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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성월을 맞이하여
대구 복자 20위와 함께 하는 순교자 성월


취재|김선자(수산나) 기자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인 한국천주교회는 지난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집전된 시복미사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복자 123위를 맞이했다. 대구대교구 또한 이날 20위의 복자를 맞이한 가운데 지난 5월 29일 이분들을 위한 첫 번째 축일을 지냈고, 9월 순교자 성월을 보내고 있다.

1815년 경상도 지방에서만 발생한 을해박해 때 순교한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 김시우 알렉시오, 최봉한 프란치스코, 서석봉 안드레아·구성열 바르바라 부부, 김희성 프란치스코, 이시임 안나, 고성대 베드로·고성운 요셉 형제, 김종한 안드레아, 김화춘 야고보 복자는 경북 청송 노래산 교우촌, 경북 진보 머루산 교우촌, 경상도 일월산의 곧은정, 경상도 영양의 우련밭 등지에서 박해를 피해 살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놓지 않았다.

박경화 바오로, 김세박 암브로시오, 안군심 리카르도 복자는 정해박해(1827년) 때 대구 감영에서 옥사했고, 기해박해(1839년) 때 순교한 이재행 안드레아, 박사의 안드레아, 김사건 안드레아 복자는 정해박해 때 감옥에 갇혀 기해박해 때 참수형으로 순교하기까지 12년 동안 온갖 형벌과 배교를 강요당하면서도 신앙을 굳건히 지켰다. 이양등 베드로와 김종륜 루카, 허인백 야고보 복자는 병인박해 때 울산 장대벌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후 경주 진목정, 감천리 묘지를 거쳐 현재의 복자성당에 모셔졌다.

오늘날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았던 이들이 살고 순교한 곳은 후손들에게 신앙의 정신을 일깨우는 거룩한 성지가 되었다.

 

경상감영공원과 관덕정순교기념관

대구 중구 대안동에 위치한 경상감영공원은 조선시대 국법을 어긴 이들의 죄를 다스리던 관청이 있었던 곳으로 을해박해 때 청송 노래산, 진보 머루산, 일월산중의 우련전과 곧은정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이송되어 형벌을 받고 순교한 곳으로 복자 최봉한, 김윤덕도 이곳에서 옥사했다. 김종한, 김시우, 김화춘, 고성대·고성원 형제, 이시임, 서석봉·구성열 부부, 김희성 복자는 이곳에서 사형을 언도 받고 지금의 관덕정순교기념관이 세워진 관덕정 형장에서 참수 치명당했다. 또한 정해박해 때 상주, 봉화, 안동에서 잡혀 온 박경화, 김세박, 안군심 복자는 형 집행 전 옥사했고, 박사의, 이재행, 김사건 복자는 12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기해박해가 일어난 해 5월 관덕정 형장에서 참수당했다.

  

관덕정순교기념관은 을해박해, 정해박해, 병인박해를 거치며 많은 천주교인들이 참수된 대표적인 순교성지로 지하 성당 제대에는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또한 유해전시실에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하여 사도 바오로 등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으며 2, 3층에는 인형·사료·교구전시실이 있다. 오늘날 관덕정순교기념관은 관덕정 형장과 대구 경상감영에서 순교한 많은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진목정과 복자성당

이양등, 김종륜, 허인백 복자와 그 가족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신앙생활을 한 경주 진목정은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범굴에 살던 세 분의 복자가 체포되어 울산 장대벌에서 순교했다. 세 분 복자의 시신은 허인백 복자의 부인 박조이 여사에 의해 진목정 공소 뒤편에 안치되었다가 후에 감천리 묘지, 그리고 1973년 대구 동구 신천동 복자성당으로 옮겨져 현재 진목정에는 가묘만 남아있다. 진목정은 순교자들의 후손들이 일찍부터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곳으로 초기 한국천주교회 8개 공소 중 한 곳인 진목공소가 있다.

 

 

복자성당은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으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황해를 건넜던 배 모양으로 앞쪽이 좁고 뒤가 넓은 유선형과 둥근 곡선을 이루며 지붕의 처마 끝과 종각은 각각 뱃전과 돛대의 형상이다. 이곳 복자성당에는 이양등, 김종륜, 허인백 복자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성 앵베르(조선교구 제2대 주교) 주교, 성 모방 신부(한국에 최초로 입국한 서양신부), 성 샤스탕 신부(대구를 포함한 남부지역 사목) 등 성인 유해 일부가 모셔진 성지로 과거와 현재의 신앙이 공존하고 있는 성지이다.

 

이밖에도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한티순교성지(경북 칠곡군 동명면), 교구 제2주보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가 경기도 용인 묵리로 이장되기 전까지 45년간 묻혀(현재의 비봉초등학교 근처로 추정됨) 있었고 한티에서 순교한 이 알로이시오 공사가가 살았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는 비산성당 일대. 또 경북 칠곡군 연화동 중화리에 위치한 신나무골은 “죽어도 성교를 믿겠소.”라며 한티에서 순교한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역과 대구 교회 첫 본당터, 김보록 신부의 사제관, 흉상, 명상의 집이 있고 사제관에는 과거 사진과 각종 유물, 성물이 전시되어 있다.

 

순교의 터는 아니지만 한평생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의 땅으로 신앙 선조들의 얼이 닮긴 성모당은 드망즈 주교의 허원으로 세워졌으며 프랑스 루르드성모동굴과 흡사한 모양이다. 또한 대구교구 초대 교구장 드망즈 주교가 잠든 성직자묘지가 있다.

대구 시내 중심에 위치한 대구본당 전신, 계산주교좌성당과 방인사제를 육성한 성유스티노신학교, 박해를 피해 1850년대부터 신자들이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새방골 교우촌은 현재 새방골성당과 죽전성당 구역 일대에서 발견할 수 있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여 대구 복자 20위와 이름 없는 수 많은 순교자들의 얼이 깃든 성지를 기도로, 미사로, 순례로 함께 하면서 순교자들이 보여 준 믿음을 따라 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