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초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봉헌회를 통해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3개국에 12박 13일 간의 “뿌리를 찾아서” 순례길에 봉헌회원 26명과 지도수녀님, 지도신부님을 포함해 모두 28명이 함께했다. 봉헌회(奉獻會)란 다른 용어로 재속회(在俗會) 혹은 제3회라고 한다. 이는 사제 혹은 평신도들이 속세에서 복음을 전파 할 목적으로 회헌(會憲)에 따라 혼자, 가족과 함께, 혹은 경우에 따라서 형제적 공동체와 함께 세상의 일상적 조건 속에서 생활하는 수도회이다. 이런 삶을 살아보려고 3년 전에 대구 사수동의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봉헌회 3기에 입회하여 첫 유기서원을 받고 난 다음 베네딕도 수녀회의 “뿌리를 찾아서” 순례에 함께 하게 되었다.
로마에 있는 총원에서부터 독일 뮌헨 모원이 있는 툿찡(Tutzing) 베른리드 수녀원, 그리고 건너편 수도자들의 묘지를 끝으로 하느님의 안배하심과 사부로 모시고 있는 베네딕토 성인의 전구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이 일정 중 이틀만 호텔에서 머물고 나머지는 수녀원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면서 성베드로대성당의 미사를 시작으로 시내 관광, 마리아 마조리성당, 라테란성당, 성십자가성당, 바오로대성당, 트리폰타네, 베네치아 광장, 수리 중인 트레비분수, 판테온 신전,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성당 등 화려하고 웅장함에 고개가 바로 세워지지 않을 만큼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양하는 최고 극치의 예술품들에 온 정신을 다 빼앗긴 일정을 보냈다. 그런 중에 하루는 가죽제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날리고 있는 예술의 도시 피렌체를 거치면서 중세교회 부흥과 아름다운 성당 순례를 마치고 12세기의 성인이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성 글라라 대성당과 수도원의 계획된 일반 성지순례를 마쳤다.
순간순간 느끼고, 감동받고, 탄성을 지르면서 깨달았던 기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감상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본래 순례의 목적인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봉헌회 뿌리를 찾아서’에서 순례한 사부(師父) 성 베네딕토와 관련된 이야기만을 전해드리고자 한다.
로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 뒤편에 베네딕토 사부가 처음 유학을 와서 살았던 집과 자그마하게 지어진 기념성당을 가 보았다, 이곳에서 처음 기적이 일어났다고 안내자는 설명을 해 주었다. 유모(乳母)와 함께 자그마한 주택을 빌려 생활 하던 중 하루는 유모가 아끼던 접시를 떨어뜨려 접시가 두 동강이가 나 버리자 유모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쩔쩔 매는 것을 보고 베네딕토가 기도를 하였는데 깨어진 접시가 원 상태로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나흘째 되는 날, 사부 성 베네딕토께서 은수생활과 수도자의 수칙서인 규칙서를 완성한 몬테카시노(Montecasino) 대 수도원과 수비아코(Subiaco)를 방문하였다. 몬테카시노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San Benedetto)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의 하나로 이탈리아 중부, 로마와 나폴리의 중간 지점에 있다. 로마에서 동쪽으로 약 70여㎞ 떨어진 아니에네(Aniene) 강변에 위치한 해발 410m에 위치한 마을로 성 베네딕토가 처음으로 은수생활을 했던 수비아코이다. 처음 이곳 수비아코 뒷산에 있는 사크로 스페코(Sacro Speco, 거룩한 동굴)에서 3년 동안 은수생활을 하였다. 이곳은 워낙 인기척이 없는 산중이었기 때문에 거룩한 전례나 예식에 참여할 기회도 없었고 성사를 받을 형편도 되지 못하였다. 온전히 고독 속에서 명상만을 하며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그는 자기 하나만을 지켜 나가는 것이 수도자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 뒤부터는 천진난만한 목동들을 모아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던 중 그의 명성을 듣고, 또 로마에서 있었던 기적에 관하여 소문을 듣고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하나 둘 모여 그의 지도를 바라자, 그는 수도원을 세웠다. 이후 수비아코에서 제자들을 지도하면서 12개의 수도원을 세웠는데 그 중에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수도원은 베네딕토 쌍둥이 여동생의 이름을 딴 성녀 스콜라스티카 수도원과 3년 동안 은수생활을 하였던 사크로 스페코 수도원뿐이라고 한다.
