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만치 높다랗게 달아나 버린 가을 하늘은 청명함을 자랑하며 자꾸만 우리의 시선을 잡아끕니다. 조금 더 멀리 있으니 더 아름다워 보이고, 더 간절해집니다. 바쁘게 이렇게 좋은 세상이 있나 싶어 복도 난간에 서서 아름다운 자연을 휘 둘러봅니다.
고3의 9월, 10월은 ‘수시대란’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고3 교무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수시 상담을 하면서 자신이 오랜 시간 꿈꿔왔던 대학에 원서를 내는 학생들은 합격을 꿈꾸며 그나마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원서를 쓸 수 없는 현실을 맞닥뜨리며 실망을 하거나 절망감에 빠집니다. 직장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내거나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던 몸을 추스른 상태에서 자식을 위해 상담하러 오신 부모님들 대부분은 자식의 성적을 보시고 참담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왜 이렇게 공부를 안 한 걸까요?”라며 분노를 드러내는 부모님도 게시고, 어떤 부모님은 “제가 머리가 나빠 제 자식이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니 누굴 탓하겠습니까?”라고 하시며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책하시는 모습도 보이십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마치 제가 잘 돌보지 못해 그런 성적을 받게 한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해지며 죄인이 되는 기분이 듭니다.
부모나 교사의 마음도 힘들지만 그 무엇보다 안타까운 이는 바로 상담을 받는 당사자들입니다. 어제도 밤 10시 40분쯤 상담을 온 한 친구의 눈물을 봐야만 했습니다. 어디에 원서를 낼 거냐고 묻는 제 앞에서 고개를 푹 수그린 그 녀석은 한 마디도 않고 가만히 있기만 했습니다. 왜 그러냐는 제 물음이 몇 번이나 반복될 동안 그 아인 마치 몸이 굳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그냥 그렇게 있었습니다. 저 또한 답답하지만 어떻게 할 수 없어 망연하게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첫마디를 채 꺼내기도 전에 그 아이의 눈가는 벌써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구나 싶어 두 손을 꼬-옥 잡으니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온 세상의 서러움을 다 가진 듯이 그냥 울기만 하는 아이를 보며 저 또한 마음이 슬퍼졌습니다.
사실 전 이 아이의 울음이 무슨 의미인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알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1학년과 3학년 담임을 맡았고, 3년간 가까이에서 지켜 본 바로는 이 학생은 매 순간 정말 열심히 공부했으며 수업시간도 늘 교사의 눈을 좇으며 수업에 충실했습니다. 야간자습 시간도 빠지지 않았고 주말까지도 학교에 나와 교실에서 학습을 꾸준히 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야속하게 성적은 늘 제자리걸음이며, 정말 조금씩조금씩 올라가고 있어 곁에서 지켜보는 저도 늘 안타까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가고 싶은 곳은 지금 제 성적으로는 높아 낼 수가 없으니 열심히 노력해 수능 성적을 올려 정시에 도전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께서 ‘지금까지 오르지 않은 성적이 어떻게 갑자기 오르겠느냐며 저를 믿어주지 않으세요?’라고 말하며 나오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제 가슴 안으로 스며들어 저 또한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그런 말씀조차 사랑 때문인 부모님의 마음임을 이해시킨 후 수시에 붙어도 후회하지 않을 학교와 학과를 골라 상담을 마친 후 저는 그 아이에게 할 수 있다고 격려를 했습니다. 단지 위로하는 말이 아니라 전 그 학생이 반드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노력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한 것은 삶 안에 자양분이 되어 언제 어디서나 그 힘을 꼭 발휘한다.”라는 믿음을 갖고 지금까지 살아온 저였기에 지금은 눈물범벅이 된 이 아이가 먼 훗날 웃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들어 살짝 미소를 보이며 인사를 하고 교무실 문을 나서는 그 아이의 힘없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저는 제 자리 앞쪽에 있는 십자가상 예수님을 올려다보며 저 아이에게 힘을 달라고 화살기도를 바쳤습니다. 또 한 녀석은 “저는 떨어져도 괜찮고 다른 대학에 가도 되는데 제가 떨어지면 우리 엄마가 울어요.”라며 떨어질까봐 너무 두렵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대학 입시는 정말 무서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이 멋진 남자들을 울게 만드는 것을 보면….
힘들고 슬픈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와중에도 우리 학교에선 기숙사 학생들을 위한 삼겹살 파티가 열렸습니다. 학교에서 기숙사 학생들을 위해 마음껏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삼겹살 파티는 우리 학교의 자랑 중 하나입니다. 앉지도 않고 모두 일어서서 고기를 굽고 먹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서로 쌈을 싸 먹여주기도 하고, 선생님들의 입에 넣어주기도 하며 신나합니다. 베이컨과 소시지를 구워 입에 넣으며 이렇게 맛있을 수는 없다는 표정으로 눈인사를 나눕니다. 조금 전까지의 그 참담한 표정은 어디로 보내버렸는지 온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고 들뜬 목소리는 온 급식소 안을 가득 채웁니다. 그래서 아이들인가 봅니다. 같이 웃으며 이런 힘든 순간에 행복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교장선생님께 마음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또 고3이란 힘든 길을 주님께 의탁하며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수험생, 부모님, 선생님, 그리고 세상 속에 사는 힘겨운 이들까지 포함해 기도문을 만든 책(수험생이 드리는 40일 기도)에 자신들의 기도가 실린 5명의 가톨릭 신자 아이들은 자신들이 받은 저작권료(원고료)를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달라며 학교에 기증했습니다. 자신들의 기도가 들어 있는 책에 사인을 한 후 담임선생님께 드리며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 그들의 모습이 저를 더 따뜻하게 만듭니다. 그리곤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습니다. ‘난 정말 복 받은 선생이구나. 참 좋은 곳에서 교사를 하는구나.’ 몸은 한없이 지쳐가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으로 사는 삶이!
상담을 하고 원서를 쓰고, 자기소개서 상담도 하고 추천서도 쓰면서 정신없이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면 밤 12시가 다 되어 교문을 나섭니다. 까만 밤하늘을 보며 주님을 불러봅니다. “도와주세요. 이 수능이란 엄청난 힘을 가진 녀석이 우리 아이들 삶에 생채기를 내지 않도록, 삶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우리 주님과 성모님!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아시겠죠?” 대한민국 대부분 3학년 선생님들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학교 고3 담임선생님들도 모두들 자기반 아이들의 눈에 눈물 나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오늘도 이렇게 늦은 밤 교문을 나서고 있습니다. 처음 교단에 설 때 간절히 원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마지막 교단을 내려서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하며!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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