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호흡조차 힘들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는 더위 속에서 고3들은 수능 100일을 맞이했습니다. 100일이면 으레 사람들은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우리 고3들도 예외 없이 100일을 맞아 교장선생님의 당부의 말씀, 셀 학생들과 함께 하는 100일 맞이 미사 봉헌도 있었습니다.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고3들을 위해 모두들 마음을 모아 그 간절함을 표현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눈앞에 다가온 거대한 현실을 당혹해하면서도 다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금 채찍질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냥 “아! 100일이네. 우짜노?”란 막막함으로 멍하니 있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편안한 마음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저녁 7시 경당에 모인 고3 40명은 모두 한마음으로 주님 앞에 앉았습니다. 성체를 모시기 위해 미뤄두었던 고해성사도 다 본 이들은 마음을 다해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강론 시간에 ‘최선’이란 말의 의미에 대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신부님께선 『태백산맥』을 쓴 조정래님을 언급하시며 ‘최선이라는 말은 자신의 노력이 자신을 감동시킬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 되물어 봤습니다. ‘넌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니?’
연이어 미사 전 상황이 언뜻 제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고3 중에는 저녁식사 후 경당으로 달려와 묵주기도를 바치는 학생들이 몇 명 있습니다. 100일 미사 시작 전에 여느 때와 똑같이 묵죽기도를 시작할 때 늘 오는 2명뿐이었습니다. 각자가 주님께 청하는 자유기도를 바친 후 또렷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묵주기도를 한 단 한 단 바치는 두 명의 아이들을 보며 ‘저 모습을 보고 계신 우리 주님과 성모님은 어떤 마음이실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있지 않는, 또는 같이 못하는 다른 이들의 소망을 담아 그들을 위해 기도할 줄 아는 그 두 아이를 보며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함을 담아 성모송을 바쳤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그러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어 고개를 돌려 봤습니다. 어느새 여러 명의 아이들이 같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두 명의 아이들이 씨앗이 되어 거둔 열매들이었습니다. 전 그 순간 공부시간은 조금 줄었을지 모르지만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과 성모님께 청할 줄 아는 이 아이들이 지금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이란 생각이 들어 환한 불빛 속에 있는 십자가상 예수님을 올려다봤습니다. 우리 주님도 그렇다고 답해주시네요.
미사가 끝난 후 생활성가 ‘너는 내것이라’를 불렀습니다. 밤 8시! 1,2,3학년 70여 명의 남자아이들이 온 마음을 담아 부르는 기도는 저 높은 곳의 하늘에 닿을 정도로 우렁차고 간절하며 힘이 있었습니다. 물 가운데, 불 속에 있더라도 “두려워 말라~”는 후렴부분에서 70여 명이 고음을 내지를 때, 전 온몸에 전율이 강타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걱정 많은 제게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데레사야, 뭘 두려워하니? 너부터 두려움을 없애라. 내가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느냐?”
미사를 마친 후 신부님이 마련해 주신 피자를 맛있게 먹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든든해진 아이들은 열공을 외치며 다시 야간 자습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다음날 몇몇 아이들에게 어제 미사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도 우리 주님이 다녀가셨답니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기로 했다는 소리, 마음이 든든하단 소리를 들으며, 저는 속으로 ‘역시!’를 몇 번이나 외쳤습니다. 우리학교 고3들은 늘 여름방학 자율학습 중 한 타임을 빼서 학급 단합대회를 합니다. 운동경기를 하는 반도 있고, 영화를 보러 가는 반도 있습니다. 저는 매년 방학하는 날 아이들과 함께 1박 2일 야영 캠프를 해 왔습니다. 1박 2일의 강호동보다 훨씬 전부터! 하지만 지난 해 세월호에 이어 올해는 메르스의 출현으로 학급야영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가기에 아쉬웠던 저는 부모님과 자녀가 함께하는 1일 캠프를 열었습니다.

땡볕아래에서 웃통을 벗은 채로 헐떡거리면서도 골문을 향해 죽기살기로 달리는 아이들, 그늘막도 치지 않은 상태에서 쭈그리고 앉아 연신 물처럼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도 아들들 먹일 부추전을 열심히 굽는 어머님들, 아들이 싸주는 쌈을 쑥스러우신 듯 어색해하며 받으시면서 뿌듯해하시는 부모님들, 불판 위에 고기가 구워지기 바쁘게 재빨리 입 속에 털어 넣으며 끊임없이 먹는 먹성 대장들, 모두들 고3이란 시간은 잠시 멈춰 놓고 최선을 다해 그 시간을 즐기며 행복한 웃음을 서로에게 날렸습니다.
특히 아버지들과 아들들의 족구 대결은 모두에게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3번이나 경기를 했지만 이기지 못한 아들들은 아버지들의 체력과 기술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해가 넘어가 어둑해진 운동장에서 생일 축하식도 하고, 학급 간부들의 장기자랑도 했습니다. 마지막에 40명 가까운 아들들이 감사의 마음으로 올리는 큰절을 받으며 가슴 뭉클함으로 눈가가 붉어지는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모든 뒷정리를 끝내고 돌아오면서 정말 모두가 최선을 다한 <큰잔치>였다란 생각을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내내 하루를 떠올리며, 저는 참 행복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즐거움은 그 어떤 시련도 시련이 아니게 만드는 힘이 있으며, 될 수 있다는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요. 그리고 그 믿음은 두려움을 뛰어넘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요. 수능뿐만 아니라 그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 아이들이 즐겁게, 믿음을 갖고 산다면 후회가 적을 것 같습니다. 미사시간 신부님 말씀처럼 수능 100일을 앞둔 우리 아이들이 뛰어넘어야 할 거대한 산은 공부가 아니라 바로 수능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기 자신인 것 같습니다. 그 두려움은 우리 주님께 맡기고 부모님들도, 저도, 그리고 아이들도 힘차게 하루하루 100일을 살아요. 모두들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