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청명한 자연은 늘 싱싱합니다. 5월의 화사함과는 다른 거친 숨길을 잉태하고 있는 것 같아 저 또한 마음 한 구석이 꿈틀꿈틀 댑니다. 마치 온몸에서 물기를 튕기며 요동치는 물고기 한 마리를 품고 있는 것처럼! 유월은 그렇게 우리 아이들을 많이 닮아 있습니다. 1학기 1차 지필고사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도 운동장에서 공과 함께 혼연일체가 되어 뒹굴고 있는 열아홉 청춘들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범벅이 된 그 순간이 그저 행복할 뿐입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6월은 참으로 잔인합니다. 입시를 눈앞에 둔 고3에게 6월 전국모의평가는 수능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지난 겨울부터 열심히 노력한 만큼 기대도 큽니다. 그러나 수능을 앞둔 대부분 입시생들도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성적향상을 기대하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의 결실을 간절히 원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은 오르지 않은 결과에 직면하게 됩니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아! 안 되는구나.”란 자괴감에 빠지고,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님들은 “공부는 한 것 맞나?”, “그렇게 하니까 성적이 이렇지.”라며 망설임 없이 가시 돋친 모진 말들을 내뱉습니다. 그 가시가 아이들 맘속을 비집고 들어가 커다란 생채기를 내고 있는 줄도 모르시곤.

10년도 더 된 일입니다. 2년간 꾸준히 전교 1등을 해 오던 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입학 때부터 늘 잘 하던 아이였기에 모두들 그 학생에게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워낙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고 매우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교사들이나 부모가 보기엔 이 아이가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3학년이 되어 첫 모의고사 결과가 나왔을 때도 여전히 이 학생이 1등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더 좋은 성적으로 1등을 해주길 원하고 있었기에 저를 포함한 많은 교사들은 “좀 더 해야겠네.”란 말로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뒤로도 1등이긴 하지만 마음에 차지 않는 성적표는 계속 진행형이 되었습니다.
6월 시험을 친 결과가 나왔을 때 담임인 저는 저녁에 교무실로 학생을 불렀습니다. 저 역시 더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은데 자기 역량을 제대로 다 발휘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성적이 왜 이렇지?”라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엔 말대꾸도 잘 하고 늘 개구쟁이 미소를 띠며 대답하던 이 녀석이 낯빛을 바꾸고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몇 마디 계속 물어도 미동도 없이 고개를 반쯤 수그린 채 그냥 그렇게 앉아만 있는 아이를 보며 저 또한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라고 다그치는 저를 향해 그 아인 울음 섞인 한 마디를 절규하듯이 내뱉었습니다. “저 열심히 공부했는데요. 그리고 전 1등이잖아요? 그런데 왜 저한텐 아무도 칭찬은 안 해주고 못했다고만 해요? 전 1등을 해도 아무도 칭찬 안 하잖아요?” 울음을 한껏 베어 물고 연이어 “엄마, 아빠도 그렇고… 선생님들도 그렇고….” 하고 싶은 말을 다 뱉고 난 뒤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는 아이 옆에서 저는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같이 울어버렸습니다. 정말 미안했습니다. 그 긴 시간 자기 혼자 아팠을 아이의 외로움이 제 가슴팍을 치고 들어왔습니다. “그랬구나, 그랬겠구나. 그래…그랬겠네.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저는 이 말만 되풀이하며 아이의 등을 두드리고만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저는 학생의 부모님을 학교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전날 있었던 일을 그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아이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 줄 몰랐네요. 저는 잘 한다는 칭찬을 그렇게 한 건데. 아이에겐 닦달하는 것으로 비친 것 같아요. 정말 이렇게 잘 하는 우리 아들 칭찬한 번 안 해 봤네요. 어쩌죠?” 이야기를 들으시던 어머니 또한 울음보가 터졌습니다. 그날은 어른인 우리가 참 많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그렇게 어린 아이에게 또 하나를 배웠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지금 로스쿨에 다닙니다. 여전히 자신의 다재다능함과 뛰어난 사교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며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졸업식 날, 이 녀석이 제게 한 약속이 있습니다. “선생님! 제가 반드시 우리 동기 중에 제일 먼저 신문에 이름 낼게요. 약속드립니다. 꼭요.” 저는 지금도 그 녀석의 확신에 찬 그 소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3 담임인 저는 그날의 기억을 항상 마음에 새겨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부모님과 만날 때면 늘 부탁드니다. 고3 부모님이 가장 잘 해야 하는 것은 칭찬이며, 끝까지 아들을 믿고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립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고래보다 더 똑똑한 인간이니 그 마음들을 다 알 거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성적 결과로 아이의 맘에 생채기를 내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힘든 것은 바로 본인 자신이란 걸 너무나 잘 알기에.

흔히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살아보면 성적순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되면 자기 자식에게만은 ‘행복은 성적순인 것’처럼 말 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반에는 성적은 낮지만 교사에게 언제나 웃으며 대하는 멋진 아이가 있습니다. 잠이 많아 자주 지적을 당하지만 그래도 청소시간이나 학급활동, 봉사활동 시간에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참 잘 살 것 같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또 중학교 때부터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 비행기 조종사가 되겠다는 하나의 목표만 가지고 지금까지 열공해 온 녀석도 있습니다. 이 녀석은 얼마 전에 기흉으로 수술을 받으며 그 꿈 자체를 접어야 했지만 그의 성실함은 다른 분야에서도 빛을 발하리라 확신합니다. 시험이 다가와도 3층 도서관 앞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며 열심히 대본을 외우고 있는 연극과 지망생도 있습니다. 늘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는 이 학생은 보고만 있어도 주변 사람이 즐거워집니다. 그래서 전 그 아일 ‘방글이’라 부릅니다. 분명 먼 훗날 이 아이는 자신의 꿈대로 연극 무대 위에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며 꿈꾸는 삶을 살 것입니다. 이들 모두가 지금은 너무나 힘겹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곁에 있는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한 달 전 학교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린 아들 때문에 학교에 오신 아버지 한 분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그렇게밖에 풀 수 없는 아들이 안쓰러웠습니다. 이 일로 겨우 다잡은 마음이 안 흐트러지도록 제가 더 안아줘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아버지는 직접 맛있는 저녁식사를 준비해 아들과 진한 데이트를 하셨습니다. 그 아버님의 말씀이 아직도 제 뇌리에 맴돕니다. “부모인 제가 안 믿으면 누가 우리 아들을 믿어 주겠습니까? 제가 끝까지 아들 뒤에 있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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