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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의 뿌리를 찾아서: 안세화 주교와 김보록 신부의 발자취 ②
김보록 신부님의 고향 벨포르


박준용(유스티노)|신부, 프랑스 벨포르 선교 파견

 

대구의 첫 본당신부 김보록 신부님의 발자취를 찾아 조환길(타대오) 대주교님과 신부님들, 수녀님들, 평신도들이 함께한 순례단이 지난 1월 신부님의 고향 벨포르에 오셨습니다. 벨포르 교구장 쇼케르 주교님께서 대주교님을 비롯하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악수를 건네며 환영해 주셨습니다. 쇼케르 주교님은 “이곳에서 세례를 받고 자라신 김보록 신부님께서 한국으로 선교를 떠나 대구교구의 초석을 마련하고 나중에 주교좌성당이 될 성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130여 년이 지나 이렇게 한국인 신부가 우리 교구를 위해 파견되었다는 것은 성령의 놀라운 활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뜻깊은 우리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인사하셨습니다. 조환길 대주교님께서는 “뜨거운 환영에 감사를 드리고, 교구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받았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대구 본당의 첫 주임신부였던 김보록 신부님을 기억하며 특별히 벨포르 교구에 다시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한국에서 순례단이 왔다는 것이 이 지역에서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취재를 하는가 하면 벨포르 시장님의 초대로 시청에서 환영을 받기도 했습니다. 벨포르 주교좌인 그리스도폴성당에서 조환길 대주교님께서 주례하신 미사에는 이곳 신부님들과 신자들이 많이 참례했습니다. 강론은 벨포르 순례 방문 당시 계산주교좌성당 이상국(크리솔로고, 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신학원 원장) 주임신부님께서 하셨는데, 김보록 신부님의 고향 교구 주교좌에서 대구 주교좌성당의 주임신부님이 강론을 하신다는 것이 참 의미 깊게 다가왔습니다. 100여 년 전에 김보록 신부님께서 손수 지으시고 초대 본당신부를 지내신 그 계산동 성당이 주교좌가 되고, 그 성당의 28대 주임신부가 당신의 고향에 와서 강론을 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벨포르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쏠노라는 마을이 바로 김보록 신부님의 고향입니다. 순례단은 이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김보록 신부님의 후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대주교님의 명으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제가 불어로 강론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나중에 벨포르 교구의 홈페이지와 유튜브에까지 올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무척이나 부끄러웠습니다. 김보록 신부님의 후손들이 모두 모여와서 환영 식사를 차려 주었는데 동네잔치가 따로 없었습니다. 대주교님께서는 “우리가 가족들을 대접해야지, 대접을 받을 수 없다.”고 하시며 식사비용을 드리려 했고, 가족들은 기어코 받지 않겠다고 하여 우리나라에서나 볼 줄 알았던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김보록 신부님은 우리나라에 오셔서 단 몇 개월 말을 배우시고는 바로 사목을 하셨다는데, 아마도 천재이셨던가 봅니다. 저는 아직 제대로 대화도 못하는 처지이지만 이곳 신자들의 배려와 대구대교구 신자들의 기도의 힘으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김보록 신부님께서 편지 말미에 자주 적으셨던 멘트를 따라 해 봅니다. “예수님 만세! 대구의 루르드 성모님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