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은 비켜가고 격랑은 멈췄습니다.
저마다의 소출은 셈을 마치고 거두어졌습니다.
이 모든 소산이 주님의 은총임을 잘 압니다.
무릎을 꿇습니다.
그러나 한 해의 끄트머리 한 발 앞에서야
동안의 하지 않아도 될 근심과 불신들
주님의 사랑 앞에
조바심으로 동동거렸음을 부끄러이 여깁니다.
그 믿음 앞에 서성거렸음도 고백합니다.
새 달력을 걸고 새해를 받아들고서
시작과 끝이 한결같기를 기도했건만
사랑의 밭고랑엔 물이 다 말라 가는데
노을은 파다하게 번지는데
열매가 붉게 물들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다시 시간의 유령 앞에 섰습니다.
마음은 급했으나 질질 끌려 다닌 시간들
주먹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마른 나뭇잎 우수수 떨어져 나뒹구는
시간의 소리들을 쓸쓸하게 듣습니다.
남은 마지막 힘으로 근육을 팽팽히 당깁니다.
언제나 그랬듯 나무늘보의 미련한 몸짓으로
무릎 일으켜 새우고 줄을 내려
물 한 동이 두레박에 길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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