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로는 여러 번 성지순례를 했으나 이번에는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 주말을 이용하여 순교자들과 증거자들의 삶을 조용히 묵상하는 그런 성지순례를 해보고 싶었는데 아내인 말가리다가 교구 성모당에서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자를 사 왔다. 그날은 8월의 마지막 주였다. 책자를 보니 교구별로 성지 소개와 지도까지 잘 나와 있어 순례하기에 좋아 보였다. 잘 됐다 싶어 ‘성지순례 책자’로 전국의 성지를 순례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전국 111곳 중에서 한국의 첫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탄생지인 솔뫼성지를 첫 순례로,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마지막 순례지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묘가 있는 배론성지로 미리 정했다.

우리 부부는 주저없이 다가오는 주일에 첫 순례를 시작했는데, 그날은 공교롭게도 ‘순교자 성월’이 시작되는 2013년 9월 1일이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솔뫼성지보다 신리성지가 거리상으로 가까이 있어 첫 순례지를 신리성지로 바꿨다. 조선의 카타콤바로 불리는 신리성지에 도착해 때마침 시작하는 주일미사에 참례했다. 성스러운 이 땅을 밟기 전까지 나는 신리성지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다블뤼 안 주교가 은거하며 사목하시던 주교관의 고택을 둘러보며 신리를 비롯해 주변 마을에서 순교하신 57위 순교자와 46기 무명 순교자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면서 이제라도 순례다운 순례를 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머리가 절로 숙여졌다.

두 번째 순례지는 합덕성당이었는데 입구에서부터 신자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런데 촌부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한 분이 성당 안으로 들어오셔서 제대 앞에서 무릎을 꿇는 옆모습을 보는 순간 유 라자로 교구장이심을 직감했다. 옆 교우한테 나직이 물으니 순교자 성월이 시작되는 그날이 대전교구 도보 성지 순례하는 날이라고 했다. 우리도 국내 성지순례를 처음 시작하는 날이기에 경험이 없는데 교구 도보 성지순례와 겹쳐져 성지순례 확인 스탬프를 찍는데 어려움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사실로 다가왔다.

원머리 성지순례 후 관할 신평성당을 찾았으나 성당 문과 사무실이 굳게 잠겨있어 사무장과 어렵게 통화를 했더니 지금 여사울 성지에 있으니 순례 확인을 받으려면 그쪽으로 와야 한다고 했다. 여사울은 우리가 이미 2시간 전에 다녀온 곳이었다. 순례를 했다는 증거는 성지를 배경으로 찍은 인증 사진을 책자에 첨부해도 되지만 가능하면 성지 스탬프나 도장을 받고 싶었다. 여사울에 다시 도착하니 언덕 너머에서 강론하시는 주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사가 끝난 후에도 30여 분을 더 기다려 사무장을 만났다. 당연히 스탬프나 도장을 찍어 줄 것으로 알았는데 확인 도장은 사무실에 있다면서 자필서명을 해줬다.
오늘의 마지막 순례는 배나드리 성지였는데 ‘인언민 마르티노 순교자 사적지’ 안내판을 디카로 잘 찍은 다음 관할 삽교성당을 찾아갔다. 이미 저녁 무렵이었고 시간상 도보순례가 끝났을 무렵이라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계실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문이라는 문은 다 노크하고 불러 보았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여 어쩔 수 없이 확인 도장을 받지 못한 채 핸들을 돌려야 했다. 대전교구 성지순례 여정에 머물러 있는 것은 첫 번째 순례지이면서 그만큼 추억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5개월 후, 2014년 1월 19일 수원교구 성지순례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온양 신정동성당에서 주일 미사에 참례했다. 신정동성당은 남방재 성지를 관할하고 있었기에 일부러 시간을 맞추어 온 것이다. 책자에 나와 있는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여 남방재를 찾아갔는데 어느 공장 앞에 이르러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멘트를 종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수 없이 지나가시는 어르신한테 묻고 물어 한참을 서행한 후 길가에 서 있는 남방재 표지석을 발견했다. 성지를 소개하기 위해 관할 교구에서 세운 것이 아니라 마을 이름을 알리고 소개하기 위해 누군가가 마을 초입에 세운 것이리라.

기대와는 달리 기념비도 하나 없고 저수지와 마을을 멀거니 바라보며 이곳이 성지인가 싶었다. 큰 돌에 새겨진 남방재 표지석 옆에 서서 아내와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줬다. 모처럼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니 갑자기 배나드리 성지가 생각났다. 작년 순례 때 받지 못했던 확인 스탬프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검색해보니 다행히 그리 멀지 않는 곳이어서 다시 순례하기로 했다. 한 번 갔던 곳이어서 도로와 거리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았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관할 삽교성당으로 곧바로 가지 않은 것은 작년에 찍은 사진은 경험미숙으로 기념비만 덩그러니 있어 인증사진이 아니었기 때문에 배나드리 성지에 도착하여 순교자 사적비 옆에 서서 인증사진을 핸드폰으로, 디지털카메라로 잘 찍은 다음 삽교성당으로 향했다. 낯익은 성당 건물이라서 내비게이션보다 내가 먼저 목적지를 찾아냈다. 주일 오후여서 그런지 신자들은 한 분도 보이지 않고 고요하기만 했다. 순례를 하다 보니 관할 본당에 따라 성지순례 확인 도장이나 스탬프를 보관하는 장소가 다르지만 사무실 옆에 붙어있는 우편함 안에 넣어 두는 곳이 많았다. 마치 보물을 찾듯이 조심스럽게 손을 넣은 나는 도장이 손안에 들어오는 순간 희열을 느꼈다. 더구나 순례 확인도장을 받기 위해 두 번이나 온 곳이니 그럴 만도 했다. 아내인 말가리다의 책자 확인란에 도장을 찍은 다음 잰걸음으로 차에 와서 내 성지순례 책자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구석과 바닥을 훑고 트렁크까지 열어봤으나 ‘책자는 없었다. 맙소사, 어찌 이런 일이!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숨이 멈추는 거 같았다. 그렇다면 남방재에?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을 확대해 보니 남방재 옆 보도블럭 위에 책이 놓여 있었다. 안심이 되면서도 마음은 조급해졌다. 남방재 순례 전에 관할 본당인 신정동성당에서 이미 도장을 받았으니 차에 두고 내렸으면 좋았으련만 습관적으로 옆구리에 끼고 내려 아내의 사진을 찍어 줄 때 셔터 누르기가 불편해 보도블럭 위에 잠시 내려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차안에는 고요가 아니라 정적이 내려 앉으면서 온갖 걱정이 파고 들었다. 책을 두고 온 곳이 마을 입구여서 눈에 쉽게 띌 수 있다. 어떤 이가 책을 주워 훑어 본 후 자기와 무관한 책이라 제자리에 두고 가면 좋으련만…. 혹 분실이라도 된다면? 벌써 70%정도 어렵게 순례를 했는데 여기에서 중도 포기를? 그렇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데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편으로는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책자로 순례하고 있는 만큼 순례를 다 마친 후 담당 주교님의 축복장을 받고 싶은 기대심리도 불안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저런 걱정에 휩싸이면서도 화살기도와 순교자들의 전구를 청하며 맹속력으로 달렸다. 이처럼 과속을 한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땀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사선을 넘나들듯 긴장하며 갔으나 책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에서 편한 자세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순례책자를 크로스백에 넣어 더 잘 챙기고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 부주의로 인해 나에게는 남방재와 배나드리, 삽교성당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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