몬테카시노로 옮겨 와서 수도생활을 시작한 베네딕토는 서기 529년 이곳의 아폴로 신전을 부수고 수도원을 세운 후, 악습과 싸우는 시기가 모두 끝나고 영적인 절정기를 맞게 되었다. 공동생활과 전교와 순명 정신으로 집약되는 회칙을 제정하여 유럽 수도원 제도의 기초를 닦은 유서 깊은 곳이었다. 일반 관람객에게는 개방하지 않는 지하 기도실과 전시장을 베네딕토 수녀원 봉헌회원이라는 것을 알고 특별히 관람하게 되었는데 몇 가지 기적들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몬테카시노의 수도원에는 그의 성덕과 지혜, 그리고 기적에 대한 명성이 수없이 퍼져나가 또다시 많은 제자들이 몰려왔다. 그는 수도자들을 단일 수도원 공동체로 조직하고, 상식을 존중하면서도 올바른 금욕생활, 기도, 공부, 그리고 한 명의 원장 아래 있는 공동체생활을 규정하는 유명한 규칙을 썼는데, 이것이 널리 알려져 그는 ‘서방 수도 생활의 사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 규칙은 처음에도 말한 바와 같이 공동생활을 명백히 규정하고, 순명을 최대의 덕으로 삼고, 재산의 사유(私有)를 금지하고, 일평생 한 수도원에 머무를 것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를 것을 명하고 특히 전례를 중요시하여 수도 생활 중심으로 성무일과를 안배했다. 이것이 서방 교회 수도 생활의 기초가 된 것이다.
베네딕토는 남자를 위해 수도원을 세워 규칙을 작성했을 뿐 아니라 여동생 스콜라스티카와 그의 동료들, 부인들을 위해서도 수도회 규칙을 정해주며 정신적,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베풀어 주었다. 스콜라스티카는 오빠보다 먼저 죽었으나 생전에는 서로 도와 완덕의 길을 걸었다. 베네딕토가 수사들의 아버지라면 그녀는 수녀들의 어머니가 되어 다 같이 자애로 그들을 인도했다.
베네딕토는 547년 3월 21일 몬테카시노에서 선종했다. 그날 그는 제대 앞에 서서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팔을 벌리고 기도하면서 선종했다고 한다. 여러 지방에서는 8세기말부터 7월 11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해 왔으며, 교황 바오로 6세께서 1964년 10월 24일에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정하돈(안나 마리아) 지도수녀님과 현지 안내자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몬테카시노와 수비아코의 사부 성 베네딕토와 관련된 성지와 수도원의 순례를 마쳤다.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는 창설된 지 올해로 13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1,300여 명의 수녀들이 있는 국제 수녀회이다. 특히 올해가 ‘한국의 해’로, 한국에 분포되어 있는 수녀원과 한국 최초로 수도원이 있었던 자료들과 활동 상황들을 전시해 놓고 우리들을 환영해 주었다. 다시 한번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봉헌회 입회를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사부 성 베네딕토 성인께 나의 삶이 수도자의 봉헌회 회원답게 ‘기도하며 일하고, 일하며 기도하라.’는 생활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갈 것을 되새겼다. 또한 나의 모든 행위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드러내는 행위가 되도록 더욱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전구했다. 로마, 수비아코, 몬테카시노, 베른리드, 성 오틸리엔 수도원 등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뮌헨공항에서 일행들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작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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