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을 먹다가 우연히 텔레비전 화면에서 어떤 할머니가 구성지게 부르는 노랫가락을 들으며 가사가 재미있어 인터넷을 검색했습니다. 그 노래의 제목은 “백년 인생”이었습니다.
“육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 칠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 팔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 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 // 백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흔히들 요즘을 백세 인생이라고 합니다. 노인이란 단어는 70부터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젊은 노인들이 참 많습니다. 백세에도 저승사자가 오면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며 쫓아버리는 노랫말에서 볼 수 있듯이 못 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우리 인간은 그래도 이 세상이 참 좋은가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늙음 앞에서 안타까워지는 나이가 누구에게나 다 소리없이 성큼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우리 반 학생들은 열아홉 청춘들입니다. 위의 노래를 들어도 무슨 의미인지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나이입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매일 한 명씩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3분 스피치를 합니다. 3분간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한 후 “나는 이다.”라며 칠판에 빈 칸을 채웁니다. 입시를 눈앞에 둔 고3이기에 아무런 목표없이 그 험난한 길을 그냥 헤매게 할 순 없어서 자기 목표라도 세우면 나을 것 같아 시작한 학급활동입니다. 내심 걱정했는데 생각과는 달리 3분의 시간 속에 열아홉 청 춘들은 자신을 잘 엮어 놓습니다. 어떤 녀석은 1학년 때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한 친구를 보며 그 친구 만큼만 공부하려고 노력한 결과 우리 학교 상위 10%가 공부하는 형설반이 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가능성’이라 정의했습니다. 어떤 녀석은 ‘도전’이라고, 또 어떤 녀석은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중 한 학생이 “나는 빈 칸 이다.”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모두 의아해하는 중에 자신은 아직까지 꿈이 없으나 이제 시작하려고 한다며, 그래서 아직은 쓸 것이 많은 ‘빈 칸’이라고 설명해 학급 친구들의 환호와 갈채를 받았습니다. 한 명이 ‘빈 칸’은 어감이 좋지 않으니 ‘여백’으로 바꾸자고 건의해 모두를 박장대소하게 만들었습니다. 평소 아무 생각없이 지내는 것 같아 늘 지켜보며 안타깝기만 했는데 급우들 앞에 서서 자신의 미래와 꿈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정말 청춘은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빛나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으며, 열아홉의 시간대에 머문 그들이 참 부러웠습니다.
저도 소녀였을 때가 있었습니다. 한 편의 시가 제 가슴 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내내 잠을 뒤척이기도 했고, 부모님 몰래 이불을 덮어쓰고 라디오를 타고 나오는 ‘별밤’을 들으며 그 사연들이 제 이야기 같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마음에 와 닿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그 가사를 놓칠세라 열심히 적으면서 그렇게 설레며, 아파하며, 꿈꾸며 행복했던 ‘청춘(靑春)’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 사실 저는 민태원 님의 ‘청춘예찬’을 수업시간에 배우면서 그 작품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이 있다.” 당시 국어선생님께서는 그런 청춘의 시간을 너희들이 쥐고 있다며 뜨겁게 살기를 힘주어 말씀하셨지만 우린 그 말씀을 이해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거선(巨船)의 기관같이’에 밑줄을 그은 후 ‘끓는 피=정열’이라고 적으며, 마음속으론 청춘보다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으니까요. 이 아이들도 자신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대에 머물고 있는지 저만큼의 나이를 먹으면 알겠지요. 그건 억지로 가르친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새 학기를 시작하며 학부모 모임이 있었습니다. 고3 아들을 둔 학부모인 만큼 담임과 상담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많이 오셨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 분씩 만나 생활 및 성적상담을 하다 보니 늦은 밤까지 집에도 못 가시고 남아계셔야만 했습니다. 자식을 향한 마음은 모두 같으셨습니다. 우리 반 학급지인 ‘2015년 열아홉 이야기1’을 보면서 아들이 꿈을 적지 않은 것을 보시곤 안타까워하시며 혹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하시는 분,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시며, 바쁘다고 혼자 밥 먹게 하고 혼자 지내게 한 당신 죄라는 분, 일요일 늦게까지 달게 잠을 자는 아들이 안쓰러워 도저히 깨울 수 없다고 하시며 그냥 성적 나오는 대로 대학 보내겠다는 분, 고3이 되어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아들을 지켜보시며 지금의 교육제도가 지닌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아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지켜주지 못한 시간을 후회하시며 “제 탓입니다.”를 반복하시던 어머니 한 분은 끝내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쩔 수 없이 부모면 해야 하는 평생 짝사랑인 내리사랑의 아픔을 느끼며, 또 언젠가 그들도 해야만 하는 사랑임을 생각하며 심장 한쪽이 짠해졌습니다.
첫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고 학생들에게 부모님께 편지를 쓰라고 했습니다. 요즘같이 디지털과 인스턴트가 난무하는 시대에 아날로그 손 편지는 참 귀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좋지 않은 성적표가 보이더라도 아들이 쓴 사랑과 정성된 마음이 담긴 손 편지를 받으시면 잠시라도 그 마음에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 무뚝뚝한 우리 반 남자 아이들에게 힘주어 말했습니다. “언젠가 앞으로 부모님께 정말 견디기 힘든 순간이 닥치거나 너희들이 지금보다 더 불효를 하더라도 오늘 쓴 이 편지를 떠올리며 힘내실 수 있도록 쓰자.”우리 반 아들들이 저의 이 말을 알아들었을까요? 창밖으로 비춰든 달님이 빙긋이 웃으며 “너도 지금은 잘 알잖아.”라고 답하네요. 오늘도 밤은 깊어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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