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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으로 세상보기
묵주기도로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 평화통일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성한(베르나르도)|신부, 3대리구 교구장 대리

   

우리 민족이 가장 염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남북이 평화롭게 통일되는 것이라고 본다. 광복70주년을 맞아 국민의식조사를 해본 결과 86%가 통일을 원한다고 답변했다.(조선일보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014년 통일평화연구소에서 통일의식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6% 나왔고, ‘통일이 필요없다.’는 응답이 22%나 나왔다. 그런데 국민의 79%가 전쟁의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아예 20%는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본다고도 했다.(2013년 보훈처 조사) 또 중국에 정식 북한비자를 갖고 들어온 북한 주민을 상대로 조사해 보니 95%가 통일을 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절반가량은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2011년 KBS 스페셜조사) 이렇게 볼 때 통일은 원하나 현실적으로 아직도 통일이 되기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독일과 사정이 매우 다르다. 독일은 승전국들에 의하여 나라가 분단되었지만 민족끼리 전쟁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분단 후에 민족끼리 엄청난 전쟁을 치렀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고 갈라놓는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는데 지금도 상처를 주고 있다. 이런 모습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신뢰의 길을 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통일의 문제는 정치, 경제, 군사적인 것만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로 접근해야 된다고 본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문제와 적대감을 극복하고 심리적인 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동안 우리는 다방면으로 많은 노력을 해 봤다. 그러나 번번이 불신의 벽에 가로 막혀 통일의 길을 가지 못하고 있다.

마음의 벽을 허무는 문제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아니 된다고 본다. 개인과 개인도 어려운데 거대한 민족 집단이 하나가 되는 것은 기도로 가능하고, 하느님의 섭리로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교회가 성모발현을 공적으로 인정한 곳 중에 하나인 파티마에서 성모님께서 전 세계에 거짓과 오류를 퍼뜨리는 공산주의자들의 회개와 세계의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주셨다. 러시아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특히 묵주기도를 바치고 희생하고 보속하기를 강력히 요구하셨다. 러시아를 성모성심께 봉헌할 것을 요청하셨고, 결국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이 승리할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 메시지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1962년 미국이 소련을 겨냥하여 터키에 설치한 핵탄도미사일 기지로 인한 위협에 대응하여 쿠바에 핵탄도미사일 기지를 건설한 것에 대하여 당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과 행정부는 쿠바에 핵탄도미사일 기지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는 발표와 함께 국제사회가 핵전쟁의 위기에 직면한 때가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 Saturday Review>지의 Noman Cousin에게 소련과 접촉을 요청했다. Cousin은 교황 성 요한 23세에게 중재를 부탁했다. 교황은 기도했고 전 세계에 기도를 요청했다. 교황은 당시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Nikita Sergeyevich Khrushchev, 1894-1971) 딸과 사위를 만나셨고 교황의 뜻이 전달되어 미국과 소련은 교황의 중재를 승낙했고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교황은 흐루쇼프에게 전화해서 한 발씩 양보할 것을 요청했다. 흐루쇼프는 다음 조건으로 철회할 뜻을 비치었다. 미국이 터키에 설치한 핵미사일을 제거하고 쿠바를 침략하지 않으면, 소련은 쿠바로부터 핵미사일 시설을 철거하고 추가적인 설치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서로가 합의를 보면서 최후통첩 4시간 전에 교황의 비밀스러운 중재로 핵전쟁과 확산을 막을 수가 있었다. 흐루쇼프는 “교황이 평화를 구하기 위해 한 일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 한 사건은 폴란드 출신이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979년에 폴란드를 방문하신 일이다. 교황은 “폴란드는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 자신의 존엄성을 위해서 투쟁하라.”고 하셨다. 그 이듬해 폴란드는 자유노조연대가 결성되었고 폴란드 전역에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소련은 폴란드 공산 정권이 무너질 것을 염려했다. 1981년 5월 13일(5월 13일은 파티마 성모 발현 기념일이다.)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성당 광장에서 신자들을 알현하시던 중에 터키 극우파 단체 ‘회색 늑대’ 소속 터키인 메흐메트 알리 아그자(Mehmet Ali Agca)가 쏜 총에 저격 당하셨다. 소련은 이슬람 광신자의 단독 범행이라고 하나 2006년 이탈리아 상원의원 파울로 구찌안티는 이 사건이 단독범행이 아니라 소련의 KGB(국가보안위원회)가 배후라고 발표했다. 교황은 저격당해 쓰러지시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하셨다고 한다.

“저격을 받은 뒤 맨 먼저 파티마를 생각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의식은 그 즉시 파티마의 성지로 갔습니다. 그것은 나를 위험에서 구해주신 하느님의 어머니의 성심께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교황은 암살기도 5개월 후에 파티마에 관한 제3의 비밀을 다 읽으시고 묵상하시고 기도하신 후에 즉시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께 온 세계와 러시아를 봉헌하기로 결심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82년 5월 13일 파티마에서 성모님께 러시아를 봉헌하셨고 1984년 3월 25일 바티칸 광장에서 파티마 성모님을 모시고 전 세계 주교들과 함께 러시아를 봉헌하셨다. 봉헌이 이루어진 지 1년 후인 1985년 3월 10일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Prestroika, 개방개혁) 정책을 펴면서 소련 공산주의 해체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89년 12월 1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바티칸을 공식 방문했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1991년 소련 공산주의는 와해되고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결국 나의 티 없는 성심이 승리할 것이다.”라는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가 이루어진 것이다.

1995년 10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북한 문제는 심각하며 세계 평화에 큰 장애가 되므로 기도해 달라.”는 말을 듣고 러시아 콘트루비시즈 대주교는 자신이 러시아 주교로 임명된 직후, 파티마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했던 루치아 수녀를 직접 만나 들었다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전해 주었다. “파티마 성모님께서 약속하셨던 ‘러시아의 회개는 동유럽과 북한을 포함한 모든 공산권을 말한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유럽 동구권 공산국가와 소련의 붕괴와 독일 통일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핵전쟁 없이 소련이 변화된 것은 기적”이라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말씀하셨다. 평화는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본다. 남북이 평화통일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파티마에서 약속하신 대로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께 우리 자신과 가정, 본당, 조국, 그리고 전 세계와 특히 북한을 봉헌하고 묵주기도를 바쳐야겠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분단70주년을 맞아 남과 북이 함께 웃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면서 묵주기도 8천만 단(남북 전체 인구수) 바치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해야겠다. 그리고 통일의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기도해야겠다. 또한 일상에서 오는 모든 고통도 통일을 위해 하느님께 바쳐야겠다. 이런 일들을 실천할 때 평화통일이 온다는 확신을 가지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면 평화통일은 반드시 우리 민족에게 예상하지 못한 때에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올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