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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시작하며


박영일(바오로)|신부, 대구대교구 사목국장

 

몇 달 전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도중 지휘자 코바체프가 갑자기 쓰러졌다. 때마침 청중으로 와 있던 의사가 무대 위로 올라 가 그에게 응급조치를 하고 대학병원에 긴급 이송함으로써 그는 목숨을 건졌다. 이른바 골든타임(Golden Time) 안에 필요한 모든 조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골든타임이란 의학적으로는 환자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심장이 갑자기 멈춘 사람을 소생시킬 수 있는 시간은 불과 5분이라고 하는데, 그 초기 5분이 바로 골든타임이며 그 시간을 놓치면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의 골든타임’은 언제인가? 혹자는 교회에 무슨 골든타임이 있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교회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왜냐하면 복음은 세상 끝 날까지 전해질 것이고 결코 망하지 않겠지만,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오늘날 교회는 점점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에 발행된 통계가 이를 잘 말해준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한국천주교회 통계 2014’에 의하면 가톨릭 신자가 꾸준히 늘고는 있지만 주일미사 참여율은 20.7%밖에 되지 않으며 그밖에 고해성사, 첫영성체, 견진성사, 병자성사 등 성사자의 숫자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또한 교회 단체에 속한 회원이나 신앙교육 참가자도 꾸준히 줄었다. 그리고 연령대별로 19세 이하 신자는 줄고 65세 이상 신자는 늘어나는 등 교회의 고령화 추세도 2013년에 비해 더 뚜렷해졌다. 뿐만 아니라 한국갤럽이 한국의 종교 실태를 조사하여 발표(2015년 2월 29일)하였는데, 비종교인 중에 호감이 가는 종교가 없다고 대답한 비율이 10년 전 33%에서 46%로 크게 늘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데 있다.

이러한 통계를 보면 교회는 마치 시한부 생을 선고받은 사람과 같으며, 이 시한부 기간이 어쩌면 마지막 남은 ‘골든타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우리가 이 ‘골든타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교회는 망할 수도 있고,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다. 물론 아직까지 교회의 ‘골든타임’을 위한 자동심장제세동기(AED)나 특효약은 없다. 대신 의사가 환자에게 나쁜 식습관을 버리고 하루 세끼 꼬박 먹고 규칙적으로 유산소 운동을 하라고 권하는 것처럼, 우리도 개인주의적인 신앙생활 같은 나쁜 습관을 고치고 그동안 몸에 밴 교회의 근본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초대교회 공동체의 정신을 이 시대에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즉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 44-47)고 기록된 것과 같은 그런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초대교회 공동체 신자들은 복음의 기쁨을 간직한 사람답게 살았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기 소유의 땅과 집을 팔아 그 돈을 내주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초대교회의 모습대로 사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달라이 라마가 말한 것처럼 오늘날의 시대는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마음은 더 궁핍해졌고, 과학의 발전으로 달에도 갔다 왔지만 이웃은 더 멀어진 시대를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대교회 공동체의 신자답게 살아보자고 ‘소공동체’를 강조하지만, 이것 역시 많은 저항을 받고 있다. 심지어 소공동체가 오늘날 도시화되고 개인화된 주거환경과 문화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지만 기회도 된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먼저 자신들의 정체성을 깨닫고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할 때 교회는 세상의 공동체성 회복에 기여하는 빛과 소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에 교구 ‘평신도 위원회’와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에서는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시작하려고 한다.

 

1. 우리는 신앙인답게 가정에서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며 사랑하겠습니다.

1. 우리는 신앙인답게 교회에서 친교와 나눔, 봉사의 삶을 살겠습니다.

1. 우리는 신앙인답게 직장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겠습니다.

1. 우리는 신앙인답게 사회에서 공동선을 추구하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겠습니다.

 

이렇게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은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사회 안에서 복음의 삶을 살자는 운동으로 특효약이나 특별한 비방(秘方)이라기보다 평소에 기본적으로 먹는 ‘삼시 세끼’이며 건강을 유지하게 만드는 유산소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경제만 잘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는 생각에 젖어 그 이면에 숨겨진 위험들을 간과하는 경향이 컸다. 물질만능주의, 부정·부패 등이 이를 잘 말해준다. 작은 부정·부패들이 모여, 큰 부패를 만들고,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들을 만들어 냈다. 지난해 일어났던 세월호 사건 등 많은 대형 사고들이 그것을 말해주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활동은 지지부진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한국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차원에서 신앙인, 특히 천주교 신자들이 먼저 각자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살자는 의미에서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제는 6대 종단이 함께 참여하는 범국민적 운동이 되었다.

우리 교구에서는 9월 20일(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대축일을 기하여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 운동에 어느 때보다도 사제와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지금이 바로 교회를 위한 골든타임, 그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