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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들의 가족찾기 프로젝트 - 엄마, 보고싶어요 ⑧
미국 입양인 아이비 휘테커(Ivy Whitaker)
- 김경미


김 데레사 수녀|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어렸을 적에는 낯선 사람이 저를 트럭에 강제로 태워 어디로 데려 가려 하는 악몽을 자주 꿨어요. 제가 가족과 떨어졌다는 사실에 정신적인 압박을 많이 받았었나 봅니다.” 아이비 휘테커 씨와 나눈 대화가 잊히지 않는다.

 

작년 8월, 31년 만에 남편과 두 아들 대니얼(10세), 나단(8세)과 함께 한국을 찾은 아이비 휘테커(한국이름: 김경미) 씨에 대한 백백합보육원의 아동카드 기록에 의하면 1981년 4월 24일 동대구역 대합실에 한 여자 아이가 혼자 울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김 아무개 씨가 아이를 보고 역전파출소(현재 역전지구대)에 신고했다. 아이는 고사리 손에 ‘김경미, 1979년 양력 11월 24일 오전 9시 10분, 음력 10월 5일’이라고 적힌 쪽지를 꼭 쥐고 있었다. 역전파출소는 미아를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가 운영하는 백백합보육원에 의뢰했고 아이는 백백합보육원 나자렛방에서 한 달 가량을 지낸 후 1981년 5월 14일 대구 대성원(현재 대구아동복지센터)으로 거취를 옮겼다. 그리고 2년이 지나 4세 때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그녀의 양아버지는 부산에서 군복무를 한 인연이 있어서 한국인 아이의 입양을 원했다. 그래서 아이비 씨 뿐만 아니라 아이비 씨 밑으로 한국인 아이를 한 명 더 입양했다고 한다.

   

아이비 씨는 자신이 머물었던 백백합보육원의 나자렛방과 도미니코방을 둘러보고 처음 발견된 장소로부터 역전파출소까지, 30여 년 전 아기 때 이 사람 저 사람들 손에 의해 옮겨졌던 길을 되짚어 가보고 싶어했다. 주변의 건물도 거리도 재건축되어 옛 모습은 없어졌으나 친절한 주민들의 안내를 받아 처음 발견된 장소로 추정되는 곳까지 가 보았다. 혹시라도 출생기록이 남아 있을까 한나절 동안 부근의 병원을 다니며 문의해 보았으나 안타깝게도 어떠한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 아이비 씨는 이름과 출생기록이 있는데 왜 친부모를 못 찾는지 의아스러워 했다. 한국에서는 가정에서 출산하기도 하는 것을 그녀로서는 알 리가 없을 것이다.

 

“엄마가 저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기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이제는 이해해요. 고마워요.” 입양인들마다 하나같이 하는 말이지만 이 말마디 안에는 그리움과 고독과 슬픔과 겹겹이 쌓인 용서가 배어 있다.

그 동안 가족을 찾아 한국에 오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주저하곤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심리 상담을 전공한 미국인 남편 쉐인 휘테커(Shane Whitaker) 씨가 “친부모를 찾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끝까지 함께 해주겠다.”며 프랑스로 가족 여행을 하는 길에 한국을 경유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비록 친부모에 대한 어떤 것도 얻지는 못했지만 경찰서에 DNA를 등록하고는 한가락 희망을 품고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에서 기쁜 소식이 없냐고 자주 연락을 해오는 그녀는 요즘 한인교회에 다니며 언젠가 만날지 모를 친부모님과 대화를 하기 위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한다.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백백합보육원 입양인 지원 : 053-659-3333

김 데레사 수녀 : spct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