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능이 하루하루 죄어오는 답답한 현실을 사는 아이들에게 뭔가 이야기는 해 주고 싶은데 마땅한 것이 없어 쉬는 시간에 인터넷검색을 했습니다. 좋은 명언을 클릭했더니 여러 문구들이 보였습니다. 그 중에 잘 알고 있던 익숙한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닫힌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 헬렌켈러”
몇 번을 반복해 읽은 저는 헬렌켈러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생후 19개월 때 심한 열병을 앓아 시각장애, 귀머거리, 벙어리의 삼중고의 삶 속에서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했고, 평생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다른 시각장애인들을 돌보며 가치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3일만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은 친절과 우정으로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든 사람들을 보고 숲속을 산책하며 아름다움을 적시고, 둘째 날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밤이 낮으로 바뀌는 가슴 떨리는 기적을 맛보며 저녁엔 영화나 연극을 보고, 셋째 날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평생을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던 그녀가 단 3일간 정작 보고자한 것은 이렇게 소박하며 일상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그렇게 간절했던 것을 저는 매일 그냥 봅니다. 학생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해주려던 저는 헬렌켈러의 소망을 하나하나 다시 보면서 제가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 삶을 가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도, 밤이 낮으로 바뀌는 것을 기적으로 볼 줄도 모릅니다. 그냥 원래 제게 있는 것들이라 보고 듣고 말하는 것에 감사해본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감사보다는 자꾸만 다른 것들을 하느님께 청하고만 있는 저를 쳐다보며 쓴웃음을 지어봅니다.
수시원서가 끝나고 한숨 돌리려고 하니 연이어 면접과 논술이라는 무서운 녀석이 나타났습니다. 저녁 야간자습 시간 3학년 선생님들은 면접과 논술 준비로 여전히 바쁩니다. 낮과 밤 모두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조금씩 마음과 몸이 지쳐갑니다. 수능이 코앞인데 아이들은 급한 것이 없고 교사들 마음만 타들어가는 것 같고 자꾸만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짜증도 느는 것 같습니다. 많은 고3들이 수시원서를 내고, 1차 합격이 되거나 면접을 다녀오면 마치 자신이 대학에 합격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그래서 수능이 임박했는데도 불구하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님은 또 속이 탑니다. 그래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온 아들에게 또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예전에 우리반 학생 한 명이 그 잔소리가 싫다며 집을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침 일찍 매일 등교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열흘 이상 집에 들어가지 않은 사실을 몰랐습니다. 부모님께선 제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아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알려주지 않았나 봅니다. 하지만 기간이 길어질수록 해결은 안 되고 날은 점점 추워지자 걱정이 되신 아버지께서 마침내 제게 연락을 주셨습니다. 아이를 불러 한 시간 이상 상담을 통해 야간 자습이 끝나면 자기 집 아파트 계단에 앉아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등교하기를 반복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되묻는 제게 그 학생은 “아, 짜증나잖아요. 전 집이 싫어요. 안 들어갈 거에요.”라며 입을 다시 다물어 버렸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상황이라 그 이유를 물으니 컴퓨터도 못 하게 하고 핸드폰도 못 하게 하고 공부하란 소리만 해서 싫다며 주말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무조건 독립할 거라는 막무가내의 아이를 보며 저 역시 참담함을 맛보았습니다.

속수무책이란 말이 이럴 때 딱 맞는 말이었습니다. 아들이 어디에서 지내는지 알게 된 아버지께선 너무나 슬픈 눈빛을 보이시며 제게 죄송하다란 말씀만 여러 번 하셨습니다. 나중에 철들면 잘 할 거라는 제 위로의 말에 “그런 날도 오겠지요? 암요, 그런 날도 오겠지요.”라는 말씀만 남기신 채 축 처진 어깨로 돌아서시는 그 뒷모습을 보며 부모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새벽 두 시에 아버지는 계단에서 쪽잠을 자는 아들을 찾으러 나오셨습니다. 계단에서 가방을 메고 웅크리고 자는 아들을 내려다보시던 아버지는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집에 들어가 이불을 들고 나오셔서 자는 아들이 춥지 않도록 덮어 준 후 아들의 가방에 돈 삼만 원을 넣어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다음날 그 학생을 불러 밤사이 안부를 물었습니다. 철없는 그 녀석은 잘 잤다며 춥지 않았느냐는 제 말에 얄밉게도 배시시 웃으며 자고 일어나니 이불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보고 싶어졌습니다. ‘아버지란, 부모란, 이렇게 슬픈 거구나.’ 나오려는 울음을 마디마디 잘라 입 속으로 삼기며 저는 아이를 설득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 못된 녀석은 간섭받지 않는 집밖 계단이 더 낫다며 제 속을 뒤집었습니다. 아버지가 몰래 놓고 가신 돈으로 독서실에 간 녀석은 그 다음날 편안하게 침대에서 잤지만 그 아버진 소리내 울지도 못하시고 밤새 가슴만 계속 치셨답니다. “제 탓이오.”를 반복하시며.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님의 ‘흔들리며 피는 꽃’ 중의 일부입니다. 성장통이란 이렇게 힘든 것인가 봅니다. 찬 서리를 맞으며, 쌩쌩 부는 찬바람을 버티며, 그렇게 견뎌야지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듯이 이런 흔들림의 시간들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되었나봅니다. 언젠가 저 아들도 지금의 아버지가 감내했어야 할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날이 오겠지요.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선 2015 세계 천주교 성가정대회에 참석해 미사 강론에서 “완벽한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낙담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반대다. 불완전한 가정 안에 사랑이 태어나고 계속 자라나는 것이다. 사랑은 배워가는 것이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접시가 날아다녀도 가정이 행복의 근원”이란 교황님의 말씀처럼 많은 문제가 생기더라도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으며 그 속에 사랑이 있는 동안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능이란 힘센 녀석과의 직접 대면을 눈앞에 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며 기도하는 주변을 보며 힘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위대한 헬렌켈러 옆에 셜리번 선생님이 사랑으로 서 있었듯이 언제나 자신의 편인 부모님의 눈빛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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