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예비신자를 위한 교리주머니 ⑦
당신은 종교가 뭡니까?


함영진(요셉) 신부 본지 주간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 신명께 비나이다….”

밤늦은 시간,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두 손 모아 정성을 다해 빌던 우리의 어머니들은 과연 어떤 종교를 갖고 계셨던 것일까?

 

‘하늘에 두고 맹세한다.’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를 믿고 큰소리 치는 것인가?

 

우주의 신비를 밝혀내고 생명의 신비에 도전하는 과학의 시대에 종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별로 달갑지 않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어느 누가 힘에 부대끼고 한계에 이르렀을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지금까지 내가 행복이라고 믿고 살았던 것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순간, ‘하늘도 무심하지….’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우리는 한 번씩 자신에게 되묻는다.

“인간이 도대체 뭐냐?”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가치 있고 보람된 삶, 행복한 삶,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무슨 대단한 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면 언젠가는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사람 속에는 원래 종교적 심성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류 문명이 시작되면서부터 어느 시대, 어느 장소,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종교적인 예식을 거행하고 나름대로의 신을 숭배해왔다.

내가 아무리 잘나고 재주가 많아도 잠시 지나가는 것일 뿐 분명히 한계가 있음을 느끼면서  나와는 다른, 나보다 훨씬 강한 능력을 가지고 나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줄 신(神)적인 상대를 찾게 되는 것이다.

현실을 인식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이 인생이다.

종교는 이런 질문과 요구에 답을 제시하고 분명한 가르침을 통해 확신을 갖고 따를 수 있게 해준다.

‘나는 가톨릭 신자다.’

이 말은 내 안에 막연하게 자리잡고 있던 그 대상을 ‘하느님’이란 분으로 고정시키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따라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제는 단순한 종교심이 아니라 ‘하느님’을 나의 행복의 근원으로 믿고 살아갈 때 나는 ‘신앙’의 단계로 한 층 더 성숙된 모습을 갖게 된다.

어느 종교를 갖고 어떤 모습으로 살지는 내 자유다.

하지만 내가 “나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면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는 훌륭한 신앙인으로 살 준비에 게으름을 부려서는 안 될 것이다.