 대해 함께 정리해 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형제님께서 호소하시는 당면 과제는 장모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입니다. 이는 ‘관계성’이라는 구조 안에서 ‘소통과 이해’라는 지평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문제는 결국 장모님과 잘 지내는 것이 관건인데, 잘 지내기 위해서는 상대를 잘 알고 이해하며 그에 따른 소통의 노력이 가장 필요합니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해’가 요구됩니다. 이것은 ‘너’를 향한 이해만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혼준비를 할 때의 상황을 말씀하셨는데 그 당시를 떠올려 보십시오. 하나 하나 각각의 에피소드 속에서 나 자신이 힘들었던 순간에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 찾아보십시오. 혹시 ‘결혼’이라는 사건 속에서 경제적인 부분이 힘들었을까? 아니면 내가 무시당했기 때문일까? 혹은 내가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과 가족들에 대한 존중을 받지 못해서 속이 상했을까? 편지에 2년 전의 일을 적으신 것으로 보아 아직까지 무언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감정의 소여가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데, 이런 나를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나를 만나게 되며, 이 때 비로소 ‘너’가 진심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 관계성에 맞는 소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나 자신이나 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무지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형제님, 시작은 장모님 때문이었지만 혹시 나도 모르는 마음 깊은 곳에서 ‘나의 편이 되어 주지 않는 아내’라는 형태로 자매님을 향한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진심으로 아니시라고 하신다면 다행입니다만 편지의 내용에서는 자매님께 대한 불만도 있는 것 같이 읽어집니다. 그리고 나아가 형제님 본가에는 말 할 수가 없고 다른 곳에도 말할 수 없다 하셨는데 이러한 생각의 출발이 되는 마음이 가족들을 사랑하시는 것이지요? 그 속에 다른 감정들이나 생각, ‘말해봤자’, ‘집안 욕인데’, ‘말하면 오히려 내가 바보가 되니’ 등등의 것은 아니시지요?
관계에서 소통이 어려울 때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그 이상의 것은 사탄에게서, 즉 온전한 자아로서의 내가 아닌 여러 가지로 인해 통합되고 성장되지 못한 나의 욕구 분출일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님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 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사람들에게 잘 해 주고 싶고 좀 더 참고 착하게 살고자 하시는 분이시니 이렇게 편지를 주셨다고 여겨집니다. 그냥 그 마음을 그대로 전하세요. 세련되거나 포장하거나 연구하고 그런 의사소통의 기술들이 때로는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그보다 솔직한 나를 전달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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